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이미 4시가 넘은 시간
사실상 뭔가 보는 것은 포기하였다.
2호선 화평문(화핑먼)역에서 내려 C2 혹은 D2 출구로 나와 쭉 직진하면 된다.
우리는 D2로 나왔다.
허핑먼(화평문) 사거리의 모습
2호선의 경우 과거 북경성의 성곽을 따라 건설한 순환선이기 때문에 ~~문이라는 역이 많다.
슬슬 어두워질 준비를 하고 있는 풍경
유리창(류리창) 서가 라는 팻말이 보인다.
사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무엇을 기대하고 간 것은 아니고 그냥 유리창을 한 번 밟아보고 싶었을 뿐이다.
조선에서 온 사신들도 걸었을 그 길을 그냥 한 번 보고 싶었을 뿐
유리창으로 가는 길
잘은 모르겠지만 곳곳에 오래된 청대의 건물들이 남아있다.
가는 길에 발결한 한국 음식점
평안도와 관련 있어 보이니 아마 북한 음식점이 아닐까?
북경행단미술관이라는 미술관
뭐하는 곳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렇게 큰 길을 쭉 따라가다 보면
멀리 육교와 좀 높은 건물이 보인다.
여기가 유리창이다.
큰 길가에도 찻집이나 서예용품점이 보인다.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은 급고각다원이라는 찻집이다.
중국서방이라는 서예용품점이 나온다.
이미 5시에 이르는 시간이라 그런지 일찍 문을 닫았다.
가이드북에는 8시까지라고 되어 있던데 5시면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는 듯하다.
가는 길에 발견한 작은 기념비
중국 영화 100년을 기념하는 곳이라고
1905년 여기서 처음 영화제작(정확히 말하면 경극 녹화)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골동품 가게들
저기 육교가 보인다.
저 육교를 기준으로 유리창 서로와 동로가 나뉜다.
많은 서예용품점과 골동품 가게
급고각 다원
국영 다원이라고 한다. 1층은 서예용품을 팔고 있다고
여기서 육교를 건너지 않고 오른쪽으로 꺾으면 유리창 서로가 이어진다.
진짜 유리창(류리창) 거리인 셈이다.
한산한 거리
늦은 것이 틀림없다.
그래도 유리창 아닌가. 새삼 감격스럽다.
유리창이 원, 명대 궁궐에 사용되는 유약 기와와 벽돌을 굽던 곳이라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유리창이라고 해서 우리가 보는 투명한 유리를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건 아니고 색이 들어갈 유리 유약이 씌워진 기와와 벽돌을 말한다. 자금성 태화전의 황기와나 구룡벽의 색깔 벽돌이 대표적이다.
그러다가 청대에는 주로 서적을 취급하는 서점들이 들어서면서 성격이 완전히 변했다.
청대 유리창은 서점과 지필묵 등의 문방사우, 그리고 골동품을 거래하는 고급 거리로 바뀌었다.
유리창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여기서 여러 나라 지식인들의 교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의 지식인들은 유리창으로 책을 구입하기 위해 많이 들렸다. 정부 차원에서 중국 조정에 공식적으로 요청하여 들여오는 경우도 있었지만(예컨대 정조가 들여온 흠정고금도서집성 같은 경우) 청의 수출 금지 목록에 걸려 조선으로 들여오지 못하는 책도 많았다. 대표적인 책들이 지리지류. 당시 지리지는 단순 지리정보 뿐 아니라 호구 수, 세수 등의 경제정보와 군사정보도 담고 있는 종합 백과였기 때문에 청에서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런 책은 여기서 구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 밖에 개인적으로도 책을 구하기 위해 유리창으로 이어지는 조선 지식인들의 발을 계속되었고, 서점과 가게들을 중심으로 중국 지식인과의 교류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특히 과거를 보기 위해 북경에 올라온 강남 지역의 지식인들과의 교류는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후일 중국의 지식인계층을 주도하는 강남 신사층과 조선의 교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닫힌 가게 창문으로 보이는 인재들
예로부터 중국엔 수산석, 청전석, 파림석, 창화석의 4대 명석과 그 외의 많은 고급 전각 재료들이 전해진다.
이제는 손을 뗐지만 나도 한 때 인재 수집에 열을 냈는데, 인플레가 하도 심해서 그만 두었다.
