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거리

역사철학테제 - 발터 벤야민

同黎 2013. 7. 29. 12:49

역사철학테제 
Walter Benjamin 



사람들 말에 의하면 어떤 장기 자동기계가 있었다고들 하는데, 이 기계는 어떤 사람이 장기를 두면 그때마다 그 반대 수를 둠으로써 언제나 이기게끔 만들어졌었다. 터어키 의상을 하고 입에는 水煙茼을 문 인형이 넓은 책상 위에 놓인 장기판 앞에 앉아 있었다. 거울로 장치를 함으로써 이 책상은 사방에서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장기의 명수인 등이 굽은 난장이가 그 책상 안에 앉아서는 줄을 당겨 인형의 손놀림을 조종하였다. 우리는 철학에서도 이러한 장치에 대응되는 것을 상상할 수가 있다. 항상 승리하게끔 되어있는 것은 소위 <역사적 유물론>이라고 불리어지는 인형이다. 이 역사적 유물론은, 만약 그것이 오늘날 왜소하고 못생겼으며,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라도 그 모습을 밖으로 드러내어서는 안 되는 신학을 자기의 것으로 이용한다면, 누구하고도 한판 승부를 벌일 수가 있을 것이다. 
 

로체Lotze에 의하면 인간이 지닌 심성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중의 하나는 개별적 사물들에 대한 숱한 이기심과 함께 모든 현재가 일반적으로 미래에 대해 아무런 부러움과 선망을 가지고 있지 않는 데 있다고 한다. 이러한 성찰을 좀 더 진전시키면, 우리들이 품고 있는 행복의 이미지라는 것은, 우리들 자신의 현재적 삶의 진행과정을 한때 규정하였던 과거의 시간에 의해 채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들에게서 선망의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행복은, 오로지 우리들이 숨 쉬었던 공기 속, 그러니까 우리가 한때 말을 나눌 수도 있었던 사람들과 우리들 품에 안길 수도 있었던 여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행복의 이미지 속에는 구원의 이미지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함께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역사가 주로 관심을 가지는 과거의 이미지도 이와 동일한 양상을 하고 있다. 과거는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 어떤 은밀한 목록을 함께 간직하고 있다. 우리들 스스로에도 이미 지나가 버린 것과 관계되는 한줄기의 바람이 스쳐 지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들 귀에 들려오는 목소리 속에서는 이제 침묵해 버리고 만 목소리의 한 가락 반향이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들이 연연하는 여인들은, 그녀들이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누이들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과거의 인간과 현재의 우리들 사이에는 은밀한 묵계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고 또 우리는 이 지구상에서 구원이 기대되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앞서 간 모든 세대가 마찬가지로 우리들에게도 희미한 메시아적 힘이 주어져 있고, 과거 역시 이 힘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요구는 값싸게 이루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역사적 유물론자는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사건의 크고 작음을 구별함이 없이 모든 사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얘기하는 연대기 기술자는 다음과 같은 진실, 즉 이 지상에 언젠가 일어난 모든 일은 하나도 빠짐없이 역사에서 주목되어야 한다는 진실에 공정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과거가 완벽하게 기록될 수 있는 것은 인류가 구원되고 난 연후이다. 다시 말해 구원된 인류만이 그들의 과거의 하나하나를 남김없이 인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시 되살아나는 과거의 한순간 한순간은 그날, 즉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지는 날의 日程表의 인용문이 될 것이다. 
 

