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5차

기나 긴 일본답사기 - 24일 나고야2 (도쿠가와미술관徳川美術館2)

同黎 2019. 5. 5. 03:33



이번엔 13대 쇼군의 정실(미다이도코로)인 텐쇼인 아츠히메와

14대 미다이도코로 카즈노미야 치카코 내친왕을 다룬 전시를 본다.


텐쇼인 아츠히메(天璋院 篤姫)는 13대 쇼군 이에사다의 정실이다. 당시에 쇼군의 미다이도코로가 2명이나

요절해서 수명이 길다고 알려진 시마즈가의 딸을 들이기로 하는데 당주였던 시마즈 나리아키라에게는

적당한 딸이 없었다. 그래서 분가인 이마이즈미 시마즈가 당주인 타다타케의 딸을 본가 양녀로 들였는데

타다타케는 일개 무라(村)을 다스리는 한미한 집안이었기에 적당하지는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어쨌든

이후 의례적인 과정으로 고노에가의 양녀가 되어 미다이도코로가 되었다. 그러나 이에사다는 발달장애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병약하여 이미 후손을 보기 어려울 것이 예정되어 막부는 키슈번의 이에모치를

미는 난키파와 미토번에서 히토츠바시가의 양자로 간 요시노부를 미는 히토츠바시파로 나뉘어져 있었다.

당시에 시마즈씨는 히토츠바시파에 속했고, 무리해서 아츠히메를 미다이도코로로 삼은 것도

요시노부를 밀기 위해서라고 생각된다.

어쨌든 아츠히메가 들어오고 불과 2년 후 이에사다가 사망하는데, 아츠히메는 사츠마번의 기대를 저버리고

이에모치에 협력하였고, 더 나아가 공무합체를 지지해서 이에모치의 미다이도코로로 황족이자 닌코천황의

딸인 카즈노미야 치카코 내친왕을 맞이하는데 협력했다. 비록 개인적으로 카즈노미야하고는 사이가

별로 좋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협력해 도쿠가와 가문을 지키는데 노력했다. 사츠마번의 기대에 자꾸

어긋나는 짓을 하니 사츠마번으로부터 돌아오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도 받았지만 물리치고

철저히 도쿠가와가의 사람으로 살았다고 한다.


카즈노미야 치카코 내친왕은 닌코천황의 8녀이자 고메이천황의 이복동생이다. 개항으로 인해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막부 측에서 추진한 공무합체운동의 일환으로 14대 쇼군 이에모치의 정실로 왔다.

이 혼인 협상이 대단히 어려웠는데 황실에서 여러 조건을 막부에 제시하였고 이와쿠라 토모미와 산조

사네토미 등의 중재로 결국 혼인은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의외로 두 사람의 사이는 매우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조슈번의 강력한 반발이 부딪친 이에모치가 제2차 조슈정벌에 출진했다가 병사하고 결국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15대 마지막 쇼군으로 즉위한다. 메이지유신 후 두 여성은 모두 쇼군가 여성으로 삶을 마쳤다.


오란다기밀풍설서

막부가 해외 정보 기밀을 정리한 문서이다.

오와리번의 14, 17대 번주인 (2번 번주를 했다) 도쿠가와 요시카츠가 베낀 것이다.


미리켄선 카나가와 입진도

페리 제독의 내항을 그린 그림

오와리번에서 제작


미토번주 도쿠가와 나리아키의 편지, 마츠다이라 요시나가(슌카쿠) 앞

쇼군 후사 문제를 논의하는 편지로 요시노부 옹립에 관한 내용


무오의 밀칙

안세이 대옥과 미일수호통상조약에 대해서 조정에서 미토번에 직접 내린 밀칙이다.


