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북경 답사 1차

북경여행기 - 2일 (옹화궁3)

同黎 2015. 8. 27. 01:53



영우전 뒤로 나가면 법륜전이 나온다.


법륜전은 원래 옹친왕부의 침전이었는데, 건륭제 때 지금의 모습으로 대폭 개수했다고 한다.

그래서 본래 一자형 건물이 지금의 十자형 건물로 바뀌었다.


전반적으로 매우 화려하고 지붕 위에 2층 구조의 지붕을 다시 올리고

절병통을 올려서 높아 보이는 효과를 극대화했다.


법륜전으로 가려고 하는데


딱 염불이 진행되고 있었다.

앞을 막아 놓아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좌우의 건물부터 보기로 한다.


법륜전 정면



법륜전 현판


정면에서 찍은 본존 총카파의 상이 보인다.

연기가 너무 많이 나서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일단 염불이 끝나길 기다리면서 동서 배전을 먼저 보기로 한다.



동배전 앞


동배전 전경


동배전은 건륭 9년에 세워진 건물이다.

즉 옹친왕부를 완전 사원으로 개조하면서 새로 세운 건물들이다.


원래 촬영이 안 되는데 그냥 막 찍는다.

공안이나 스님들이 막긴 하지만 자기한테 보이지만 않으면 별로 막을 의지는 없어 보인다.

본존인 대위덕금강

대위덕명왕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본존상 옆은 지옥주신이라고 한다. 


몰래 찍은 탕카


그 옆의 재보천왕

음 잘 모르겠다.


반대편의 서배전으로 간다.

역시 건륭 9년에 새로 지은 건물이다.


서배전은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8대보살을 모셨다.


석가모니불


팔대보살들

불상이 최근에 만들어진 것 같다.



이제 다시 법륜전으로 간다.

여전히 독경 중이지만 들어갈 수는 있게 되었다.


본존 총카파(쫑카빠)의 상

14대 현 달라이라마가 망명하기 전 모택동과 사이가 좋을 때 여기에 와서 강경을 했다고 한다.

참... 처음 중국의 인민해방군이 티벳에 진주했을 때 달라이라마와 중국공산당 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59년 티벳의 반 중국 항쟁 이후 12만명의 티벳인이 죽고 6천 개의 사원이 파괴되자

14대 달라이라마인 텐진 갸초는 인도로 망명해 임시 정부를 세우고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신정국가 자체가 20세기에 더이상 지속될 수 없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긴 하나

티베트가 현대 중국의 중화주의에 희생된 것은 가슴아픈 일이다.

 

거대한 쫑카빠상 주위로 승려들이 독경을 하고 있다.


좌우에 있는 벽화


한쪽에는 모래로 만든 만다라가 있다.

티벳에서는 중요한 의식 전에 색모래로 만다라를 그리고

의식 종료 후 이를 쓸어 호수에 돌려보내는 관습이 있다.

이렇게 굳혀서 보존하거나 선물로 보내는 경우도 왕왕 있다.


법륜전 본존 뒤편에는 오백나한상이 있다.


자단목으로 산모양을 만들고 그 안에 금, 은, 동, 철과 주석으로 오백나한을 만들어서 만들었다.

앞서 나온 수미산 조각과 함께 건륭제 시기 만들어진 옹화궁의 3대 보물이라고 불린다.


법륜전을 나서니 옹화궁의 가장 북쪽 건물이자 3층으로 가장 높은 건물인 만복각이 나온다.


본래 옹친왕부에서 여인들이 거주하는 후조방 건물이었는데 당나라에서 시작되어

요, 금대까지 계속되었던 중국의 비각(飛閣)풍 건물의 유일한 현존물이라고 한다.

당연히 본래 건물은 아니고 건륭제 때 다시 세워진 건물이다.


높이가 20미터가 넘어 카메라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다.


2층에는 정성혜인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3층은 잘 보이지 않는다.


만복각은 좌우로도 누각을 지니고 있다.


왼쪽의 건물은 연완각


오른쪽은 영강각이다.


사람이 너무 많은 만복각 대신 옆에 있는 계대루에 먼저 가기로 한다.


사진을 못 찍어서 퍼왔다.


계대루는 건륭 45년이라는 비교적 늦은 시기에 세워졌다. 건륭제 때 6대 판첸라마가 오면서

세워진 것으로 판첸라마나 달라이 라마가 설법을 하는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안에는 일종의 박물관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간소하게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2층의 통층 건물로 들어가면 계단 모습의 법대가 보인다.

불교에서 정식 승려가 되려면 계단에서 비구계나 비구니계를 받아야 한다.

이 법대는 건물 이름에서 유추듯이 불교의 종교적 스승으로 존중받는 달라이라마나 판첸라마가

북경에 있는 황제나 고위 관료층에게 계를 준다는 상징적인 역할도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판첸라마와 관련된 유물들


분노존

티벳불교에는 이렇듯 남녀가 껴안고 있는 부모불 혹은 환희불, 쌍신불이라고 불리는 형태가 많다.

이는 인도 탄트라 불교의 영향으로 성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굳이 철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주체와 객체가 하나됨으로써 이러한 이원성을 극복하려는 모습이라고 한다.

여튼 겔룩빠(황모파)의 등장 이후 승려의 결혼과 성교는 금지되고 단지 상징적인 의미로만 남아있다.


판첸라마에게 중국의 황제가 내린 선물이다.


법대 위에는 6대 판첸라마의 모습이 재현되어 있다.


달라이라마와 판첸라마는 모두 티벳불교 최대 종파인 겔룩파의 고위 승려지만 정치적으로 대립 관계이다.

달라이라마가 티베트 제1의 도시 라싸의 지배자라면 판첸라마는 제2의 도시 시가체의 지배자이다.

