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거리

노동자 문화와 노동자 정치

同黎 2013. 3. 12. 00:45

[현장에서 미래를]73(200201)

특집) 노동자 문화와 노동자 정치

신 병 현(교육위원장/홍익대 교수)

 

이 글은 문화에 대한 기존의 생각들을 비판적으로 보는 관점에서, 자본주의 하의 노동자들의 문화는 과연 어떻게 정의할 수 있고, 노동자운동에 영향을 미쳐온 각종 이데올로기 형태에 대해 살펴보면서, 노동자운동의 문화적 측면에서 어떠한 방향으로 정치적 기획이 이루어져야 할지를 함께 생각해 보기 위한 글이다.

 

1. 노동자문화란 무엇인가?

 

전통적으로 문화를 "지적, 정신적, 미적 개발과정 일반"으로 정의되어 왔다. 여기서의 문화는 읽기 능력, 학업 혹은 세련된 억양이나 취향 등에서 드러나는 '획득된 정도', '교양 수준'으로 보거나, 그 중에서도 지적 작업, 특히 예술적 활동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사회가 더욱 계층화되고 이민족이나 다른 문화권 및 문명과 접하면서 "일정 시기별로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 혹은 집단이 '공통 정신'을 매개로 하여 획득된 특정한 삶의 양식"으로서 문화를 보는 견해가 대두했고, 이런 문화 개념을 통해 서로 다른 집단, 사회, 하위그룹 등의 삶의 차이를 드러내는 독특한 속성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사람들의 삶 자체의 특정한 방식을 문화로 여기게 되었다. 나아가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제도들에서 드러나는 특정한 차원으로서 "특정한 사회질서가 소통되고, 재생산되며, 경험되는 표현의 체계"로서, 의미, 가치, 주체성을 구성하는 일련의 물질적 실천으로서 문화를 보게 됨에 따라 문화를 다른 사회적 관계에서 드러나는 중요한 차원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인간 삶의 물질적인 측면과 정신적인 측면간의 상호연관성을 보다 분석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노래, 소설, 놀이, 그림이나 영상물, 건축과 같은 문학, 예술 등 미적 형식들도 어느 시대이건 그 시대의 물질적 사회적 삶의 조건들과 밀접하게 상호 연관되어 있다. 흔히들 미적 감정과 미적 표현을 역사 발전이나 시대적 조건으로부터 분리된 것으로 형식화시켜서 미학적 이론으로 구축하려는 이데올로기적 경향에 자연스럽게 동화된다.

 

그러나 문화는 우리들의 삶의 물질적, 사회, 정치적 조건들과 분리되어 이해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문화를 우리들의 삶의 조건과 긴밀히 관련된 표현형식으로 보는 관점을 가져야한다. 거기에는 그 시대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이해관계가 스며들어 있으며, 대중들의 유토피아적 열망 역시 스며들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다양한 미적 표현형식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대중문화 하면 무조건 자본주의적인 퇴폐이고, 노동자문화 하면 무조건 진보적이라는 단선적인 견해는 불식되어야한다. 그리고 문학이나 예술만이 문화가 아니라, 우리들의 삶의 방식 자체가 문화이고 그 속에서 문학이나 예술이 다른 물질적, 정신적 삶의 측면들 즉,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영역들과 특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만 한다. 그러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미적 실천은 결코 '리얼리스틱'하지 않고, '거울 없는 반영'처럼 독특한 실천 효과들을 생산하는 이데올로기적 형태들이다.1)

 

우선 용어의 올바른 사용법에 대해 살펴보자. '노동자문화'는 흔히 들을 수 있는 "노동문화"와는 다르며, 전통적 대중문화(popular culture)나 대량소비문화(mass culture)와도 다르다.2)

 

1) 용어 사용법에 대해서

 

(1) 노동문화는 근대적 산업하의 노동이 이루어지는 양식을 다른 시대와 뚜렷이 구별되는 단순한 '차이' 혹은 독특한 문화적 현상으로 묘사하는 모호하고 포괄적인 용어이다.

 

기술조직은 생산기술과 작업조직으로 특징지어지는 노동과정의 공학적 구성 측면에서 드러나는 차이를 구분하게 한다. 그것은 생산과정의 물리적, 관리적 배치 방식에 대한 역사-사회적 변동을 반영하고 있다. 기업 내 사회조직은 기업이라는 사회-역사적 제도 내에서, 이윤 창출을 위한, 생산양식 특유의 이데올로기적 사회관계 측면이다. 이를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들은 가부장적(혹은 위계적, 공동체주의적) 문화와 관행들, 그리고 인사관리제도(고용관행, 평가, 배치)이다. 기술적 조직화와 사회적 관계의 조직화 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러한 요소들은 기업문화나 직업문화, 작업장 문화, 노조문화 등 문화적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 이들 사이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에 종속되어 위치한다. 따라서, 노동문화는 사회, 역사적, 기술적 차이를 포괄하는 범주이다. 이것에는 또한 산업문화와 기업주의 문화(enterprise culture)3)에 부분적으로 종속된 채 경쟁하는 기업문화와 직업문화, 그리고 이에 종속된 작업장 문화, 노동조합 문화도 일부 포함된다.