지금 중국의 전각 재료는 보이차, 자사호와 함께 3대 투기품이 되었다고 한다.
가게는 문을 닫았지만 거리에는 길거리 예술가들이 앉아 있다.
드디어 영보재가 보인다.
여기가 명성 높은 영보재이다.
3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영업을 해온 서예용품점(서방)이다.
지금 역시 영업을 하며 판매와 전시를 동시에 하고 있다.
영보재 입구
조선의 지식인들도 사행 편을 통해 중국의 문방사우를 엄청나게 수입했다.
추사 김정희의 경우 중국 최고급 종이인 옥판선지나 금박을 입힌 냉금지만 까다롭게 사용했다고 유명하다.
수백 년된 종이나 먹은 지금도 널리 팔린다. 조선 사신들도 영보재에 많이 들렸다고 한다.
기념사진
한쪽에는 붓을 팔고 있다.
이제 큰 길로 나와 육교를 건너 반대편으로 돌아가도록 한다.
욱교 내부
육교에서 바라본 큰 길
여기서 바로 택시를 타고 훠궈를 먹기 위해 동당(東堂)으로 가야 하는데,
택시 기사가 발음이 똑같은 둥단(東單)역에 내려주는 바람에 한참을 걸어야 했다.
걸어가는 길에 발견한 건물
무슨 건물일까? 무슨 사당으로 보이는 건물이다.
차도 반대편에 있는 문
여기는 중국의 사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있는 협화의학원 구지(舊址)이다.
현판. 현재는 칭화대학(청화대학) 의학부로 쓰이고 있다.
본래 미국 록펠러 재단에서 세운 병원 겸 의학 교육기관인데 혁명을 거쳐 지금은 칭화대학에 들어가 있다.
여기는 한국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데 의열단원이자 님 웨일즈의 <아리랑>의 주인공인 김산 및 이용설 등이 의열단에 합류하기 전에 다니던 곳이라고 한다. 김산은 독립운동을 하기 위한 생계유지를 위해 여기에 다니다가 사회주의 사상을 지니고 나중에 의열단에 가입한다.
여러모로 의미가 깊은 곳이다.
여튼 잘못 내린 김에 중요한 곳도 보고 이제 왕부징을 향해 간다.
왕부징 입구가 보인다.
역시 북경 최고의 번화가답게 건물이 으리으리하다.
여기가 왕부징 입구
우리는 저 끝까지 가야한다.
왕부징은 황실의 친족인 여러 왕들의 기관인 왕부(王府)에서 쓰는 우물이 있었다고 한데서 유래한 길이다.
뭐 관광객이 워낙 많아 정신이 없다.
저 골목이 그 유명한 꼬치 골목이지만 우리는 너무 피곤해 가지 못했다.
나중을 기약할 뿐
15분 이상을 걸려 목적지인 해저로 훠궈가 있는 저 백화점이 보인다.
IN88이라는 건물로 정식 명칭은 동천은봉백화점이라고 한다. 거기 8층에 해저로훠궈가 있다.
전용 엘레베이터가 따로 있을 정도니 헷갈리면 영어로 물어보자
우여곡정 끝에 해저로훠궈(하이디라오훠궈)에 도착
영어 메뉴판도 있고 웨이터가 와서 일일이 주문을 도와준다.
우리는 매운 마라탕과 닭 육수탕을 시키고 거기에
죽순, 소고기, 느타리버섯, 두부피, 새우어묵, 청경채, 배추, 감자와 면을 시켰다.
소스와 과일은 직접 바에서 골라 온다.
솔직히 매운 국물은 화학약품 맛이 너무 많이 나서 먹기 힘들었다.
다들 결국 항복하고 마라탕에 있는 건 먹기를 포기
모험하기 위해서라면 한 번 먹어도 좋겠지만 돈이 아깝다면 그냥 하얀 국물만으로 선택하자
건더기를 다 먹으면 면을 넣어준다.
즉석에서 수타로 만들어 준다.
다들 마라탕의 충격을 받고 있다.
기운 빠진 정재현
우여곡절 끝에 첫 저녁식사 완료
백화점 바깥 풍경
신기한 건 1층 입구에 문 열어주는 직원이 있다는 것.
엄청 무쓸모인 것 같은데... 창조경제인가 고용창출인가. 백화점 문 정도는 직접 열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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