도쿠가와 이에사다 초상

13대 쇼군 이에사다의 초상이다. 카노 타다노부 필


은제 매 모양 장식

도쿠가와 이에사다 소용품

태엽을 감으면 움직이는 인형이라고


은제 토끼모양 문진

이에사다의 유품


흑칠 상자와 서안

13대 이에사다, 14대 이에모치 사용


텐쇼인 아츠히메의 사진


대자식비전서

다이스를 이용하는 다도에 대한 비전서로 이게 워낙 복잡해서 귀족가문에서나 행하던 다도다.

그녀가 시집올 때 공부용으로 가져온 것


직무여화

오오쿠 내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적은 수기


사츠마유리 남색주병

아츠히메가 오오쿠에 들어갈 때 친아버지가 주어 지참했던 것이다.

당시 사츠마번에서 집성관사업을 통해 만들었던 서양물 중의 하나이다.


강아지 모양 도자기 인형

사츠마야키


사츠마야키 향합과 수적

아츠히메 소지품


향도구장

아츠히메가 시집올 때 가져온 혼례용품을 포함하여 향도를 위한 책이다.


마키에 서랍장

아츠히메가 죽을 때까지 가장 옆에 두었던 서랍장이다.


연경향례

에도시대

10가지 종류의 향목을 알아맞추는 놀이에 사용되는 도구들

아츠히메가 쓰던 것


흑칠마키에소고

아츠히메가 사용하던 장구


아오이문 마키에향로

아츠히메가 혼인할 때 가져온 조도류 중 하나


거울과 마키에 경상

역시 혼례 조도류


경대

혼례 조도류


흑칠아오이모란문 마키에세숫대야와 거울

혼례 조도류


마키에 흑치상

혼례 조도류

귀족들이 이를 검게 물들이는데 쓰이는 것


흑칠마키에도금상

도금이란 이를 물들일 때 쓰는 여러 도구를 놓는 물건이다.


흑칠마키에미작상

혼례 조도류

눈썹을 미는 때 쓰던 도구 상자이다.


도쿠가와 이에모치 초상


흑칠마키에대접

이에모치가 미츠키 마츠다이라가 당주에게 하사한 접시이다.


'일패'

이에모치 휘호


자기투사그림엑자

프로이센 19세기

일본과 교섭 중인 프로이센에서 이에모치에게 선물한 것이다.


전 카즈노미야 치카코 내친왕 사진

그녀의 사진으로 알려진 것이지만, 메이지시대 나온 잡지에 메이지천황의 황후인 소헌황태후의 자매인

야마토 코리야마번주 야나기사와 야스노부의 정실 아키코의 초상이라는 내용으로 실어놓아 정확하지 않다.


은제 장식품

고메이천황이 카즈노미야에게 어릴 때 내린 장식품들이다.


매화문마키에향합과 향목

역시 고메이천황의 하사품


춘내금

당시 쇼군과 공주의 결혼은 큰 흥미를 가져왔고 그에 관한 이런 책도 출판되었다.


겐지어축언

당시의 혼례를 묘사한 그림


카즈노미야 어계보초병보유

카즈노미야가 미다이도코로가 되면서 그 계보를 정리하고 모시는 여관들을 정리한 책



카즈노미야의 문장이 새겨진 염부접시

황실에서 나베시마야키에 의뢰하여 만든 것으로 혼례 당시 가져온 것


역시 혼례조도류이다

마키에 주전자와 세숫대야


여행용 화장용품 일습


마키에 흑치완과 대

도쿠가와가의 문장과 카즈노미야의 문장이 섞여있다.


의대


흑칠 나츠메와 다상


청화백자 다완과 다완대


마키에 연상


마키에 서안


마키에 흑치완과 대


흑칠마키에작미상

눈썹을 다루는 도구들


당시의 오오쿠를 묘사한 그림


코우치기

코노에가의 문장이 들어간 것이다. 아츠히메가 입던 것


코소데

아츠히메가 입던 것


후쿠사

후쿠사는 서로 선물을 주고 받는 당시 물건을 덮는 용도로 쓰였다. 아츠히메가 쓰던 것이다.