 

(2) 노동자문화는 산업화와 더불어 전통적 요소들 특히 농촌공동체의 관습과 관행들이 변형되거나 잔존한 형태로 자본주의의 역사적 과정과 더불어 형성된 갈등적이고 대항적인 실천 형식들을 주요한 부분으로 갖고 있다.

 

산업혁명기 영국의 경우를 보면, 자본주의적 고용관계의 확대, 착취와 경기변동으로부터의 고통이라는 생활상에서의 유사한 경험이 존재하고, 급속한 도시화에 따라 대규모 공장지대라는 공동의 지역적 생활공간의 형성(연립주택, 지하실, 공동합숙소 등), 유사한 음식 및 의복 착용, 전통문화에 뿌리 둔 놀이형식(레슬링, 족구, 고리던지기, 개싸움, 닭싸움, 오소리 놀리기 등 다양한 축제, 철야제, 성월요일 휴일 등 힘든 작업장 삶으로부터의 일시적 이완 추구), 공동체 규제를 위한 집단적 의례(거친 음악, 아내 팔기), 그리고 시장경제 형태하의 적응형식으로서 변용된 놀이와 술 소비, 오페라나 오케스트라 등 대중음악 향유 등 소비유형에서의 유사성으로부터 초래되는 노동자들의 집단적 성향과 감성, 집단적 자의식이 결정화된 특유한 가치체계와 장인적 전통(체통과 자조정신) 등이 당시의 노동자문화를 구성하는 요소들이었다.

 

노동자 문화는 그 형성 과정에서 전통문화 혹은 대중문화(popular culture)가 변형된 것들이 주요한 부분이지만, 경제 상태의 변화에 따른 노동자 생활조건의 변화는 지속적인 노동자 문화의 수정을 초래하며, 노동자 조직을 중심으로 발견되고 전수되는 유토피아적 이상과 전통의 모순적 결합을 특징으로 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일상적 삶의 주요한 측면인 작업장이나 노동조합의 문화적 표현들도 한편으론 기업문화에 부분적으로 종속되기도 하지만, 노동운동이나 대중문화와의 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갈등하고 변형되어 간다고 볼 수 있다.

노동자 문화는 영국에서처럼 천년왕국 사상과 종교부흥 운동이나 자코뱅주의의 급진적 정치 전통, 청교도주의와 공동체주의 등의 긴장과 갈등, 보존이란 특성을 갖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 급속한 산업화와 이농과정과 더불어 일본의 군국주의적 유신과 유교적 권위주의 전통, 학교, 군대, 지역 및 직장 새마을운동의 역사적 경험들과 레드 콤플렉스 등의 역사적 기억과 가족사 등은 전통적, 가부장적 사회관계를 한편으로 유지하게 했다. 동시에, 기업 문화적 유인과 국가주의 통합 이데올로기, 노동조합운동과 급진주의 정치운동의 이념적 영향은 노동자들의 생존조건의 변화와 더불어 노동자 문화를 급속하게 변형시키고 있다. 노동자 문화는 전통과 이상의 모순과 갈등 속에서 변화하는 집합적인 사회 기획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띤다. 따라서 노동자 문화는 무차별한 폭넓은 범주로서 대중들의 생활방식을 상당부분 포함하고 있을 지라도, 대중문화라는 지형 자체가 계급적 각축장이란 점에서 보면, 노동자 문화는 대중문화를 전체로서 포괄하지도 않으며, 거기에 포함되지 않고 인접하거나 부분적으로 교차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3) 대량소비문화는 역사적으로 서구에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시기에 걸쳐 다수의 대중이 향유하는 대중문화에 대한 중산계급 그리고 신흥 중간층의 사회적 일반 노동자 대중들로부터의 신분 차별화 열망과 관련이 있다. 또한 제한적이었던 상류층 문화향수의 대중화에 초점을 맞춘 광고와 대량 소비 제품의 시장창출 동기가 그러한 중간층의 사회적 차별화 열망과 접합된 역사적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중간층의 모순적 성격과 연결된 문화적 관계는 노동자 문화의 한 부분을 차지하기보다는 상류층의 문화형식에 대한 모방 관계이다. 그런데 그것은 노동자들이 갖고 있는 사회경제적 지위향상의 열망과 소비 혹은 물질적 욕망의 목표 혹은 준거로 위치한다. 하지만, 이들이 모방하고 향유하고자했던 것은 사실상 단지 스타일을 통한 차별화 형식일 뿐이다. , 단지 다름을 추구하는 것일 뿐이다. 결국, 우리사회에서 흔히 듣는 대중문화는 대량생산된 표준화된 문화상품과 그것의 소비를 통한 차별화 경향을 뜻한다.

