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1차 東京

東京紀行 - 4일 에도성유적江戸城跡(고쿄가이엔皇居外苑)·도쿄역東京駅

同黎 2018. 4. 12. 01:44



걸어가는 길

해상보안청 건물

옆으로는 국토교통성, 뒤편으로는 총무성, 국가공안위원회, 외무성 등이 있다.


전경버스

뭐 한국 광화문에 비하면 한가한건가


경시청 본부


저 앞에서 이봉창이 쇼와천황을 향해 폭탄을 던졌다.


에도성의 바깥 해자인 소토보리


왼쪽 성곽 부분은 성곽이 부분 부분만 보이고 거의 언덕이다.


확실히 크긴 하지만 방어의 목적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날이 좋으면 이 해자에서 배타고 뱃놀이도 한다고


덥다


더워서 우산을 양산처럼 가지고 다닌다.


날은 끝내주는구나


에도성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자신의 전통적 기반인 미카와, 스루가 등 5개국에서 관동의 8개국으로 이봉당하면서 쌓아올린 거성이다. 히데요시는 기존 150만석에서 250만석으로 이에야스를 올려주는 척하며 골치 아팠던 후 호조씨의 영지와 잇키들이 많은 곳을 준 것이었으나 이에야스는 무로마치 막부의 실패를 무사들의 귀족화라고 생각하고 가마쿠라 막부처럼 새로운 통치기반을 생각해 무사시노쿠니에 새 성을 쌓는다. 가마쿠라는 좁았기 때문에 관동평야를 낀 넓은 에도를 새로 개척한 것이다. 이후 에도에 막부가 개설되면서 끊임없이 증축이 되었고 5층에 높이 65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천수각도 세워졌으나 17세기 불탄 이후 어차피 군사적 쓸모도 없고 돈만 잡아먹는 천수각은 재건하지 않았다.


기념사진


전진 중


멀리 사쿠라다몬이 보인다.


건너편에 보이는 구 법무성 건물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아름다운 건물인데 너무 더워서 지나갔다.


구 법무성 본관

정말 아름다운 건물이다.


1895년 지은 건물로 관동대지진을 이겨냈으나

도쿄대공습 당시 지붕과 내부는 소실, 이후 복원해서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는 법무종합연구소와 법무사료전시실, 국회도서관 법무도서관 등으로 쓰이고 있다.


뒤편의 모습

다음 14차 답사 때 방문했다.


걷는 중


과거 에도성은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혼마루에서 시작해 니노마루, 산노무라와 니시노마루와 기타노마루를 갖추었고 기타노마루를 제외한 곳에 다 어전이 있었다. 누각에 해당하는 야구라는 총 46동이 있었으며, 문은 외곽에 25동, 내곽에 11동, 성내 87동이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화재로 많은 건축물이 소실되었는데, 혼마루어전은 이미 화재를 너무 많이 겪다가 1863년 소실 이후 재건되지 않고 니노마루 어전으로 기능이 옮겼으나 1867년 화재로 소실되어 역시 재건되지 않았다. 메이지천황이 도쿄로 천도했을 때는 니시노마루 어전에 자리잡았고, 이마저 1873년 대화재로 소실되자 이후 메이지궁전이라는 새 궁궐을 건설한다.

그러나 도쿄대공습 당시 지금의 헌정기념관 자리에 있던 참모본부가 공습당하면서 그 불씨가 궁전에 옮겨붙어 황거가 전소하고 구 에도성 유적도 대부분 소실된다. 문 중에는 사쿠라다몬, 기요미즈몬, 타야스몬 3곳이 살아남아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야구라는 일부 피해는 받았으나 복원해서 4동이, 성을 지키던 번소는 3곳이 남아 궁내청 소유로 남아 있다.


사쿠라다몬 안내판이 보인다.


해자와 고층빌딩이 이채롭다.


쿠라다몬(桜田門)

정확히 말하면 외사쿠라다몬이다.

