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북경 답사 1차

북경여행기 - 2일 (옹화궁2)

同黎 2015. 8. 26. 01:06



옹화문을 나서면 바로 화려한 청동등이 보인다.


발이 3개인 솥인 정(鼎)을 변형하여 만든 것으로 황제인 건륭제가 시주한 물건이라고 한다.



지붕의 기와 모습이나 불이 들어가는 화사석 부분의 화려한 장식을 보면

당대의 명공들이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정도면 국가지정 문화재일 것이다. 중국은 한국이나 일본, 북한처럼 국보, 보물이 없고 국가 차원에서 보존하는 유형문화재는 1급, 2급, 3급 문물로 분류하여 지정한다. 그러나 따로 이것을 표시해두지는 않는다.


청동등 뒤에는 비각이 서 있다.


비각 내부


일종의 사적비로 건륭제 당시 세운 것이다.

중국의 사찰이나 능묘 건축에는 이렇게 동선 가운데 중요한 비석을 세워 놓는 경우가 많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4면에 비문을 새겼고, 한문뿐만 아니라 만주어로도 새긴 것이 보인다.


비각 뒤에는 옹화궁의 첫 번째 중심 건물인 옹화궁 정전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그 옆의 건물부터 보기로 한다.

우선 강경전이다.


강경전이란 말 그대로 경을 읊는 곳으로 승려들의 강학 공간이다.


강경전에서 바라 본 정전


정전 처마와 현판


사진 찍는 정재현


강경전 내부

가운데에는 티베트 불교 최대 종파인 겔룩빠(황모파)의 창시자이자

부처의 현신으로 여겨지는 쫑카빠가 모셔져 있다.


옆에는 여러 호법신들이 모셔져 있다.

주로 티벳 토착 종교인 뵌교의 신들이 불교의 수호신으로 편입된 것이다.


측면의 여신상들

가운데가 백산개불모라고 한다.

백산개불모는 석가모니불이 여성의 분노존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타라보살

티벳불교는 이렇게 여신들이 많이 신앙된다.


반대쪽 

무량수불(아미타불)과 녹색타라보살 등이 모셔져 있다.


기념사진


이제 반대편 건물로 간다.



참고용으로 찍은 유약벽돌

유리창에서 찍어내던 게 이런 것이다.


반대편의 밀종전

갖가지 밀교 수법이 행해지던 곳이다. 티벳밀교 특유의 신비주의적 의식을 행하던 곳이다.


밀종전 앞의 마니차


밖에 새겨진 것은 탄트라 일종의 주문이며 안에는 경전이 들어가 있다.


마니차를 한 번 돌리면 경전을 한 번 외는 것과 같은 공덕이 쌓인다고 한다.


종밀전 내부


가운데는 역시 겔룩빠(황모파)의 창시자인 쫑카빠가 모셔져 있다.


이 시커먼 것은


바즈라바라이라

히말라야의 산신으로 티벳의 수호신이자 불법의 수호신이다.


다른 한 쪽의 분노존들

아 알았는데 지금은 이름을 까먹었다.

뒤에는 만다라들이 걸려있다.


분노존 뒤의 탕카들

탕카란 티베트 불교 특유의 불화를 말한다.


다른 감실

여러 여래와 보살, 분노존들이 모셔져 있다.



또 다른 감실

주로 분노존들이 모셔져 있다.


감실 내부에 모셔진 상


한 쪽의 나팔과 탕카


반대쪽 벽에는 만다라와 탕카들이 빼곡하게 모셔져 있다.


많은 분노존들


종밀전 앞에는 거대한 솟대가 솟아 있다.

티벳어로 룽따라고 하는 이것은 경전을 적은 깃발을 걸어 두는 것이다.

 

룽따 아래쪽 사자모양 받침대



룽따는 경전을 바람이 읽어준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티벳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물건이다.


만주족에게도 신간, 만주어로는 소모라고 하는 솟대가 있다.

사진이나 실물로 본 것 중에 가장 화려한 룽따이다. 역시 황실의 것이라 그런가.


이제 정전으로 간다.


음 캐리어가 시선 강탈을 하는


옹화궁 정전은 옹친왕부의 정전이었던 건물로 강희제 때의 건물이다.

건륭제 이후로는 옹화궁사무대신이 이 곳에 파견되었는데, 이 사무대신은 황족이었다고 한다.

주지는 판첸라마 계통의 승려가 해왔는데 선통제 퇴위 이후 혼란한 과정에서 몽골족에게 맡겨졌고,

지금도 몽골족들이 주지를 계속 하고 있다.


정전 앞에서 향을 바치는 스님


정전 앞에는 수미산 모습의 조형물이 있다.


옹화궁의 특징은 황궁에나 쓰는 황색 유리기와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막새에도 용무늬가 선명하다.



정전 좌우의 펜스들

모두 유리기와와 벽돌로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다.


지붕

지붕 위의 기와와 잡상 모두 황색 유리기와다.

잡상들은 주로 서유기의 등장인물이다.


수미산 조형물

포탈라궁을 닮기도 했다.

이 수미산 조각은 뒤에 나오는 오백나한상, 미륵불입상과 함께 옹화궁의 3대 보물로 불린다.


불교에서 수미산은 땅과 하늘을 이어주는 산이다.


산 쯕에는 구름이 있고 그 위에 궁전이 있다.

이것은 불교의 하늘관인 33천을 상징한다.


산과 하늘 사이 깨알같이 새겨진 별자리들


옹화궁 현판

역시 4개 문자로 적혀있다.


가운데 도장은 어필임을 알려준다.


정전 내부


가운데는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좌우로 약사불과 아미타불을 모셨다.

천정에는 황궁에나 보이는 닫집(천궁)이 보인다.


가운데의 석가모니불

좌우로는 제자인 사리불과 목건련이 모셔져 있다.

한국에서는 선종 계통을 강조하기 위해 불립문자, 염화미소의 주인공인 가섭, 아난을 수제자로 여기지만

티벳불교에서는 지혜제일인 사리불과 가장 연장자인 목건련을 수제자로 여긴다.


협시불

옷으로 덮어놔서 수인을 볼 수 없어 정확한 존명은 알 수 없다.


불단 앞의 공양물

청동으로 칠보를 만들어 놓았다.


좌우에는 18나한을 모셨다.

한국은 16나한이지만 중국은 자체적으로 2명의 존자를 추가해서 18나한을 모신다.


정전 뒤쪽엔 외조의 두 번째 건물에 해당하던 영우전이 나온다.



역시 향이 자욱하다.


영우전 현판

역시 옹친왕부의 내문에 해당하는 건물로 강희제 때 건물을 개조한 것이다.


영우전 내부


가운데는 무량수불(아미타불)을 모셨고 좌우로 약사불과 사자불을 모셨다.


본존 무량수불

티벳불교에서는 아미타불을 무량수불로 부르며 매우 중시한다.

도상 또한 한국과는 다르게 보살형이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협시불인 약사불. 약함을 들고 있어 잘 알 수 있다.

불단 앞에는 역시 칠보가 바쳐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