 

2) 노동자문화를 정의하기

 

현 시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른 사회계급들과 뚜렷이 구분되는 '노동자 문화'를 말하는 것은 무슨 관심에서 그런가? 노동자계급이 역사적으로 형성하고 변형시켜 온, 독특한 삶의 방식, 노동자계급만의 독특한 의미체계, 일상적 삶을 지배하는 정서 및 가치 지향성, 규범과 윤리체계, 행동방식 및 문화적 형식들로 표현되는 차이들에 주목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이 질문은 몇 가지 이론적, 역사적 사고들을 포함하고 있다. 첫째로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노동자계급은 다른 계급들과의 관계 속에서 상이한 물질적 조건과 사회적 환경 및 소통관계 하에서, 뚜렷이 구분되는 일상적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둘째, 그러한 삶의 조건들에 기초한 독특한 문화적 표현형식들을 역사적으로 발전시켜 왔으며, 셋째, 여타 사회계급들과의 관계 하에서 노동자계급의 삶의 조건은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변형되어 왔고 변해가고 있다는 것이고, 넷째, 그러한 (지배 및 종속 혹은 저항 및 이탈) 관계의 자본주의 역사를 염두에 둔다면, 노동자계급의 '문화'를 독자적으로 범주화하는 것, 즉 노동자 계급을 문화담론으로 종속시켜 논의하는 것 자체는 노동자계급 주체형성이라는 특정한 정치적 기획 혹은 경향성과 관련된다.

 

첫 번째의 전제를 논외로 한다면, 두 번째 및 세 번째와 관련해서 볼 때, 역사적으로 노동자들의 일상적 삶을 지배해온 이질적이고 생태적 조건에 밀착된 생활방식과 행동유형들은 절대군주 치하로 종속되어간 기사계급이나 귀족층들 간의 '궁정사회'의 예절과 규범, 그리고 권력에서 소외되어있던 부르주아 및 자유주의적 중간계층들의 사회적 기획으로서 발전하였던 '시민적인' 교양과 예절(civilite)의 정착과 확대과정 즉, '문명화 과정'(civilizing process)의 외부의 존재에서 그 내부로 서서히 편입, 동화되거나, 모방되는 과정 속에서 변형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4) 사실 중간층은 언제나 자신들의 정치적 무기력성을 사상 이념 및 문학 및 예술적 차이를 강조하고 드러내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사회적 기획을 추구해왔다. 노동자계급은 하나의 사회세력으로서 이러한 부르주아 및 프티 부르주아들과 그들의 생활방식 및 사회적 기획들과의 저항과 투쟁 및 동화의 관계 속에서, '빈곤의 문화', '도덕경제' 등으로 특징 지워질 수 있는 '민중적' 삶의 문화적 형식들을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그러한 '문명화 과정'은 때로는 급격한 혁명의 과정에서 역전되어 야만화되거나 새로운 문화적 형식들로 대체되기도 했음을 역사에서 볼 수 있다.

 

네 번째와 관련해서 보면, 영국의 노동계급이 양차 대전을 거치면서 국민으로서 호명되고 국가에 동일화, 종속되는 과정에서도 잘 볼 수 있듯이, 노동자계급은 혁명적 반역이나 전쟁에의 동원, 선거권의 획득투쟁, 또는 노동운동, 종교적 개종, 계급적 타협, 불황기의 빈곤의 경험 등 특정한 역사적 계기들을 통해 노동자들은 국가 성원의 외부에서 혹은 시민적 권리 주체, 혹은 민족의 외부에서 내부로, 혹은 가부장제적 질서 내부로 호명되고 종속되는 과정 속에서, 사회제도 및 관행들의 타협적 수용을 통해 그들의 무의식적 욕망과 환상을 충족시키고자 했다.

 

경제관계의 자본주의적 독점화와 근대국가의 형성과정 속에서의, 혁명적 투쟁과 실패의 역사적 과정은 노동자계급이 차별적으로 종속되거나 배제되는 가운데, 국가 및 시민적 주체로 동일화되거나 종속되어 온 과정의 역사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동원되는 것이 바로 '문화' 담론이다. 그래서 문화란 용어는 사회, 정치적 기획으로서 이중적 가치를 갖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사회적 통합의 사회적, 집단적 기획으로서 그 긍정성을 가지면서, 동시에 그것은 민족, 국가 등 몰계급적 통합과 종속을 꾀하는 기제들과 관련된다.5) 이처럼 '문화'는 사회, 정치적 기획의 현실화와 관련된 이데올로기적 과정으로서의 기본적인 성격을 갖는다. 우리가 '노동자 문화'를 말하는 것도 역시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과정, 즉 노동자문화운동 혹은 노동자 일상적 삶에 대한 정치적 관심, 계급적 주체형성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한다.