일본에서는 사쿠라다몬 사건이라고 하는 이봉창 의거가 있었던 곳


코라이몬(고려문)과 야구라몬(로문)의 이중 구조로 이루어졌다.


외곽에는 코라이몬 형식


이 곳이 바로 그 유명한 사쿠라다문 밖의 변이 일어난 곳이다.


히코네번주이자 다이로였던 이이 나오스케는 안세이의 대옥을 통해 토막파를 철저히 탄압한다. 또한 미일수호조약을 독단적으로 처리하고 쇼군의 후계자 문제까지 처리하려 하자 양이지사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 결국 미토번주 도쿠가와 나리아키(후일 마지막 쇼군이 되는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아버지)를 가택연금 시키고 그 중 죽게 되자 이에 불만을 가진 미토번에서 사츠마번의 낭사를 끌어들여 성에서 나오는 이이 나오스케를 습격한 것이다. 미토번사들은 나오스케의 가마를 습격하는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대단한 작전을 벌여 이이 나오스케의 머리를 벤다. 나오스케의 죽음으로 막부는 미토번의 무사 352명을 처형하지만 결국 마지막 지지대를 잃고 전국의 존왕양이파들이 득세하며 결국 메이지유신에 이른다.


사쿠라다몬 안내문


표지석


들어간다


야구라의 모습


성채의 모습

정교한 듯 보이지만 오사카성에 비하면 확실히 덤덤하다.


문짝의 모습


코라이몬을 통과하면 방어 목적의 야구라몬을 지난다.


둘 다 중요문화재


들어가면


거대한 공원이 나온다. 이곳이 황거외원(고쿄가이엔, 皇居外苑)

옛 에도성 니시노마루 아래쪽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과거에는 각종 기관과 다이묘들의 사무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천황의 도쿄천도 이후 황실어원의 역할을 하다가 공습으로 사라진 황거가 재건된 1969년에 공원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그러나 그 전에도 광장으로서의 역할을 계속 하긴 했었다고 한다.


안에서 본 사쿠라다몬


특이하게 이 곳은 환경성 소속이다. 그래서 각 문들이 중요문화재가 된 것이다.

그러나 궁내청 소속의 야구라와 번소들은 문화재 지정이 안 되었다.


에도성 니시노마루 성벽

저 안쪽에 황거가 있다.


공원 뒤편으로는 마루노우치라는 도쿄역으로 연결되는 최고의 중심가가 펼쳐진다.

우리로 치면 광화문 일대


이행묵


심희곤


둘이 좋단다


나는 더워서 쉬는 중


완전히 공원이다.


이곳에서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는데 특히 전후 미군정기의 시기에 사건이 많았다.


8월, 항복을 의미하는 옥음방송이 나오고 난 후 비로소 항복했음을 알았던 이들이 집단자결을 하기도 했다. 또 1946년 조선인생활권옹호전국대회가 열려 갑자기 외국인이 된 조선인들이 자신들의 생존권을 걸고 황거에서 수상관저까지 데모를 했던 곳이기도 하며, 일본공산당과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가 각종 대회를 열려고 하기도 했고, 1952년에는 이곳에서 노동절대회를 열려는 시위대와 경찰이 격돌해 사망자가 나오는 피의 메이데이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지금은 그냥 평화로운 공원이다.


이행묵도 왔다


좋냐


덥다


심희곤 합류


또 셀카



이제 도쿄역 방면으로 이동 중


다리가 보인다.


이것이 황거(고쿄)의 입구인 니주바시(이중교)


우리는 황거 관람은 신청하지 않았다. 미리 궁내청 홈페이지에서 신청해야 한다.

이곳에서는 의열단원이었던 김지섭이 1924년 이곳으로 폭탄을 던졌던 의거가 있었다.