우선 의식주를 얻도록 노력하라. 그러면 신의 왕국은 스스로 열릴 것이다.                    
- 헤겔 

마르크스에 의해 훈련을 받은 역사가가 항상 염두에 두고 있는 계급투쟁은 조야하고 물질적인 것들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싸움이다. 이러한 싸움 없이는 고상하고 정신적인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상하고 정신적인 것들은, 계급투쟁 속에서 승리자의 손에 굴러 떨어진 전리품의 이미지와는 다른 양상을 하고 있다. 그것은 신뢰, 용기, 유우머, 기지, 불굴성으로서 이러한 투쟁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또 지나가 버린 머나먼 과거의 시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덕목들은, 지배자에게 굴러 떨어진 일체의 승리에 언제나 새로이 의문을 제시할 것이다. 마치 꽃들이 해를 향하듯, 과거 또한 알 수 없는 종류의 신비스러운 向日性에 힘입어, 바야흐로 역사의 하늘에 떠오르는 바로 그 해를 향하려고 하고 있다. 역사적 유물론자는 모름지기 모든 변화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이러한 사소한 변화에 정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과거의 진정한 像은 흭 스쳐 지나가 버린다. 다만 우리는, 그것이 인식되어지는 찰나에 영원히 되돌아올 수 없이 다시 사라져 버리는, 마치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상으로서만 과거를 붙잡을 수 있을 뿐이다. <진리는 우리들로부터 달아나 버리지 않을 것이다> - 고트프리트 켈러에서 연원하는 바로 이 말은 역사적 유물론을 관통하는 역사의 이미지를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왜냐하면 현재에 의해 인식되지 못했던 모든 과거의 상은 언제든지 현재와 함께 영원히 사라져 버릴 위험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지나간 과거의 것을 역사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그것이 도대체 어떠했던가>를 인식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위험의 순간에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과 같은 어떤 기억을 붙잡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 유물론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위험의 순간에 역사적 주체에 예기치 않게 느닷없이 나타나는 과거의 이미지를 꼭 붙잡는 것이다. 위험은 전통의 내용에서뿐만 아니라 전통의 수용자에게도 닥쳐온다. 이 양자는 하나같이 동일한 위험, 즉 지배계급의 도구로 이용될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어떠한 시기든, 바야흐로 전통을 압도하려는 타협주의로부터, 언제나 새로이 전통을 싸워서 빼앗으려는 시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메시아는 구원자로서만이 오는 것이 아니다. 그는 반그리스도(각주: 그리스도 재림 이전에 출현하여 이 세상에 악을 뿌리리라고 초기 그리스도교가 豫期하던 敵을 가리킨다.)의 극복자로서도 오는 것이다. 과거로부터 희망의 불꽃을 점화할 수 있는 재능이 주어진 사람은 오로지, 죽은 사람들까지도 적으로부터 안전하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투철하게 인식하고 있는 특정한 역사가뿐인 것이다. 그런데 이들 적은 승리를 거듭하고 있다. 
 

고난과 비참의 메아리가 울려 퍼지는 이 골짜기의 암흑과 혹한을 생각하라. 
- 브레히트, 「서푼짜리 오페라」 

퓌스텔 드 쿨랑지Fustel de Coulange(1830-1889)는 역사가에게, 만약 그가 지나간 한 시대를 체험해 보고자 하면 모름지기 그 후에 일어난 일체의 역사적 진행과정을 아예 머리에서 떨쳐버릴 것을 권고하고 있다. 역사적 유물론이 파괴했던 역사방법론의 성격을 이보다 더 단적으로 말해주는 발언도 없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感情移入Einfühlung의 역사방법론인데, 이 방법론의 근원은 심장의 나태, 즉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진정한 역사적 이미지를 붙잡는 데 절망함으로써 생겨난 태만이라는 병acedia이다. 중세의 신학자들에게 이 병은 멜랑콜리의 근원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병에 친숙했었던 플로베르는 <카르타고를 소생시키기 위해 내가 어느 정도 슬퍼지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를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이러한 슬픔(멜랑콜리)의 본질이 무엇인가는 다음과 같은 질문, 즉 역사주의의 신봉자들은 도대체 누구의 마음이 되어 보려고 감정이입을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져 본다면 한층 더 명확해질 것이다. 대답은 두말할 나위 없이 승리자의 마음이 되어 보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런데 그때마다의 새로운 지배자는 그들 이전에 승리했었던 모든 자들의 상속자이다. 따라서 승리자의 마음이 되어 본다는 것은 항상 그때마다의 지배자에게 유리하게 됨을 뜻한다. 이로써도 역사적 유물론자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승리를 거듭해 온 사람은, 땅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들을 짓밟고 넘어가는 오늘날의 지배자의 개선 행렬에 함께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전리품이란 지금까지 으레 그러했던 것처럼 이 개선행렬에 함께 따라다닌다. 우리가 문화유산이라고 일컫는 것은 바로 이 전리품을 두고 하는 말인 것이다. 이러한 문화유산을 역사적 유물론자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비판적으로 관찰한다고 보아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가 문화유산에서 개관하는 것은 하나같이 그에게는 전율 없이는 생각할 수도 없는 원천에서 비롯하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문화유산의 현존재는 그것을 창조한 위대한 천재들의 노고뿐만 아니라, 이름도 없는 동시대의 부역자들의 노고에도 힘입고 있는 것이다. 야만의 기록이 없는 문화란 있을 수 없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한 번도 없다. 문화의 기록 자체가 야만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이 사람 손에서 저 사람 손으로 넘어가는 傳承의 과정 또한 이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유물론자는 가능한 한도 내에서 이러한 전승으로부터 비켜난다. 그는 결에 거슬러서 역사를 솔질하는 것을 그의 과제로 삼는다. 
 

