雜/남의 글 35

지식인 - 최원

나는 이 글에서 지식인과 대중의 "경계"라기 보다는 '경계들'에 관해 말하고자 하며 그것들의 부단한 전위 속에서 우리가 수행해야할 싸움들의 복잡성에 관해 논하고자 한다. 첫 번째 경계: 지식인과 대중을 유식자와 무식자의 단순한 대립 속에서 파악하려는 시도들은 언제나 모종의 엘리트주의로 귀결되었을 뿐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혹자는 지식인이란 항상 이미 대중이라는 점(즉, 그들도 대중 안에 생활인으로 실존한다는 점)을 강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 안에는 '언행의 불일치'를 비롯한 지식인들의 '위선'이란 결국 그들이 동시에 대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에 갖는 속물근성이라는 식의 이해(그들은 더 '영리하게' 속물적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 대중들보다 더 속물적이다)가 엿보이고, 이는 속물근성의 원인을..

雜/남의 글 2013.03.08

정운영 선생을 추억하며 - 윤소영

정운영 선생을 추억하며 윤 소 영 추석 며칠 전날 한밤중에 정운영 선생의 전화를 받았는데, 느닷없이 자신의 책들을 내게 맡기겠다는 말씀이셨다. 어림잡아도 2만 권쯤 되는 장서는 선생이 유학 시절부터 모아오신 것으로 그 규모와 범위는 경제학계에서도 아주 유명한 것이었다. 그런데 애지중지하던 그 책들을 내게 맡기시겠다니.... 지난 봄에 뵐 때 신장에 이상이 생겨 고생하신다는 말씀은 들었지만, 그냥 잔병치레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터에 갑자기 그런 말씀을 듣고 불안하기는 했지만, 추석쯤 퇴원할 수 있을 것이니 그 때 다시 의논하자는 말씀을 곧이곧대로 믿고 싶었다. 그러나 추석 다다음날 사모님의 급한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선생을 찾아뵈니 힘겹게 단 두 마디 말씀만 하셨다. 한참 물끄러미 나를 보시다가 “..

雜/남의 글 2013.03.08

그대 이름은 '무식한 대학생' - 홍세화

그대 이름은 '무식한 대학생' - 홍세화 그대는 대학에 입학했다. 한국의 수많은 무식한 대학생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지금까지 그대는 12년 동안 줄세우기 경쟁시험에서 앞부분을 차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영어 단어를 암기하고 수학 공식을 풀었으며 주입식 교육을 받아들였다. 선행학습,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 등 학습노동에 시달렸으며 사교육비로 부모님 재산을 축냈다. 그것은 시험문제 풀이 요령을 익힌 노동이었지 공부가 아니었다. 그대는 그 동안 고전 한 권 제대로 읽지 않았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했다. 그대의 대학 주위를 둘러 보라. 그 곳이 대학가인가? 12년 동안 고생한 그대를 위해 마련된 '먹고 마시고 놀자'판의 위락시설 아니던가. 그대가 입학한 대학과 학과는 그대가 선택한 게 아니다. 그대가 ..

雜/남의 글 2013.03.08

왜 그들은 마르크스를 버리지 못하는가

왜 그들은 마르크스를 버리지 못하는가 산 자본주의가 죽은 마르크스를 살린다 카드빚에 시달린 젊은 엄마가 아이 셋을 데리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못해 괴기스럽다. 고인의 명복을 비는 것이 살아 있는 자의 도리이자 예의다. 더욱이 투신자살을 결행하기까지 겪어야 했을 심적인 고통을 생각하면 망자에 대한 악담일수 있겠으나 나는 무엇보다도 젊은 엄마를 질책하고 싶다. 삶이 인생을 속일지라도 생명을 버려서는 안된다. 뉴스로 전해진 젊은 엄마의 나이는 나와 동갑이다. 한 동갑일 망정 사업을 부도 맞은 남편을 대신해 세 아이를 부양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야 했던 젊은 어머니가 체감하는 삶의 무게와 인생의 고달픔은 늙은 부모 등치며 집에 빌붙어 지내는 노총각의 그것과는 견주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팍팍하..

雜/남의 글 2013.03.08

근현반의 시니어들에게 - 김대일(한사 98)

근현반의 시니어들에게 난 호기심과 지적 열정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난 왕성한 호기심을 갖고 있고, 세상에 대한 갖가지 궁금증들은 끊긴적이 없다. 늘상 이야기하듯이 지하철 문이 왜 양쪽에서 열리는지, 정말 궁예가 신라의 왕족이었는지 따위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며 나를 자극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지적 열정과 냉정하게 분리하였던 것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지식은 감히 '지식'의 범주에 들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갖고 있는 것은 호기심인가, 아니면 지적인 열정인가. 이른바 '진보적인 학자들'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 중 타인의 노동에 기대어 펜대를 놀리며 스스로의 삶과 타인의 삶에 조금도 개입하지 않고 '진보적인' (무슨 ..

雜/남의 글 2013.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