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5차

기나 긴 일본답사기 - 7일 후지이데라3 (도묘지道明寺)

同黎 2019. 2. 7. 04:05



도묘지 역시 매월 18일과 25일에만 본존을 개방한다.


머지 않아 보이는 사찰의 산문


이 곳도 두 번째이다.



도묘지(道明寺, 도명사)의 역사는 도묘지텐만구와 비슷하다. 고대에는 칠당가람과 오층탑을 갖춘

대규모 사찰이라고 전한다. 이후 스가와라노 미치자네가 규슈로 좌천되는 길에 이곳에 들려

스스로 십일면관음상을 깎아 모셨다고 하며 그것이 현재의 본존 십일면관음이다.

그러나 전국시대 병화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고 근처 강이 범람해 지금의 자리로 사찰을 옮겨

텐만구와 도묘지가 일체화되었다가 신불분리로 이해 도묘지를 현재 자리로 이축하였다. 그러니 건물은

대부분 에도~메이지시대의 것이다. 현재는 진언종 어실파에 속하는 비구니사찰이 되었다.


도명사라는 현판


경내는 아주 작다.


본당 하나와 고리 정도만 있는 곳


본당으로 간다.


매월 18일과 25일에만 연다.

배관료는 1000엔


관세음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내부의 모습


높이는 98cm로 작다.


가까이서 보면


9세기의 작품으로 국보

8~9세기의 전형적인 백단상의 하나로 부드러운 목재의 분위기를 잘 살린 작품이다.


보기 힘든 작품


사진으로는 느낌이 잘 살지 않는다.


부드러운 느낌의 조각


십일면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옷주름이나 신체의 표현도 자연스럽다.


살찌고 근엄한 표정이다.

스가라노 미치자네의 자작상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런지는


한쪽에 모셔진 대흑천상


비사문천상


십일면관음입상

요즘 것인 듯하다.


부동명왕


흥정보살 에이손


석가여래삼존상

에도시대


뭐로 봐도 에도시대다.


비사문천


불단 뒤편에 올려진 약사여래와 십이신장상

모모야마시대


마당의 큰 돌은 주춧돌이라는데

이렇게 큰 주춧돌은 어디 쓰였는지


산문을 나와 돌아간다.


역으로 가니 한쪽에는 오사카 여름 전투 도묘지합전 기념비가 서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치는 마지막 전쟁인 오사카 여름의 진에서

도요토미군이 오사카성을 나와 도쿠가와군에 맞섰던 전투이다. 다테 마사무네, 혼다 타다마사 등의 공격에

도요토미군의 선발대가 거의 전멸하고, 후발대인 사나다 노부시게(유키무라)가 나머지를 수습해 퇴각했다.

이후 전투는 텐노지 합전을 거쳐 마지막으로 달려간다.


도묘지역 도착. 이제 후루이치를 지나 키시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