억눌린 자들의 전통이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교훈은, 우리들이 오늘날 그 속에서 살고 있는 <비상사태>라는 것이 예외가 아니라 상례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러한 인식에 상응하는 역사의 개념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진정한 비상사태를 도래시키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는 사실이 명약관화해질 것이고, 그리고 이를 통해 파시즘에 대한 투쟁에서 우리가 갖는 입장도 개선될 것이다. 파시즘이 승산이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 반대자들이 진보라는 이름을 하나의 역사적 규범으로 삼아 이를 들고 파시즘에 맞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지금 체험하고 있는 일들이 20세기에 들어선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능할 수 있다는 놀라움은 결코 철학적 놀라움이 아니다. 이러한 놀라움은, 그러한 놀라움을 생겨나게 하는 역사관이 지탱될 수 없다는 인식이 전제되지 않으면 인식의 출발점이 되지 못한다. 
 
9
나의 날개는 날 준비가 되어 있지만 나는 기꺼이 되돌아가고 싶었다. 왜냐하면 비록 내가 영원히 머물더라도 나는 행복을 갖지 못할 테니까. 
-게르숍 숄렘, 「천사의 인사」 

클레P. Klee가 그린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각주: 표현주의의 화가 클레의 그림으로서 벤야민은 오랫동안 이 그림을 그의 가장 중요한 명상의 대상물로 삼았다.)라고 불리는 그림이 하나 있다. 이 그림의 천사는 마치 그가 응시하고 있는 어떤 것으로부터 금방이라도 멀어지려고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묘사되어 있다. 그 천사는 눈을 크게 뜨고 있고, 그의 입은 열려 있으며 또 그의 날개는 펼쳐져 있다. 역사의 천사도 바로 이렇게 보일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들 앞에서 일련의 사건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바로 그곳에서 그는, 잔해 위에 또 잔해를 쉼 없이 쌓이게 하고 또 이 잔해를 우리들 발 앞에 내팽개치는 단 하나의 파국을 바라보고 있다. 천사는 머물러 있고 싶어 하고, 죽은 자들을 불러 일깨우고 또 산산이 부서진 것을 모아서는 이를 다시 결합시키고 싶어 한다. 그러나 천국으로부터는 폭풍이 불어오고 있고, 또 그 폭풍은 그의 날개를 꼼짝달싹 못하게 할 정도로 세차게 불어오기 때문에 천사는 그의 날개를 더 이상 접을 수도 없다. 이 폭풍은, 그가 등을 돌리고 있는 미래 쪽을 향하여 간단없이 그를 떠밀고 있으며, 반면 그의 앞에 쌓이는 잔해의 더미는 하늘까지 치솟고 있다. 우리가 진보라고 일컫는 것은 바로 이러한 폭풍을 두고 하는 말이다. 
 