 

역사에 바탕을 두고, 노동자 문화 실천을 고려해 볼 때, '노동자 문화'는 이중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 '노동자 문화'는 첫째, 이데올로기적 투쟁과정 즉, 지배 이데올로기와의 지속적인 투쟁 과정 속에 있고 그것에 종속되어 있고, 둘째, 노동자 문화는 동시에 다양한 이질적인 삶의 형식들에 대한 노동자 권력이 지배적인 상징체계로의 통합의 과정 속에서, 그리고 노동자의 변혁적 운동 실천 속에서 새롭게 창조되고 발견되는 새로운 사회를 위한 전망 혹은 실천적인 이데올로기들 및 실천들, 생활양식들을 담아내는 가운데 형성되고 정련과정을 겪는 방식으로 풍부화되는 모순적 성격을 띤다.

 

이러한 모순은 노동자 문화정치가 이중적인 전선과 대면하도록 한다.

 

그 하나는 노동자 운동 실천 및 노동자 일상적 실천에서의 지배 이데올로기와의 지속적인 투쟁의 전선이고, 다른 하나는 노동자 정치 혹은 노동자 문화정치가 노동자들의 다양한 이질적인 삶의 양식들과 그 원리들, 특정한 노동자 범주들과의 대면 속에서 보편성을 의식적으로 추구하면서, 스스로를 풍부화해 가는 가운데 대면하는 것으로서, 노동자 정치, 노동자 운동 및 대중적 실천 이데올로기 속에서 드러나는 상징적, 실제적 폭력에 대한 명료한 인식과 이를 넘어서려는 각성 하에 이루어지는, '새로운 조직적, 정치적 관계 양식'의 발견을 위한 실천적인 투쟁 전선이다. 예컨대, 그것은 성적, 인종적, 지역적, 세대적 차이들과 정신-육체노동의 차이들과 모순의 가능성과 현실화를 명료하게 인식하고 예상하며 극복하려는 적극적이고 무한히 개방적인 투쟁과 실천의 변증법적 운동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노동자 문화'는 노동자들의 다양하고 이질적이고 특이한 대중적, 계급적 경험과 가치나 풍속 등 삶의 방식과 그들이 생산하고 표현한 산물들을 하나의 '보편화된, 보편화시키는 전통'으로서 그리고 그것의 미래로의 투영 혹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할 '이상'으로서, 노동운동과 노동자들이 처한 구조화된 삶과 관련된 지배적인 제도들(노조나 당, 지역공동체 등)을 매개로 하여 통합해 가는 정치 이데올로기적 과정인 동시에 그 자체의 모순과 한계를 넘어서려는 무한히 개방적인 새로운 실천들이며, 지속적인 생성의 과정일 것이다. 그것의 전제는 노동자 주체와 '노동자 문화형성체'로의 동일화를 가능케 하는 조건의 형성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조건을 형성하고자 대중 혹은 노동자들과 관계 맺고 운동에 투심하는 이들 역시 동일한 과정을 거처 형성된다.

 

결국, '노동자 문화운동'은 대중과의 관계 속에서 노동자 주체의 형성 가능성과 문화적 동일화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탐색하고 강화하는 실천 운동이며, 동시에 노동자 문화의 풍부화에 기여하는 새로운 관계성 창출의 개방적 실천 운동의 한 영역일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 문화운동'은 노동자 정치운동을 구성하는 한 영역인 동시에 그것의 가능성의 조건을 준비하고 강화하는 활동을 포함하는 대중 및 노동운동 조직과 그들의 정치 조직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들 속에서 작동하고 있는 실천 이데올로기들 및 지배 이데올로기적 요소들과의 각성된 이데올로기 투쟁의 효과이며, 한 형태일 것이다.

 

2. 신자유주의 시기의 노동자 문화운동과 노동자 정치

 

신자유주의 시기는 자본의 이데올로기적 위기의 시기인 동시에 지속적인 자본의 공세 하에서 취약해진 노동계급 및 그 조직들(노조 및 정당 등)의 이데올로기적 위기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앞서 정의했듯이, 노동자 문화는 노동자들의 다양하고 이질적이고 특이한 대중적, 계급적 경험과 가치나 풍속 등 삶의 방식과 그들이 생산하고 표현한 산물들이기 때문에 그 고유한 모순들을 담고 있고, 전통적 잔재들과 동시에 추구해야할 '이상'을 담고 있기 때문에 또한 모순적인 과정으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다. 또한 노동자들이 처한 구조화된 삶과 관련된 지배적인 제도들(노조나 당, 지역공동체 등)과 관련되는 동시에 그를 둘러싼 다양한 노동자 정치 기획들의 이데올로기 투쟁과정이기도 하기에 그 자체의 모순과 한계를 갖고 있다. 노동자 정치운동 및 문화운동의 투쟁의 영역은 다른 것이 아닌 바로 이러한 모순의 지점들일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정치 이데올로기적 공세 하에서 노동자계급은 지난 시기 투쟁의 성과들을 상당히 빠르게 잠식당해 왔다. 물론 개별 사회구성체의 특수성이 작용하지만, 노동운동 및 노동조합운동의 정치적 조건 역시 상당히 위축되어 온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정치, 경제적 조건 하에서 노동자계급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공세가 더욱 거세었고, 사실상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계급 운동의 이데올로기적 위기가 악화된 상태임은 주지하는 바이다. 이런 가운데 노동자계급 및 운동조직들 역시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적 통치 하에서 제대로 대항하지 못하고 다양한 형태로 종속되어가는 위기의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자본의 위기의 국면에 적절한 이데올로기 투쟁과 대중적 노선을 견지하지 못하거나, 노동자들의 투쟁의 열망을 담아내지 못하는 이데올로기 및 조직적 위기 역시 드러나고 있음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이하에서는 이런 맥락에서 노동자 문화를 창출의 중요한 매개인 다양한 노동자 운동 및 그 조직들을 잠식해 가는 전형적이고 역사적인 이데올로기 형태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1) 노동운동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이데올로기들

