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8차 九州

남국유랑기 - 5일 우스키1 (우스키 마애불臼杵磨崖仏1)

同黎 2020. 7. 26. 05:45



오늘도 새벽부터 하카타 버스터미널에 왔다.


이렇게 온 이유는 아침 일찍 우스키까지 가야 하는데

도저히 철도로는 방법이 없기 때문


오이타행 버스를 타러 왔는데


이제 문을 연다


오이타

은근 교통이 불편했다.


카라츠행 시간표

나중을 위해 찍었다.


5시 40분 첫차라니

생각보다 늦게부터 차가 다닌다. 철도는 더 느리니..


소도시 여행 홍보를 하는데 어떻게 하나...

산큐패스 매력적인데


버스 도착


오이타행 버스에 탑승


출발


한참 자고나니 바다가 보인다.


해가 뜨기 시작한다.


오이타시 카나메마치에 도착


이렇게 얼레벌레 오이타에 도착했다.


오이타역


엄청 화려한 역이다.


역 명판


동상이 하나 있는데


오 오토모 소린 동상이다.


키리시탄이자 남만문화의 선두주자답게 남만복장을 하고 있다.


여기서 만나다니


분고 부젠 치쿠젠을 호령했던 인물


한쪽에는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동상이 있다.


남만문화를 정말 자랑스러워 하는 듯

오토모 소린을 만나러 이곳 오이타에 온 적이 있다고 한다.


안내판


서양지도가 바닥에 있다.


조선과 일본


남만문화발상도시선언


이렇게 동상들을 보고 버스정류장으로 간다.


미나미오이타 방면


4번 노리바에서 출발


10번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 시간표

극악하다


정말 잘 알아보고 와야한다.


휴일 시간표


기다리는 중 버스가 도착했다.


우스키석불이라는 안내가 보인다.


출발


오이타에서도 한참을 가야 한다.


대략 1시간 20분 정도가 소요


조금 지나니 논밭이 나온다.


강 하나를 지나니


드디어 우스키마애불 이정표가 보인다.


한가하군


석불로 가는 입구


드디어 입구에 도착


정류장에 하차


국보이자 특별사적이기 때문에 바로 앞까지 세워준다.

교토 나라 같은 곳과는 달리 이런 곳은 국보 하나가 정말 귀하다.


입장권을 산다

550엔

우스키시에서 직접 관리한다.


관광안내도

매표소가 있는 곳이 좁은 계곡을 따라 생긴 분지의 입구에 해당

석불은 분지의 산비탈에 넓게 분포해있다.


아직 문을 열기 전이라 매표소 안에 들어가 있는다.


현 상황의 방문

황태자 시절


현 천황의 방문

황태손 시설



현 황사인 아키시노노미야 부부


시간이 되어 입장한다.


입구에 있는 대일여래상 사진

이게 매인


복원 전에는 머리가 분리되어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불두만 놓은 조각이나 관광상품이 꽤 있다.


길을 따라 가다보면


입구가 나온다

올라가면


평화로운 분지가 나온다.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분지

여기에 대규모 석불을 조성했다니 신기하다.


표를 내는 곳


국보, 특별사적 표석


우스키 마애불(臼杵磨崖仏, 구저마애불)은 헤이안시대 후기에서 가마쿠라시대에 새겨진 60여 구의

불상이다. 일본의 석불로는 처음 또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4개의 석굴에 나누어져 있다.

이 중 61구의 불상이 국보 및 국보 부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인근의 석탑들과 석불 일부 및

사찰 만가츠지와 신사 히요시사가 함께 특별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화산재가 굳은 응회암에

새겨져 부드러운 느낌을 주며 비교적 섬세하지 않은 일본 석불로는 보기 드문 작품이다.

그런데 이러한 대량의 질 높은 불상들이 누구에 의해 왜 새겨졌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아소산에

대한 신앙과 쿠니사키반도에 있는 육향만산에 대한 산악신앙 등을 살펴보면 한창 산악신앙 및

말법에 대한 신앙이 일어날 때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에 내려오는 마나노장자 전설에

따르면 아스카시대에 숯을 굽던 자가 부처님의 복을 받아 부자가 되오 한냐히메라는 딸을

얻었는데 그녀가 미모가 수도까지 알려져 황태자였던 요메이천황이 찾아와 아이를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요메이천황이 돌아가고 한냐히메는 아이를 낳아 천황을 찾아 갔다가 표류하고

이후 구해졌으나 병에 걸려 죽었다고 한다. 이에 장자는 슬퍼하며 딸을 위해 이 절을

지었다고 한다. 시대는 맞지 않지만 여러가지 이야기가 섞인 것으로 보인다.

우스키 마애불은 무로마치시대의 언젠가 완전히 잊혀져 사라졌다. 과거에는 불상이 새겨진

절벽 아래로 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발견 시에는 이미 물로 인해 하반신이 대부분 풍화되고

일부 불상의 불두는 분리되어 있었다. 1993년까지 이어진 오랜 복원 보존공사로

물길은 완전히 사라지고 보호각을 짓고서 불두를 다시 붙였다.


안내판


입구의 향로


소원을 빈다


이곳에서 만든다는 청정향


수장고

지금은 보관하는 것이 없다.

보수공사 때 사용된 모양


길을 따라 들어가면


보호각에 들어있는 마애불이 보인다.


이것이 4개의 석굴 중 처음


보존공사 이전의 상황


순로


석불 앞에는 크고 작은 오륜탑들이 서 있다.


귀엽다


드디어 보는 우스키마애불

이것은 그 중 호키석불 제2군(ホキ石仏第二群)

호키석불 제2군은 2개의 불감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제2감


석불 입구의 부동명왕


국보 부속지정


제2감


구체아미타불이다


중앙의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총 9개의 아미타불이 있고

관음보살과 존명을 알 수 없는 보살(천부)상이 서 있다.


채색이 남아있는 아미타불


나란히 선 아미타불


귀엽다


중존


특이하다


관음보살



반대편


많이 부서졌다


흔적만 남은 부분

비사문천으로 추정


이제 중앙의 제1감으로 간다.


깔끔한 아미타삼존


중존의 얼굴이 잘 살아 남아있다.


우아하면서도 위압적인 조각


역시 흔적만 남은 부분


본존


불두가 떨어졌던 흔적이 보인다.


관음보살


세지보살


우아한 조각


지방의 솜씨가 아니다.


꽤나 입체적이다



흔적만 남은 부분


사진으로 찍으니 더 안보이네


정면 중존 앞에서 바라본 모습


작은 오륜탑


이런 게 많다


옆으로 내려가면


우물이 하나 있다.

오래된 우물인데 한 잔 마셨다.


보호각


주춧돌?


과거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고


여기도 있군


아직 3개나 석굴이 남았다. 계속 보러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