10 
수도원이 수사들에게 명상을 위해 규율로서 정하고 있는 대상들은 이 세상과 속세의 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지금 우리가 추적하고 있는 생각들도 이와 유사한 목적에서 나온 것이다. 오늘날 파시즘의 반대자들이 희망을 것었던 정치가들이 파시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그들 자신이 내걸었던 大義를 저버림으로써 그들의 패배를 확인하고 있는 이 마당에서, 이러한 생각들이 노리는 바는, 이들 정치적 현세주의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쳐놓은 함정의 올가미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데 있다. 이러한 관찰은, 이들 현실적 정치가들의 진보에 대한 고집스러운 믿음과 <대중기반>에 대한 신뢰, 그리고 통제할 수 없는 사회적·정치적 기구에 대한 노예 같은 맹종과 동화가 실제로는 동일한 내용의 세 가지 양상에 불과하다는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 이러한 관찰은 또한, 이들 정치가들이 계속 고수하고 있는 역사관과 일체의 복잡한 마찰을 기피하는 하나의 역사관을 위해서 우리들의 관습적 사고가 얼마나 높은 대가를 치르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한번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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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사회민주주의에 깊이 자리 잡고 있던 타협주의는 그들의 정치적 전략에서뿐만 아니라 그들의 경제관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후에 사회민주주의가 겪는 파국의 중요한 원인의 하나는 바로 이 타협주의이다. 시대의 물결을 타고 나아간다는 생각만큼 독일의 노동계급을 타락시킨 것은 없다. 그들은 기술의 발달을 그들이 나아가는 흐름의 낙차로 간주하였다. 바로 이러한 생각에서부터, 기술의 발달과정 속에 들어 있는 공장노동이 하나의 정치적 과업을 수행하리라는 환상에 이르기까지는 그야말로 오십보백보이다. 해묵은 프로테스탄트적 노동윤리는 독일인들 사이에서 세속화된 형태로 그 부활을 맞이하게 되었다. 고타강령Gotha Programm은, 노동을 모든 부와 문화의 원천이라고 정의함으로써 이미 이러한 혼란의 흔적을 내포하고 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눈치 챈 마르크스는 <자신의 노동력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인간은 소유주가 된 다른 인간들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이러한 견해를 반박하였다. 이러한 반박에도 불구하고 혼란은 점차 확대되었고, 그 후 곧 요젭 디츠겐Joseph Dietzgen은 <노동은 새로운 시대의 구세주이다. 노동의 조건이 개선되면 지금까지 그 어떤 구원자도 성취하지 못했던 부가 생겨날 것이다>라고 공언하였다. 노동의 본질에 대한 이러한 통속적인 마르크시즘적 견해는, 노동자들이 그들의 노동에 의해 만들어낸 생산품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한은 그것이 어느 정도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사고의 소산이다. 이러한 견해는 다만 자연통제(정복)의 진보만을 생각하고 있을 뿐 사회의 퇴행은 인정하려 들지 않고 있다. 그것은 이미 그 뒤 우리가 파시즘에서 마주치게 될 기술주의적 특징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들 특징 중의 하나는 1848년의 7월 시민혁명 이전의 사회주의적 유토피아에서 논의되었던 자연개념과는 구별되는 불길한 조짐을 예고하는 자연개념이다. 이런 식으로 이해된 노동개념은 결과적으로 자연의 착취로 귀착되는데, 사람들은 순진하게도 자연의 착취를 프롤레타리아트의 착취와 대립되는 것으로 파악, 이에 만족하고 있다. 이러한 실증주의적 견해와 비교해 본다면 자주 조소의 대상이 되어온 푸리에Charles Fourier(1772-1837) 식의 환상은 놀랍게도 건강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푸리에에 따르면 사회적 노동이 효과적으로 짜여진다면 종국적으로는 네 개의 달이 지구의 밤을 대낮같이 밝힐 것이고, 남북극의 빙하가 녹을 것이며, 바닷물은 더 이상 짜지 않을 것이고 또 맹수들은 사람들의 명령에 순종하게끔 되어 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자연을 착취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게, 오로지 잠재적 가능성으로서 창조물의 모태 속에 잠자고 있는 자연을 창조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노동의 한 예를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디츠겐이 표현했던 바의 <공짜로 거기에 존재하는> 자연은 이러한 타락한 노동의 개념을 보완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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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역사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식의 정원에서 소일하는 무위도식자들이 역사를 필요로 한 것과는 달리 역사를 필요로 한다. 
- 니체, 「삶을 위한 역사의 유용성과 단점」 

역사적 인식의 주체는 투쟁하는 피지배계급 자신이다. 마르크스에 있어서는 이 계급은 패배한 세대의 이름으로 해방의 과업을 마지막까지 수행하는 억압받고 또 복수하는 최후의 계급으로 등장한다. 스파르타쿠스Spartakus(각주: 일차세계대전 중 칼 립크네히트, 로자 룩셈부르크 등에 의해 조직된 독일사회당 좌파의 연합으로 그후 독일공산당의 모태가 됨.)에서 다시 한 번 잠깐 나타났던 이러한 의식을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언제나 혐오하였다. 30여년이 경과하는 동안 그들은, 지난 세기를 규합하고 뒤흔들어 놓았던 블랑키(1805-1881)와 같은 목소리와 이름을 말살하는 데 성공하였다. 사회민주주의는 노동자계급에 다가올 미래 세대의 구원자의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이에 자족하였고, 또 이로써 노동계급으로부터 그들이 지닌 가장 큰 힘의 원천인 심줄을 잘라 버렸던 것이다. 노동계급은 이러한 훈련과정에서 곧 증오와 희생정신을 망각하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증오와 희생정신을 해방된 손자들의 이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짓밟히고 억눌린 선조들의 이미지에 의해 자라고 북돋아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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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로 우리의 목적은 더 분명해 가고 또 날로 국민들은 더 영리해질 것이다. 
- 요젭 디츠겐, 「사회민주주의의 철학」 

