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3차

일본불교미술답사기 - 4일 야와타 (이와시미즈하치만구石清水八幡宮)

同黎 2018. 5. 19. 02:08



4일째 아침

오늘은 납경을 받으러 가는 날이다.


아침 일찍 남쪽 야와타를 들렸다가 교토시내를 하루 종일 돌아다닐 예정


여전한 가모가와


케이한 본선 탑승


주쇼지마에서 준급으로 환승


야와타시역 도착

이곳은 준급만 선다.


내리면 바로 앞에 오토코야마 케이블이 보인다.


차가 서 있다.


차는 30분에 한 대 꼴이고 사람이 있으면 15분마다 한 대씩 내려주기도 한다.

다른 곳보다는 유도리가 있게 운영하는 법


올라가는 중


에디슨 그림도 보이고


그리 높이 올라가지는 않는다.


거의


도착


차에서 내린다.

여기도 참 여러 번 와봤다.


내리면 계단길과 언덕길이 있는데 언덕길이 더 낫다.


언덕길 가는 길


이와시미즈하치만구 경내도

이와시미즈하치만구(石清水八幡宮, 석청수팔번궁, 이와시미즈하치만궁)은 여러 번 와봤다.


 

원래 하치만신은 3위의 신을 의미한다. 본존이 되는 혼다와케노미코토, 협시인 히메오카미=무나카타삼여신, 오카나가타라히메노미코토=신공황후로 이루어져 있다. 본래는 규슈의 우사신궁에서 모시는 신으로 지역의 신인 혼다와케와 바다의 여신이며 역시 규슈 지역신인 무나카타신, 그리고 삼한정벌의 신화를 지닌 신공황후가 결합된 3위의 신이었다. 그런데 나라시대 도다이지 건조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던 조정에 우사신궁의 신탁이 내려져 신도의 신들이 부처의 제자가 되어 도다이지 조영을 돕는다는 내용이 쇼무천황에게 전해지고 이후 신불습합의 단초를 마련한다. 이후 하치만신의 격이 높아져 주신 혼다와케는 15대 오진천황으로 히메오카미는 그 황후와 동일시되고 여기에 오진천황의 어머니인 신공황후까지 합쳐져 황실의 조상인 황조신이 된다.

그 후 헤이안시대 초기 구카이의 제자가 받았다는 신탁을 근거로 교토 서남쪽에 이와시미즈하치만구가 세워지게 된다. 귀문인 동북쪽에는 히에이잔과 쿠라마데라 등 여러 신사와 절이 이미 있었고, 그 정반대인 이귀문에 해당하는 서남쪽은 강이 흐르고 있고 높은 산이 없으니 사실상 언덕인 오토코야마에 강력한 신을 모신 것이다. 그래서 세이와천황의 명으로 지금의 신사가 세워지고 기존 군사의 신의 이미지에 수운의 신의 이미지까지 더해진다. 애초에 신불습합이 강한 신사였기 때문에 신의 호칭을 하치만대보살로 하고 신궁사로 호국사라는 사찰을 지어 한 때 승방이 48개에 이르렀다. 그리고 세이와 겐지, 즉 후일 가마쿠라 미나토모씨에서는 자신들의 조상신으로 하치만신을 모셨고 이외에도 자신들을 겐지의 일파로 여기는 아시카가, 이마가와, 타케다, 마츠다이라, 도쿠가와씨에서 지극하게 섬겼고, 타이라씨 역시 중히 모셨다. 전국에 하치만신을 모신 신사가 없는 곳이 없다. 천황가에서도 사실상 하치만신사의 중심으로 인정해서 이세신궁과 함께 이소종묘로 불릴 정도였다.