판첸라마는 겔룩빠 서열 2위로 종교적 의미는 크게 지니지만 달라이라마처럼 권력은 쥐지 못했다.

티벳불교를 수용한 청나라는 판첸라마와 달라이라마 사이를 조절하여 티벳 통치에 활용하였다.

14대 달라이라마가 인도로 망명한 반면 10대 판첸라마는 중국 정부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였다. 그 결과로 지금 중국에서 티벳불교의 수장은 판첸라마이다. 10대 달라이라마가 죽고 난 후 인도의 티베트 망명정부는 자체적으로 11대 판첸 라마를 찾아냈지만 이 어린 아이는 현재 행방불명(아마도...)이고 중국 정부에서 자기들한테 협조적인 티벳불교계를 이용해 찾아낸 다른 환생자를 공식적인 판첸 라마로 내세우고 있다.

이 여파로 14대 달라이라마는 자신이 죽고 난 후 중국 정부에서 아무나 15대 달라이라마로

세울 것을 우려해서 환생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참... 어려운 일이다. 


현재 달라이라마는 티베트의 독립 대신 강력한 자취권을 원하고 있고

(때문에 티벳 독립운동 내부에서도 반발을 받고 있다고 하더라)

중국 정부도 일부 지역에서 달라이라마의 사진 소지와 참배를 허락하는 등 유화기운이 있다고 하지만

어떻게 될 지는 모르는 일이다. 여튼 옹화궁에서는 달라이라마의 흔적이 철저히 지워져 있다.


판첸라마에게 황제가 내린 선지


나팔


오불관이라고 하는 고위 승려의 불상


수정 불상

역시 판첸라마와 관련있는 것이다.


계대루를 나섰다.


만복각의 위풍당당한 모습

구름다리까지 있다.



노랗게도 한 장


반대편 누각도 한 장



이제 만복각으로 들어가본다.


만복각 1층 현판


2층의 정성혜인이라는 현판

 

만복각 내부 천장의 모습


들어가니 높이 18미터의 어마어마한 미륵불상이 보인다.


한 컷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

거대한 백단목으로 만들었는데 총 길이는 26미터로, 하단의 8미터는 땅에 묻혀 있다고 한다.

옹화궁 3대 보물 중 하나이다.


불상의 상호


몸통 부분


무릎 부분


7대 달라이라마가 건륭제에게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 티벳 지역에 일어났던 반란을 청 황제가 진압해준 고마움에서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참 티벳 얘기를 많이 하게 되는데, 청 당시 티벳은 청 제국의 판도 안에 들어와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물론 승려들에 의한 자체적 통치가 이루어지고는 있었지만 청이라는 제국의 거대한 틀에서 관리되는 한도 내에서의 자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티벳 독립운동의 반대 근거는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과거 역사로 현재 문제를 다루는 건(예시로 아무도 신경 안 쓰는 암초인 독도의 영유권을 '역사기록'을 통해 확인하려는 시도) 큰 의미가 없다.


만복각 내부의 모습

뻥 뚫린 통층이다.


반대편에서 본 불상

이렇게 큰 불상을 나무의 갈라짐 없이 조각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천정의 모습


다시 만복각을 나왔다.


왼쪽의 연완각 현판


오른쪽의 영강각


만복각을 나와 측면에 있는 소불전으로 간다.


계대루와 비슷한 건물이다.


강희 33년에 지어진 옹친왕부 당시의 건물로 원래 예불장소였다고 한다.


안에는 주로 탕가가 가득하고 불경이 모셔져 있다.


탕가의 모습들


티벳불교의 불경은 패엽경이라고 하여 나뭇잎에 불경을 쓰던 것을 원류로 한다.

종이를 제본하지 않고 한 장 한 장 뒤로 넘기면서 읽는 것이다.


만복각 뒤로 가본다.


공사 중인 건물들


구름다리가 보인다.


경성전이라는 건물로 들어가본다.

건륭제 때의 건물이다.


본존은 백산개불모이다. 


좌우에는 인도와 티벳의 여러 고승, 조사들의 상이 모셔져 있다.


본존의 모습


또 다른 건물인 시타전

승려들이 학습을 하던 건물이라고 한다.


건물 가운데에는 입체만다라가 모셔져 있다.


한 켠에는 불경이 모셔져 있고


가운데에는 총카파(쫑카빠)와 1대 판첸라마의 상이 모셔져 있다.



그 밖에 모셔진 여러 보살과 수호존들


입체만다라의 모습


한쪽에 서 있는 큰 분노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또 다른 불상들


이번에는 아만달사루라는 특이한 이름의 건물이다.


안의 구성이 특이하다.

본존은 대위덕금강이다.

아무래도 대위덕금강과 대위덕명왕은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게 맞는 것 같다.


근데 옆에는 관우상이 모셔져 있다.

티벳불교에도 침투한 중국인들의 관제신앙이 놀랍다.

옆에는 관평과 주창이 협시하고 있다.


관우상 모습


적토마도 모셔져 있다.


다른 쪽의 염마호법

우리로 치면 염마천, 즉 염라대왕쯤 되는 호법신인 듯하다.


지친 우리들


그도 그럴 듯이 옹화궁이 엄청 크다.

체감면적은 경복궁만한 것 같다.

가볍게 볼 생각하고 왔는데 정말 말도 안 되게 크다.

중국은 다 크다는 걸 이 때 깨달았다.


다시 옹화궁을 나선다.

법륜전의 모습


화려한 건 여전하군


다시 비각이 나온다.


아까 지났던 비각


한쪽의 청동 솥

우리 식으로 하면 드므이다.


다시 돌아온 소봉문. 이렇게 옹화궁 관람이 겨우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