사회민주주의의 이론은 물론이고 그 실천도 한층 더 현실에 근거한 진보의 개념이 아닌 교조적 요구를 지닌 진보의 개념에 의해 규정되어 왔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머릿속에서 그려왔던 진보는 무엇보다도 인류 자체의 진보(인류의 기술과 지식의 진보만이 아닌)를 의미하였다. 둘째로 그들이 생각한 진보는 아직도 완결되지 않은 진보(인류의 무한한 완벽성의 가능성에 상응하는)를 의미하였다. 셋째로 그것은 또 근본적으로 끊임없이 발전하는 진보(직선 내지 나선형을 그으면서 자동적으로 나아가는 진보)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속성들은 모두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으며 또 이들 속성 각각에는 비판을 가할 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비판은, 그것이 가차 없는 비판이 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모든 속성들의 배후들을 꿰뚫어보아야 하고 또 이들 속성의 공통점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데 주안점을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인류의 역사적 진보라는 개념은 동질적이고 공허한 시간을 관통하는 역사적 발전과정이라는 개념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진보라는 개념에 대한 비판의 바탕은 이러한 역사적 발전과정이라는 개념에 대한 비판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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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원은 목표이다. 
- 칼 크라우스, 「운문으로 된 말들」 

역사는 어떤 구성이나 구조물의 대상인데, 이 구조물이 설 장소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동질적이고 공허한 시간이 아니라 <현재시간Jetztzeit>에 의해 충만 된 시간이다. 그래서 로베스피에르에게는 고대의 로마는 현재시간에 의해 충전되어진 과거였다. 프랑스혁명은 스스로를 다시 태어난 로마로 이해하였다. 프랑스혁명은 고대의 로마를, 마치 유행이 지나간 의상을 기억에 떠올리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기억하고 회상시켰다. 유행은 무엇이 현실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낌새채는 - 그것이 아무리 지나간 과거의 덤불 속에 있더라도 -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이를테면 과거를 향해 내딛는 호랑이의 도약이다. 다만 이 도약은 지배계급이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는 원형경기장에서 일어나고 있을 따름이다. 역사의 자유로운 하늘에서 펼쳐질 이와 동일한 도약이 바로 마르크스가 혁명으로 파악한 변증법적 도약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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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연속성을 폭파시키고자 하는 의식은, 행동을 개시하려는 순간의 혁명적 계급에 고유한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은 새로운 달력을 도입하였다. 이 새로운 달력의 첫날은 역사의 低速度 촬영기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기억의 날로서 국경일의 모습을 하고 언제나 다시 되돌아오는 그 날은 따지고 보면 항상 동일한 날인 것이다. 따라서 달력은 시계처럼 시간을 계산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백년 이래 유럽에서는 그 가장 희미한 흔적조차도 드러내지 않았던 역사의식의 기념비이다. 이러한 역사의식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있었던 것은 1848년의 7월 혁명 동안에 일어났던 하나의 돌발적 사건에서였다. 투쟁의 첫날밤에 파리의 여러 곳에서 상호간에 아무런 관련도 없이 독자적으로 그리고 동시에 시계탑에 총격이 가해졌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아마 詩의 압운에 힘입어 그의 통찰력을 획득했다고 생각되는 이 사건의 어느 증인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누가 믿을 것인가? 들리는 말에 의하면 모든 시계탑 밑에서 있던 새로운 여호수아가 마치 시간이 못마땅하기라도 하듯이 시계 판에 총을 쏘아 시간을 정지시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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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유물론자는 과도기로서의 현재의 개념이 아니라 시간이 그 속에 머물러 정지 상태에 이르고 있는 현재의 개념을 포기할 수 없다. 그 까닭은 이와 같은 현재의 개념에 의해서만 역사를 쓰고 있는 현재가 정의되기 때문이다. 역사주의가 과거의 <영원한> 이미지를 나타낸다면 역사적 유물론자는, 일회적인 과거와의 유일무이한 경험을 보여준다. 