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5차

기나 긴 일본답사기 - 15일 오미하치만1 (히무레하치만구日牟禮八幡宮)

同黎 2019. 3. 31. 00:27



이제 좀 더 호수 가까이로 이동한다.


한적한 오미평야

참 신기한 동네다


가는 길 발견한 요시노야에서 식사


나는 스키야키를 먹어보지 못했는데, 대신 요시노야에서 그냥 파는 걸로 대체해본다.


도시 근처로 내려왔다.


오미하치만시 시내에 있는 히무레하치만구


도리이가 보인다


비와호와 니시노호를 이어 연결한 운하

모모야마~에도시대 오미 상인들이 만든 운하로 일부분이다.

비와호의 수로를 통해 교토로 물건을 수송하고 더 나아가 직접

베트남까지 무역을 했던 오미 상인들의 흔적을 보여준다.


신사 문이 보인다.


주차


히무레하치만구 누문


히무레하치만구(日牟禮八幡宮, 일모례팔번궁, 히무레하치만궁)

여러 번 왔었다.



히무레하치만구의 시작은 전승에 따르면 13대 천황인 세이무천황이 즉위할 때 대신에 임명된 타케우치노

스쿠네(武内宿禰)가 명을 받아 이 지역의 신인 오시마신을 제사지낸 것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다만 이 때

세운 신사가 이 히무레하치만구의 섭사인 오시마신사인지 근처에 있는 다른 오시마신사인지는 미상이다.

게다가 오시마신은 오쿠니누시과 동일시되어 그 정체를 알기 어렵다. 이후 오진천황이 어머니 신공황후의

고향인 오미지역을 찾으면서 역시 지역신인 오키츠시마신(이 신도 무나카타 삼신과 동일시되어 버렸다)의

신사에 제사지내고 돌아오던 길에 이곳 근처에 휴식하면서 가전을 세웠는데 그 가전 근처에서 일륜의

형상 2개가 나타나는 불가사의한 일이 생겼고 이후 오진천황=하치만신을 모시는 신사를 지으면서

이 일에서 따와 햇무리를 의미하는 히무레라는 이름을 붙여 하치만구를 지었다는 것이다.

다만 나라시대 초기 후지와라노 후히토가 이곳을 참배하고 지었던 와카에는 같은 발음의 다른 한자인

比牟禮社라고 표현하고 있어 원래 히무레는 어떤 뜻인지는 불명인데 오사카부에는 우두천황(현재는

스사노오)과 천손강림 당시 니니기를 따라 내려온 아메노코야네를 모신 모레신사(牟禮神社)가 있다.

도래계 신사로 보고 있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그리고 나라시대까지만 해도 전설과는 달리

하치만신이 주신이 아니라 이 지역의 토착신을 모시는 우지신사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 10세기 이치조천황이 이 곳 하치만야마 위에 우사신궁에서 신을 권청해와 하치만구를

세웠고 상사가 되었으며 아래의 우지신사는 하사가 되었다. 이후 황실의 숭경이 깊어지면서

가마쿠라시대에 원의 침입을 맞이하여 격이 높아지고 이후 천황들이 폐백을 바치고 기도를 하였다.

무로마치시대에는 인근의 롯카쿠씨의 지원을 받았다가, 이후 히데요시의 양자 히데츠구가 관백이 되고

하치만야마에 성을 쌓으면서 산 위의 신사가 내려와 지금 자리인 하사와 합사가 되었다. 이후 히데츠구가

할복하며 무가의 지원은 받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가 이미 산 아래 성하정의 상인들을 많이 지원하였기

때문에 오미 상인들의 지원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천하를 잡으면서

이곳에 지원을 해주었고 에도시대에 막부의 지원을 일정 부분 받았다.

 그러나 가장 큰 지원은 역시 오미상인들로 에도시대 이후 이들이 베트남 무역으로 진출하면서 바친

에마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는 마츠리가 크게 행해져 중요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배전


에도시대


사무소에서 납경


노무대

국화축제로 가려져 있다.


배전


현관


뒤편 산으로 통하는 길


국화 축제가 한창


기도소


배전


본전 앞에는 호빵맨과 세균맨이 몇 년째 봉납되어 있다.


수석 축제


이제 이곳을 떠나


또 산으로 들어간다.


묘한 아파트


비와호를 바로 옆에 둔 산 위로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