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5차

기나 긴 일본답사기 - 7일 후지이데라1 (후지이데라葛井寺)

同黎 2019. 2. 6. 20:03



여관 다이야에서 내려가는 길

매번 이래서 좀 무서웠다.


오늘은 오사카 남부를 가야 하기 때문에 킨테츠를 타러 교토역으로 간다.


우리가 가는 건 반대쪽의 킨테츠 교토역


한참 걸어간다.


후지이데라로 가려니 특급밖에 없다.

비싼 돈 들여서


카시하라진구마에로 가서 준급으로 갈아타고


후지이데라역에 도착


여기서 조금만 걸어가면


1번가 상점가가 나오고


상점가 끝에 후지이데라가 나온다.


입구에 모셔진 석불들

지장보살반가상?


후지이데라 사각문

모모야마시대, 중요문화재

사방 한 칸짜리로 기둥이 4개면 사각문, 정면 3칸으로 기둥이 8개면 팔각문이라고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지어준 문


여긴 벌써 4번째이다. 후지이데라(葛井寺, 갈정사)는 같은 음을 써서 칡 갈자 대신 등나무 등자를 쓰기도

하고 지금 위치한 도시의 이름도 이를 따서 후지이데라가 되었다. 쇼무천황의 칙원에 따라 교키(행기)가

창건했다고 하는데 후지이씨의 우지데라라고도 해 아마 나라시대 백제의 도래인들이 짓고 이를 천황이

후원해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후지이씨는 본래 이라이씨(백저씨)로 조상은 백제의 진손왕

(辰孫王)이며 일본서기에서만 등장하는 인물이다. 진손왕은 근구수왕의 손자, 진사왕의 아들이며 왕인과

함께 일본에 건너왔고 귀화했다고 한다. 백제계 도래인인 것은 분명하며 이 근처에 있는 수많은 고분들과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나라시대에 만들어진 본존이 있는데 나라시대에 창건된 것이 확실하다.


이후 후지이데라는 헤이안시대 초기 헤이제이천황의 아들 아호친왕이 재흥했는데 이는 아호친왕의

어머니가 후지이씨였기 때문이다. 중세에는 연혁이 다소 불완전하지만 천수관음이 사이코쿠 관음영장의

불상으로 크게 숭배받으면서 순례자들이 많아졌다. 헤이안시대 말기에 후지이씨에 의해 크게 수리되었으나

남북조시대 때 남조의 쿠스노키 마사시게의 진지가 되어 병화로 모두 불탔다. 이후 16세기에

히데요리 등의 후원으로 재건되었고 나머지 건물도 모두 에도시대의 것이다.



가는 날이 장날인지 뭔가 팔고 있다.


멀리 보이는 석등과 남대문


한쪽의 소나무가 바로 쿠스노키 마사시게가 기를 두었다는 곳


본당 옆에는 등나무가 있는데 여름이면 이렇게 등나무꽃이 장관이라고


본당


에도시대 18세기의 건물이다.


오늘 여기 온 것은 매달 18일마다 본존을 공개하기 때문

나라시대의 명작인 건칠천수관음좌상을 볼 수 있다.


배관료는 천 엔이지만 아주 가까이서 이 명작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때 많은 사람들이 온다.


멀리서 찍은 사진

내부 복장에서 나온 천수천안다리니경이 740년 규슈에서 일어난 후지와라노 히로츠구의 난을

진압한 기념으로 조성한 것이라 불상의 시대를 짐작할 수 있다.


가져온 사진

나라시대, 국보이다.


천수관음이라고 정말 천 개의 손을 조각한 경우는 거의 없는데

이 불상은 작은 손 1001개와 큰 손 40개를 가지고 있다.


방식이 특이한데 일반적 불상의 뒤편에 광배처럼 손을 따로 만들어 분리식으로 만들어 놓은 것


측면을 보면 손이 풍성하게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뒤편 손을 조각해서 붙여놓은 판이 보인다.


옆에 있는 지장보살과 애염명왕


지장보살

헤이안시대


가마쿠라시대에 만든 금동사리탑

중요문화재라고 하는데 이 곳은 워낙 중요문화재라는 뻥이 많아서 확신할 수가 없다.


아미타여래상


불상과 관련된 영상을 틀어주는 중


본체와 분리된 천수


사진


서화


정면에는 에도시대 세운 남대문이 있다.

이것도 중요문화재가 아닌데 중요문화재라고 가짜 팻말이 써져있다.


아미타당


안에는 에도시대의 아미타상과 이십오불상이 모셔져 있다.


본존 아미타상


협시



이십오보살상


본당 정면


쿠스노키 마사시게가 기를 꽂아놓았다는 소나무


안내문


남대문으로 간다.


문 안쪽에 지옥도를 모셔놓았다.


음 요새 것


인왕상


에도시대


전형적인 에도시대의 매너리즘 조각


문 밖에 서 있는 표석


자운산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현판


오늘 가는 곳이 다 시골이라 식당 따위는 없기에 아침 겸 점심으로 장에서 사는 팥밥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