 

역사적으로, 노동계급의 이데올로기적 위기가 심각했던 대표적인 시기로 파시즘의 대두시기를 든다. 이 시기는 부르주아의 이데올로기 시기인 동시에 노동계급 및 혁명적 조직들의 이데올로기적 위기시기였다. 파시즘 대두 시작 시, 독일 및 이태리 공산당과 노동계급간의 뚜렷한 분열(split)이 있었고, 당시의 당들은 대중들로부터 스스로 분리되었다. 이에 따라 노동계급 조직들은 어떤 대중노선도 견지하지 못한 채, 투쟁을 일방적으로 대중에게 부과하려고 했으나, 노동자 대중들은 이러한 당 리더쉽을 결코 따르지 않았다. 당은 파시즘에 결코 항복하지는 않았으나 너무 늦게, 효과적이지 못하게 비판과 반대에 머물렀다. 분열이 일어난 뒤, 돌아올 수 없는 지점을 지나고 나서야 파시즘과의 투쟁을 시도했다. 그러나 노동계급 대중은 당의 뒤늦은 파시즘 저지 투쟁을 따르지 않았다. 당은 파시즘 대두 전반에 걸쳐서 '선거를 통한 승리'로의 시도를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6) 그러나 노동계급의 패배가 독일 및 이태리 공산당 내에서 일정한 효과를 미치자, 이 당들은 파시즘 대두 전반에 걸쳐서 심각한 내적 분열을 겪었으며, 나아가 파시즘 위협에 대한 사실상의 마비상태에 이르렀고, 노동계급과의 분리는 더 커졌다. 혁명적 조직들내의 이런 위기 상황은 또한 노동계급내의 이데올로기의 위기 및 동요와 일치한다. 이것은 광범한 대중을 장악하지도 못하게 했고, 자신의 뿌리에까지 반향을 미쳤다고 한다. 대중노선에서의 리더쉽 발휘의 실패는 부르주아 및 쁘띠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빈 공간을 침식하도록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런 이데올로기의 위기시기에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노동계급에 대한 영향은 고전적인 노동조합주의(trade unionism)와 개량주의(reformism) 형태인데, 그것은 일반적으로 당 및 노조를 매개로 한 것으로서, 노동계급에서의 사회민주주의의 존속과 그 영향으로 확인될 수 있다.

 

노동조합주의 및 개량주의로 표현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노동계급에 대한 지배 이데올로기로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직접적인 영향이라기보다는 프티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형태였다. 사실상 파시즘 대두 동안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위기 하에 있었다. 자본 분파 간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투쟁과 위기, 그리고 노동계급이 위기에 처해있음으로서, 전보다 더 쉽게 노동자 계급에 침투하는 형태로서, 역시 위기 하에 있었던 프티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고유한 '반자본주의적' 측면이 강화되는 시기였다. 풀란차스에 의하면, 노동계급의 '생생한 체험(lived experience)'에 실제적으로 영향을 미친 특수한 형태들로서 대표적인 것으로,7)

 

(a) 무정부주의(Anarchism): 노동계급에 특수한 형태로서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 공장생활의 생생한 체험과 국가 혹은 정치적 억압 기제들의 역할을 핑계로, 정치적 목표 및 조직에 대한 무지와 더불어 그것들을 경멸하는 형태이다.

 

(b) 자생주의(Spontaneism): 조직에 대한 경멸, 추상적이고 직접적인 자발적 행동의 숭배(cult)인데, 그것은 프티 부르주아적 개인주의의 표현임이라고 할 수 있다.