역사적 유물론자는, 과거의 영원한 이미지 따위는 역사주의의 유곽에서 <옛날 옛적>이라고 불리는 창녀에게 정력을 탕진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맡겨 버리고, 대신 그는 자신의 힘을 스스로 제어하면서 역사의 지속성을 폭파시키기에 충분한 힘을 가진 남자로 계속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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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주의가 보편적 세계(인류)사에서 그 정점을 이루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유물론적 역사서술은 방법론적으로, 어떠한 다른 종류의 역사보다는 바로 이러한 보편사와 비교해 보면 아마 가장 명확히 구별될 것이다. 보편적 세계사는 아무런 이론적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다. 보편사의 방법론은 첨가적이다. 그것은 동질적이고 공허한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 사실의 더미를 모으는 데 급급하다. 유물론적 역사서술은 이와는 반대로 하나의 構成원칙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사고에는 생각의 흐름만이 아니라 생각의 정지도 포함된다. 사고는, 그것은 긴장으로 충만 된 사실의 배열 속에서 갑자기 정지하는 바로 그 순간에 그 사실의 배열에 충격을 가하게 되고 또 이를 통해 사고는 하나의 單子 Monade로서 結晶化된다. 역사적 유물론자는, 그가 단자로서 마주 대하는 역사적 대상에만 오로지 접근한다. 이러한 단자의 구조 속에서 그는 사건의 메시아적 정지의 표식, 달리 말해 억압된 과거를 위한 투쟁에서 나타나는 혁명적 기회의 신호를 인식한다. 그는 동질적이고 공허한 역사의 진행과정을 폭파시켜 그로부터 하나의 특정한 시기를 끄집어내기 위해서 과거를 인지한다. 이런 식으로 해서 그는 시대로부터는 하나의 특정한 삶을, 일생의 사업으로부터는 하나의 특정한 사업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론으로부터 얻게 되는 수확은 한 작품 속에 필생의 업적이, 필생의 업적 속에는 한 시대가, 그리고 한 시대 속에는 전체 역사의 진행과정이 보존되고 지양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파악되어진 것의 영양이 풍부한 열매는, 귀중하지만 맛이 없는 씨앗으로서의 시간을 그 내부에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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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구상의 유기적 생물체의 역사와 비교한다면 호모 사피엔스(인류)의 보잘것없는 오천년 역사는 이를테면 하루의 24시간 중의 마지막 2초와 같은 것이고 또 이러한 기준에서 두고 보면 문명화된 인류의 역사는 기껏해야 하루의 마지막 시간의 마지막 초의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어느 현대의 생물학자는 말한 바 있다. 메시아적 현재시간의 모델로서 전 인류역사를 엄청나게 축소해서 포괄하고 있는 현재시간Jetztzeit은 우주 속에서 인류의 역사가 만든 바로 그 형상Figur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附記



역사주의는 역사의 여러 상이한 계기 사이의 인과관계를 정립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그러나 어떠한 사실도 그것이 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해서 역사적 사건이 되는 법은 없다. 원인으로서의 사실은, 수천년이라는 시간에 의해 그 사실과는 동떨어져 있을 수도 있는 사건들을 통해서 추후에 역사적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전제에서 출발하는 역사가는 사건들의 계기를 마치 염주를 하나 하나 세듯 차례차례로 이야기하는 것을 중지하고 그 대신 그가 살고 있는 자신의 시대가 지나간 어느 특정한 시대와 관련을 맺게 되는 상황의 배치로 파악한다. 이렇게 해서 그는 메시아적 시간의 단편들로 점철된 <현재시간>으로서의 현재라는 개념을 정립하게 되는 것이다. 
 

시간으로부터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고 했던 점술가들은 확실히 시간을 동질적 시간으로도 또 공허한 시간으로도 체험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은 어쩌면 과거의 시간이 어떻게 기억을 통하여 체험되어졌던가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주지하다시피 유대인에게는 미래를 연구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유대인의 경전인 토라와 그들의 기도는 이와는 반대로 기억을 통하여 미래가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다. 이러한 기억은 유대인들로부터, 점성가들에게서 가르침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빠져들었던 미래가 지니는 마력적 힘을 박탈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대인에겐 그로 인해 미래가 동질적이고 공허한 시간이 되었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미래 속에서는 매초 매초가 언제라도 메시아가 들어올 수 있었던 조그만 門을 의미하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