비단 방석

아츠히메 사용

고노에가의 문장이 들어가 있다. 아츠히메와 카즈노미야가 처음 대면할 때 아츠히메는 시어머니임을

내세워 상좌에 앉았고 이에 황실이었던 카즈노미야 측이 분개했다는 일화가 있다.


요시미와 오비

카즈노미야 소용품


우치카케

카즈노미야가 입었던 옷


우치카케

역시 카즈노미야의 소용품


코소데

카즈노미야 착용품


부채

카즈노미야 소용품


대모 비녀

카즈노미야가 혼례할 때 해간 것이다.


다도에 쓰이는 비단 회지(카이시)지갑과 연초지갑, 및 담뱃대 싸개

카즈노미야 소용


모란문자수 상자덮개

아츠히메 소용


아오이 모란문 상자덮개

아츠히메 소용


국화비학문 상자덮개

카즈노미야 소용


아오이 국화문 상자덮개

카즈노미야 소용


아츠히메의 혼례조도류

왼쪽부터 책을 담는 서붕, 향도구를 담는 주자붕, 화장도구를 담는 흑붕의 3개다.


아츠히메가 혼례시 타고 온 가마


아츠히메의 미작상


아츠히메가 혼례시 가져온 쌍륙, 바둑, 장기판


인형

고메이천황이 카즈노미야에게 하사한 것


카즈노미야가 사용한 연상과 미작상


카즈노미야가 가져온 샤미센과 거문고, 바둑과 썅륙


아츠히메와 카즈노미야가 주고받은 편지


칠보간일기

14대 쇼군 이에모치의 생모 짓조인의 일기이다.


어명전장

에도성 오오쿠에서 보낸 서장으로 다이묘가의 고위 여성들의 이름과 순위를 적은 것이다.


도카이도 명소풍경을 그린 그림



이에모치가 양모인 아츠히메가 에도성의 화재로 거주지를 옮겼을 때

불안해하자 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보낸 편지이다.


이에모치가 도쿠가와 요시노부에게 보낸 편지이다.

오와리의 힘을 조슈를 토벌하는데 협력해달라는 의뢰편지이다.

 

조슈 추토장

이에모치가 오와리번주를 조슈정벌의 군사총감독으로 삼는 임명장이다.


조슈정벌 당시 오와리가의 깃발도와 막부군의 제후 군기도


도쿠가와 이에모치 주문서

2차 조슈정벌 당시 쇼군 이에모치가 상락하여 효고 개항을 따지는 조정에 쇼군 은퇴로 대항하는 문서이다.

이후 이에모치는 급사한다.


유리제 칠석식문구

이에모치의 유품이다


히타타네

도쿠가와 이에모치가 오와리 도쿠가와가의 요시카츠에게 배령한 옷이다.


정무취급조정어사태서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급서한 이에모치를 승계하면서 공표한 문서이다.


제찰(도쿠가와 요시노부 정토고유)

15대 쇼군 요시노부가 왕정복고를 결정했다가 다시 신정부군에 대항하자

신정부에서 그의 죄를 적어 그를 토벌할 것을 알리는 게시글이다.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토바 후시미 전투 이후 도망가면서 카즈노미야에게 탄원을 요청한 편지이다.


스루가 후추성주 칠십만석하사 사태서

요시노부가 물러나고 이후 신정부에서는 요시노부를 대신하여 타야스가의 3남인 도쿠가와 카메노스케

(이에사토)를 도쿠가와가의 당주로 결정하고 스루가번의 번주로 70만석을 하사했다. 그 문서이다.


이에모치의 생모 짓조인의 사진


청관원궁어장송기

카즈노미야의 장례 기록이다.


텐쇼인 자필 초고본 <아타미 하코네 토지 일기>

막부가 와해된 후 아츠히메가 쓴 기록이다.


흑칠마키에화발

아츠히메 소지품. 카즈노미야가 선물한 것이라고


파도문마키에탁자

도쿠가와 이에카츠의 유품, 아츠히메 사용품


아츠히메의 장례도

이렇게 전시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