 

(c) 폭동 및 반란형태('Putschist jacquerie'): 맑스주의 이데올로기와 대중적인 정치투쟁을 거부하는 형태. 쁘띠 부르주아적(혹은 쁘띠 부르주아적 농민) 반란의 특징인 적극적인 소수(active minorities)의 폭력에 대한 추상적 숭배 형태이다.8)

 

이 형태들 특히 아나코 생디칼리즘(무정부주의)는 한 때 레닌이 그랬듯이, '자발적인' 프롤레타리아적 표현의 긍정적 형태라고 할 수도 있다. 그 긍정성은 그들이 부르주아 조직들에 맞서 노동자운동의 '자율성(autonomy)'을 요구했다는 사실에서 그렇다. 또한 그것들은 파시즘 대두시기에는 정치적 혁명조직들의 정치노선에 대한 노동자 계급에 의한 '본능적인' 계급적 반동의 한 요소였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적 위기의 시기에 이 '계급본능'은 혁명적 전통과는 단절하고 프티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특수한 형태(예컨대, 사회민주주의적 계급타협이나 다양한 의회주의적 정책 참여, 산업별 노동조합 형태의 정책 및 경영 참여 등 조합주의적 경향들)의 영향 하에 빠지게 된다. 파시즘 대두 시기에는 여기에다 파시즘의 민중주의적 선동과 그것의 쁘띠 부르주아적 언어 및 행동 형태가 또한 노동자 계급의 중립화와 수동성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쁘띠 부르주아에 대중적, 조직적 기반을 갖고 억압적,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들을 전면적으로 재조직해 가는 예외적인 국가형태로서, 파시즘과는 달리, 노동자 계급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중요한 정치, 이데올로기의 물질화된 형태로서 사회 민주주의적 정당과 제도를 들 수 있다.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에서 뿌리깊은 경제주의(economism)의 오류가 있을 수 있다.9) 그것은 사회민주주의가 제국주의적 잉여에 기생하는 소수 노동귀족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보아 그 계급적 기반을 축소시켜서 취급함으로서 정치 및 이데올로기 지형의 위기를 소홀히 다루는 경향이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는 노동자 계급 전반에 대중적 기반을 갖고 있고, 노동자 문화 전반에 걸쳐, 즉 실천 이데올로기에 기초한 뿌리깊은 물질적 기반을 갖고 있다. 특히 노동조합이나 당을 매개로 하여 부르주아적 정책형태의 계급적 타협을 수행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이와 관련된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적 의회정당 및 노동조합주의는 하나의 역사적 제도로서 국가 장치들의 일부를 구성한다.

 

그래서 사회민주주의적 유형의 정당은 계급타협적 입장에서 부르주아 정책을 수행하는 노동자 정당의 유형을 취한다. 대체로 사회민주주의적 입장의 '정치주의'는 그 현실성과 언어의 급진성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계급의 중립화와 수동성을 조장하며, 나아가 민족, 국가 혹은 시민적 주체로서 대중을 호명하는 주요한 정치적 경향이며, 역사적인 이데올로기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비록 사회민주주의적 유형의 정당은 전형적으로 관료화되고, 조직 내부의 계층적 차이와 갈등으로 지속적인 해체의 위기를 겪을 지라도, 계급적 타협의 기능을 일관되게 다양한 형태로 수행한다(예컨대, 파업브로커나 정치가들의 개입과 의존 형태).

 

하나의 특정한 역사적 체제로서 사회민주주의적 유형의 정당은 신자유주의 대두와 더불어 지속적으로 위기에 처해져 왔다. 사회적 조합주의 전통으로의 노동자계급의 포섭체제의 점차적인 붕괴와 동시에 시장논리의 확장을 통한 대자본의 독점 강화의 성격을 띠는 신자유주의 체제는 그 자체로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적 위기의 증후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유럽 주요 선진 산업국가들에서 볼 수 있듯이, 불구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쁘띠 부르주아적 반감(반자본주의적 반감)은 앞서 살펴본 이데올로기적 형태들을 필두로 하여 노동자계급 및 노조운동에 더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국의 경우도 역시 동일한 경향이 노조운동 및 노동운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주지하는 바이다. 게다가 한국의 경우는 분단의 특수한 상황을 이용한 고전적인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형태인 민족주의가 노동자 운동에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역설적인 현상이 전개되고 있다.

 

유럽 자본주의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역사적 형태로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는 부르주아의 승리와 근대국가 형성, 혁명적 노동자 운동의 세계적 패배, 노동자 계급의 타협과 종속과 맥을 같이 한다. 최근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들이 특정한 나라들에서 시행될 때도 역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적 국가 통합이 예외 없이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80년대 미국의 레이거노믹스 하에서 이루어진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맥락에서 대표적인 경영 및 국가 정책 담론으로 등장했던 것이 민족주의 혹은 유사민족주의로서 애국주의 이데올로기였으며(예컨대 Jap a Jap: 일본격파, 국산품 애용, 비즈니스 리엔지니어링의 핵심), 대처리즘 하 영국에서 언급된 영국병으로서의 계급적 노동조합 운동과 대비되어 제시되었던 것이 대영제국의 국가적-민족적 우월감이었다.