그리나 메이지유신 이후 신불분리의 영에 의해 이 승방들은 모두 철거된다. 거기다 산을 가득 메우고 있던 대탑과 같은 불교적 건축물도 모두 철거되고 불상이나 불경, 불구는 파괴되거나 흩어진다. 현재는 산 위의 본궁과 산 아래의 돈궁이 있다. 그래도 지금의 본전 건물 10동은 후의 권현조로 이어지는 팔번조 건축물의 본보기이자 가장 오래된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2016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전역은 사적으로 지정


올라가는 길


국보 지정을 기념하는 깃발이 꽂혀있다.


올라가는 길은 섭말사


이제 본전으로 간다.

남문이 보인다.


본래 등산 경로로 올라올 경우 이어지는 참도


남문

신불분리 후 작은 규모의 남문은 아래로 옮기고 당문 형식으로 새로 지어서

본사의 4문 중 유일하게 중요문화재가 아니다.


안내문


국보라고 금새 안내판도 바꿨다.


복숭아 꽃을 바치는 제사의 안내


본사 전경


사무소

뭔가 공사 중


정면에 보이는 것은 누문과 회랑이다.


신목


본전-이시노마-배전(폐전)이 工자로 연결되는 권현조 건물의 조상답게 매우 구조가 복잡하다.

한 개의 건물처럼 연결된 10개의 건물은 이렇게, 먼저 정면의 누문과 동문, 서문,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3동의 회랑이 있다. 그 안에는 무전과 폐전, 본전이 工로 연결되며 이것을 나무로 조각한 담장이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그 담장 안은 금족지이며 하치만신, 즉 오진천황과 아들 닌토쿠천황을 모시던 충신인 타케시우치노 스쿠네를 모신 무내사라는 섭사가 있다. 이 구조는 쓰루가오카하치만구와 거의 동일하다. 다만 쓰루가오카 쪽이 조금 더 건물이 큰 편


항공사진


회랑의 모습

평소에는 누문 밖에서 참배해야 한다.


옆길


동문


동총문

중요문화재


담은 노부나가가 지었다고 전하는데 그냥 이렇게 중간에 기와를 넣고

쌓은 양식을 노부나카병이라고 하는건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본사 측면


섭사인 와카미야덴샤

중요문화재

오진천황의 딸을 모셨다.



미즈와카미야샤

제신은 모르겠다.



와카미야샤

오진천황의 아들인 닌토쿠천황이 주신

천황을 모셔서 그런지 크다.



남성의 수호신이라니


닌토쿠천황이 제신이라는 안내판


여성의 수호신?


동북쪽은 귀문이라 축대가 이렇게 잘라져 있다.


귀문을 봉했다는 안내문


북총문

역시 중요문화재



뒷쪽 회랑


섭말사들



스미요시사

중요문화재



신보를 보관하는 교창

교토부지정문화재




무나카타사


서총문

중요문화재



서문

역시 국보


2017년 내부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그건 15차 여행기에


남총문으로 나간다.


사무소


금족지


내려가는 길


다시 케이블로


산상역


내려간다


멀리 보이는 교토분지


산 아래로 내려왔다.


여기서 옆으로 돌면


산 아래 있는 돈궁이 나온다.


여기도 이와시미즈하치만구


작은 절도 있는데 신사와는 관계가 없다.


돈궁 도리이

과거 이치노도리이로 에도시대 초기에 세운 것이다.

금색 현판은 천황의 하사품


입구


신마를 모신 곳


남문

과거 남총문이다


남문을 들어서면


돈궁전이 있다.

큰 제사가 있을 때 신여에 신체를 모셔와 머물게하는 곳으로 행궁에 속한다.

현재 건물은 토바 후시미 전투 당시 소실되고 다이쇼시대에 재건한 것


여기 온 이유는 다른 중요문화재를 보기 위해


거대한 오륜탑


항해기념탑이라고 하여 타카쿠라 천황 당시에 송과 무역하던 상인들이 난파를 피하고

이를 감사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수운의 신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런 듯하다.

 

안내문


높이 2.4미터로 일본 최고의 오륜탑이다.


안내문


문을 열고 들어온 모습


쓰러져 있는 표석


다시 교토시내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