에도성의 니시노마루 일대에 지금의 고쿄(황거)가 자리잡았다. 니시노마루 앞은 고쿄가이엔, 키타노마루는 키타노마루공원이라는 환경성 관할의 공원으로 완전 반환되었고, 과거 혼마루, 니노마루, 산노마루는 히가시교엔이라는 이름으로 궁내청 산하 공원으로 공개되고 있다. 전체 가치는 무려 한화로 2조 5천억이 넘는다는데... 세계에서 제일 비싼 도쿄의 가장 비싼 곳에 위치한 곳이니..


기념사진


힘들다


하..


장지훈


니주바시 너머로 보이는 건물은 에도성 천수각 역할을 하던 후지미야구라이다.


저 깊숙히 있는데 공습도 피한 문화재 중의 하나이다.


멀리 니주바시와 연결된 문은 오테몬이다.

과거 정문이었으나 지금은 대공습으로 불탄 것을 복원한 것이다.


이제 도쿄역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멀리 보이는 마루노우치 방향 번화가


오래된 경비초소


더워서 다들 미쳐가는 중


도쿄역까지 걸어가야 한다.


올 때는 태풍이 불더니만...


다들 죽으려 한다.



그늘이 없다


멀리 보이는 건물은 메이지생명 본관

중요문화재다


뒤편은 그 뒤에 지은 지금의 본관


미츠비시, 메이지생명, 미쓰이 등의 본사가 다 여기 있다.


택시 잡기를 시도하지만


제발


안 잡힌다


여기는 택시가 없다.


절망


엄청 절망


공원만 보인다.


메이지생명


가다보면 에도성의 가장 바깥 쪽 성곽이 나온다.


메이지생명


쇼와시대의 건물로 1934년에 지은 건물. 전후 미군정에 접수되어 극동공군사령부가 자리잡았고, 메이지생명과 야스다생명이 합쳐진 후 뒤편에 새 건물을 지어 완전히 보존되었다.

일본에서는 주일대사들이 신임장을 천황한테 제출할 때 도쿄역에서 마차를 타고 황거까지 간다고 하는데(이런 걸 왜 하는지 모르겠다...) 한동안은 여기서 출발했다고


넓은 해자


많은 빌딩들


여기서 도쿄역 뒤편까지 쭉 빌딩가다.


택시다


겨우 택시를 잡아


도쿄역으로 이동


이건 무슨 건물인지 모르겠고


이게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도쿄역 마루노우치역사


잠시 서성이는 중



도쿄역사


지금 황거 쪽의 도쿄역사는 1896년 처음 세워졌다. 황거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천황이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중앙역을 본따 만들었다고 하며 한국의 서울역과 부산역도 도쿄역을 상당부분 참고해서 만들었다. 

관동대지진은 이겨냈는데 도쿄대공습으로 중앙과 남북의 3개 돔 부분 및 지붕과 3층이 날라갔다. 이후 사용 가능하게 복구한 뒤 반대편 동쪽면 역사가 만들어지고 백화점과 호텔이 들어서면서 크게 확장된다. 현재 토카이 신칸센의 출발점이 도쿄역이다. 

그러나 재개발로 옛 역사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시민운동이 벌어지고 결국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공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전경


야경


들어가본다


JR히가시니혼 출입구


중앙돔


돔의 모습


돔 천장

복원된 모습이다.


기둥도 새로 만들어 넣은 것 같다.


우리의 목적은 건너편 야에스출구 쪽에 있는 나고야 미소돈카츠집에 가는 것


헤매다가 지하철 입구로 들어간다.


지도


거의 미로이다....


거의 한 시간을 뒤져


야바톤 발견

지하가 공사 중이라 더 헤매고 다녔다.


잠시 대기


나고야에서도 먹고 도쿄에서도 먹는구나


미리 메뉴 선택 중


입장


자리가 없어 이런 가림막 칸으로


어쨌든 밥 먹으니 좋다.



배고픔


소스만 있는 것


나는 반반


이게 젤 괜찮다


미소소스 전체


밥을 먹고 너무 더워 숙소 근처를 돌아다니기로 하고 다시 택시를 탄다.


가는 길에 발견한 일본은행 본점


이것도 중요문화재인데 그냥 지나친다. 너무 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