 

프랑스 '프로이트 맑스주의자'이며 언어학자인 미셀 페쇠는 자본주의적 발전의 길을 '프러시아적 길''아메리카적 길'로 나누어서 유형화한 바 있다.10) 주요한 세계적 반자본주의 혁명이 중심이 아닌 주변에서 이루어진 점에 주목하면서 페쇠는 자본주의적 발전 구조의 두 가지 길로의 분리는 각각 대중들의 이데올로기적 예속의 형태들에서의(, 신체, 언어, 사고에 대한 실천의 관계들에서의) 차이에 조응한다고 본다. 여기서 아메리카적 길과 관련한 이데올로기적 예속의 형태들은 법적, 정치적 형태들을 통한 개인적 자유와 자율성의 보장, 자치 및 자기 통제적 토론 교육, 다양한 종교들, 도덕의 내면화를 통한 충동의 억제, 개인의 자생적 일상적 경험으로서의 계몽에 대한 이해 등이며, 프러시아적 길과 관련된 이데올로기적 예속형태들은 행정 및 관료제에 대한 항상적인 의존, 억압으로 기능하는 질서, 위계, 경계에 대한 존중, 복종과 훈련의 습관, 의식적 행동(주입, 검렬, 고백)으로서의 종교, 비밀스런 계획 및 음모, 상식적 표현으로서 수사의 주입 등이다. 2차 세계대전은 이 두 개의 자본주의적 길들 사이의 필사적인 싸움으로 간주될 수 있고, 나치즘은 프러시아적 길 내에서의 전략적 발전의 가장 근대적인 형태로 간주된다. 그러나 아메리카적 길의 승리는 자본주의적 착취의 경향적 비가시성과 프러시아적 형태들과 착취 실천의 동일화(적어도 주변에서)라는 결과와 현존사회주의와 프러시아적 길의 형태들의 유비의 개연성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본다.11) 실제로 프러시아적 공간의 혁명들로서의 자본주의적 주변 내에서의 국지적 반전들의 외피형성은 요새유형의 국가들로 귀결되었고, 그것들은 외부적 위협들과 내부적 모순들에 대하여 동일한 군사적 논리(위기가 구실)로써 스스로를 보호하였다. 이런 점에서 스탈린주의적 이데올로기는 하나의 편향이 아니라, 구성적이며 지속적인 주변부 대중의 지배적인 예속 형태라는 것이다. 그러나 남북한을 막론하고 대만과 동구체제 등의 이런 요새형 지배체제의 특성은 자본주의 위기 심화로 인하여 더 이상 주변에서 지속되지 못하고, 해체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아메리카적 길 역시 세계 자본주의적 질서 개편과정에서 심하게 동요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이 논의로부터 생각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점은 우리가 처해있는 자본주의적 예속의 기본적인 형태가 점점 더 주변부 체제의 요새처럼 파괴될 수 없는 쪽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의 논리는 고정된 경계를 갖고 있는 안정적인 대상의 논리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진보적 혁명적 운동들이 과거에 대한 향수와 두려움 때문에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표상들로 장식된 요새유형의 형태로 도피하는 한, 아메리카적 길은 변함 없을 것이다. 이러한 성찰은 물론 기존의 경직된 당 실천 특히 스탈린주의적 주변부 국가형태를 이상적 모델로 하는 요새형 계급 정치 실천들을 비판하는 것이다.

 

현 시기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공세에 처한 노동자 운동이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위기를 드러내고 있는 것은 대중들에 대한 기존의 요새형 예속형태 뿐 아니라, 아메리카적 예속형태의 기본 속성을 주목하지 못하고 실천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하나의 결과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문화에 대한 정치적 기획이 더욱 중요시되는 것도 바로 이런 자본주의적 예속형태의 이중적 성격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예속형태들은 노동자들의 일상적 삶 및 조직적 실천들 속에 다양한 실천 이데올로기적 반향을 갖는 방식으로 물질화된다. 앞서 살펴본 전형적인 부르주아 및 프티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형태들 이외에, 가족주의 및 유사가족주의, 노동물신주의, 가부장제, 그리고 기업조직 내 관행과 제도들 등에 물질화된 실천 이데올로기적 반향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것들이 노동자 문화운동과 정치적 실천이 일상적으로 노동자들의 삶과 의식적 각성에 동시에 주목해야 할 이유이다.

 

2) 노동자 문화운동과 노동자 정치

 

진보적 노동운동의 건강한 실천은 언제나 '소수자'와 함께 해온 운동이었다. 진보적인 사회운동은 권력에서 열세인 '소수자'들의 억압과 착취구조를 넘어서려는 대중적 요구들을 형성시키고, 과학적 이론과 대중적 실천운동을 통해 그 요구들을 '시민적 도덕'으로 보편화, 확장시켜왔다. 새로운 운동의 근거는 다른 곳 어디에도 없다. 바로 역동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노동자 대중, 민중들의 일상적 삶 속에 있을 뿐이다. 선진적인 노동자들과 문화운동의 지식인들이 힘을 기울여야 할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 언어로 번역하고 새로운 실천 가능성을 창출하는가에 있을 것이다.

 

노동의 정치는 자본주의적 사회관계의 재생산을 둘러싼 노동자 투쟁의 독자적인 정치적 기획과 실천들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공세 하에서 노동력의 일상적 재생산 과정에 대한 정치, 이데올로기적, 문화운동적 개입이 요구되는 시기이다. 가족주의 및 유사가족주의, 노동물신주의, 가부장제 및 조직의 극복을 지향하는 노동의 문화정치운동적 개입들로서, 노동자들의 신체 및 건강, 독자적인 시간기획과 노동시간 단축운동, 독자적인 시공간 확보 노력, 가족, 여성, 육아, 교육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과 제도 확보 노력, 이것들을 지역사회, 환경, 국가의 문제로 확대시키는 전략의 문제, 연대와 결연의 문화 창출 노력, 독자적인 생활기획 등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이고 인간적인 생활권의 주장에 이르는 엄청나게 다양한 문화, 예술 운동 상의 개입의 지점들이 널려있다.

 

새로운 생활기획은 되기(생성)의 프로젝트이다. 그것은 무한한 되기 과정으로 형식화될 수 있는 집합적, 사회적 실천들이다. 그것은 무한히 열린 개방 공간을 형성하는 것이며 그것을 유지하는 일상적인 실천을 통해 가능하다. 그 공간은 독자적인 사회적 시간의 기획들을 둘러싼 적대적, 집합적, 사회적 실천을 통해서, 그리고 노동자 혹은 민중의 독자적인 언어를 통해 번역되어, 인식되고 경험된다. 대항적 주체형태의 형성을 위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투쟁은 일상적인 문화적, 언어적 실천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정치적 실천에서 타자(他者)에 대한 기본적인 성찰과 윤리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이리가레이가 헤겔 변증법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강조하였듯이, 동일성의 변증법에서 동일자와 관계 속에 있(고 또한 있을 수밖에 없)는 타자가 분석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면, 거기에서 정신은 비정신화된 실체(non-spiritualized substance)와 주관성을 포함하는 것이 되고, 결국 그 정신은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덜 절대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12) 따라서 우리는 동일성의 변증법의 이런 문제점을 올바르게 직시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정신에서의 주체성 구성의 본성 자체의 변화, 나에게로 환원될 수 없는 타자의 인식에서의 변화가 필수적이다. 이것은 정말로 다가올 역사를 개방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조건일 것이다. '인간'들의 진정한 친교와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과정 속에서 자아와 그 정신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 인간주체로서 나는 나의 존재와 되어감, 그리고 타자들의 존재와 되어감을 관계 속에서 결정하는 것에 대한 성찰이 요구되는 시기인 것 같다. 노동자 문화는 바로 이런 윤리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형성되고 변형되는 정치적 과정일 것이다.

 

>미 주<

 

1) 도미니크 르쿠르 외 지음, 이성훈 편역, {유물론, 반영론, 리얼리즘}, 백의, 1995.

2) 이하의 내용들은 많은 부분이 신병현, {노동자문화론}, 현장에서 미래를, 2001에서 다루었던 것을 수정한 것이다.

3) 기업가문화는 자본주의적 모험정신, 자조, 자립정신 등을 포함한다. 신자유주의시기에 민족주의와 더불어 강력한 자본주의적 통합적이고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로 작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신병현, {작업장문화와 노동조합}, 현장에서 미래를, 2000, 26~49.

4)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지음, 박미애 옮김, {문명화과정 I}, 한길사, 1996.

5) 흔히 저항문화와 지배문화를 구분하거나, 지배계급의 문화와 피지배계급의 문화로 구별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구분은 문화에 지나치게 통합적인 힘을 부여하고, 타 집단, 계층, 계급의 문화와의 차이만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지배 이데올로기에 종속된 다양한 차이들로서 문화란 용어를 사용함을 앞에서 보았듯이, 그것은 분석적이지 못하며, 집단이나 계급 내적인 차이와 갈등 및 모순적 경향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6) 이에 대해서는 Nicos Poulantzas, Fascism and Dictatorship: Third International and the Problem of Fascism, London: Verso, 1979, pp.139~167.

7) 윗 글.

8) 1358년 북프랑스, 농민반란 지도자.

9) 이는 흔히 사회파시즘(social fascism) 테제로 알려져 왔고, 맑스주의에서 파시즘에 대해 지나치게 광의로 정의하도록 하였으며, 맑스주의가 파시즘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게 하는 데 기여하거나, 내부의 다양한 오류를 산출한 테제로 악명이 높다.

10) 미셀 페쇠, [이데올로기에 대한 두 가지 성찰], 에티엔 발리바르 외 지음, 윤소영 편역, {알튀세르와 마르크스주의의 전화}, 326~339. 계급주체형성과 노동자 정치의 측면에서 이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논의는 오세철, [변혁주체의 구성과 그 실천], {21세기 자본주의와 한국사회변혁}, 현장에서 미래를, 2001, 85~108.

11) 미셀 페쇠, 윗 글.

12) Luce Irigary, I Love to You: Sketch for a Felicity Within History, London: Routledge, 1996, 4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