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남의 글

계급 - 근현반

同黎 2013. 3. 14. 13:43

근현반에서 몇년동안 후배들과 공부했었지만, 이런 질문들을 하는 1학년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이는 세연군이 커리를 꼼꼼이 읽을 뿐만 아니라 글의 행간 또한 잘 파악했다는 것과

 

사회모순에 대한 세연군의 관심이 어느정도인지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훌륭한 학회원인 것 같군요. ^^

 

 

세연군의 질문은 80년대 유행했던 사회주의 변혁론(지금은 스탈린주의라고 불리는)의 주요명제들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고 현재 얼마만큼의 유효성이 있을까하는 고민 때문에 답을 할까말까 하다가 간단히만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 답은 어디까지나 그 변혁론에 입각하고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그렇습니다. 쁘티부르주아에는 지식인, 소상인/소기업주, 농민 등이 모두 포함됩니다.

 

문제는 계급성입니다. 계급을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입니다.(사실 이렇게 쉽게 대답해주면 안되는데 ^^) 맑스는 이것을 폐지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공산당 선언을 읽어보았다고 알고 있으니까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노동자계급이 혁명에서 잃을 것은 쇠사슬이요 얻을 것은 전세계이다"

 

이것은 그냥 멋있는 수사학이 아닙니다.

 

자본가계급은 혁명에서 잃을 것이 많습니다. 혁명 후에는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이들의 재산 몰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이에 저항해 반혁명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러시아 혁명 후의 내전이 그런 경우입니다.

 

반대로 노동자계급은? 잃을 것이 없죠. 따라서 과거의 자본주의 '계급'사회와 아무런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종국에 까지 새로운 사회건설의 주역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농민과 소상인/소기업주...이들은 혁명에 참여했다 하더라도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위해서는 이들의 사적소유물(개인적 생활수단은 제외) 역시 몰수되어야 합니다. 생산수단의 사적소유가 계급을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노동자를 착취한 사장은 인민재판을 해서 벌을 주고 재산을 몰수한 반면, 아르바이트까지 해서 직원들의 밀린 임금을 주려는 착한 사장은 그대로 놓아두어야 할까요? 아닙니다. '몰수'라고 하니까 굉장히 야박하고 살벌한 느낌이 드는데, 이들을 못살게 군다던지, 아오지로 보낸다던지, 인민재판을 한다던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계급'을 폐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쁘티부르주아의 잔존하던 계급성이 나타납니다. 자신이 사적으로 소유한 생산수단이 몰수되는 것을 반대하고 혁명에 저항하는 자들이 생겨나는 거죠. 이것은 혁명 후 뿐만 아닙니다. 혁명을 위한 싸움 도중에 더 많이 나타나죠.

 

작은 자본을 소유하고 있을 때는 좋은 사람인데, 큰 자본을 소유하게 되면 나쁜 사람이 된다? 이렇다면 '작은'이란 얼만큼 작은 것을 의미하며, 크다는 것은 어느정도가 되어야 크다고 할 수 있을지요?

크건 작건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들이 자본주의 계급사회를 지탱하는 한 축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처음에 같이 싸우더라도 싸움이 급진화하여 사회의 근본을 무너뜨리려 할 기미가 보이면 이들은 발을 빼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 논리만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이들이 항상 보여왔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만으로 혁명을 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계급동맹이 필요한 것입니다. 자본과 국가에 저항하는 인민모두를 묶어내는 동맹말입니다.

 

역샤상의 사회주의 혁명들은 모두 이런 방식으로 성공하였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중국공산당의 오성홍기에도 표현되어 있습니다. 다섯개의 별들은 각각 의미하는 바가 있습니다. 가운데 큰 별은 중국공산당을, 다른 4개는 각각, 노동자, 농민, 지식인, 민족자본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잔존하는 봉건제와 소수 독점자본들, 일본 제국주의로 고통받고 있던 이들의 동맹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엇갈린 낫과 망치가 그려져 있는 구소련의 깃발은 어떤가요. 짜르와 봉건귀족들, 근대사회를 열어야할 자신의 본분을 잊고 이들과 결탁한 독점자본들에 맞선 농민과 노동자의 노농동맹을 의미하겠죠.

 

그들의 계급성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동맹이 가능한 이유는 이들 또한 지배계급에게 고통당하고 있고 따라서 그들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싸울 의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동맹에서 중요한 것은 쁘띠부르주아들이 자신의 계급성 때문에 겪게 될 불안정성을 지도하고 이들을 견인해갈 수 있는 노동자계급의 주도성입니다. 반드시 노동자계급의 주도하에 있어야 이들의 불안정성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쁘띠부르주아에는 '지식인 계급'이 있습니다. 이들은 상당히 애매한 계급인데 생산수단과 직접적 관계를 맺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사회적 관계에 따라 자본가계급의 편에 설 수도 노동자계급의 편에 설 수도 있습니다. '계급을 선택하는 자들'이죠.

 

우리같은 사람들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생산관계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사상과 이론 등이 계급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또한 어느 한 계급의 편이 된 후에는 이 사상과 이론을 가지고 그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일들을 합니다.

 

이들의 주된 활동은 생산현장이 아닌 머리 속 입니다. 그래서 항상 혼란해 하고 동요합니다. 지식인의 기회주의는 여기에서 기원하는 것입니다.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한창 잘 나갈때는 그들의 옹호하고 지지하는 글을 써날리다가 투쟁이 잦아들고 노동자의 힘이 약해지면 금방 돌아섭니다. '사상전향고백'을 하면서 요란하게 돌아서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지식인의 기회성 역시 노동자계급에 의해 지도되어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아, 룸펜을 빠트렸군요,

 

자본주의 사회는 다른 사회체제와 달리 끊임없는 자본 축적을 그 특징으로 한다. 자본 축적과정은 끊임없는 이윤율의 확대를 추구하는데, 생산력이 발전할수록 노동력을 발전한 생산수단으로 대체함으로써 노동력 구입에 들어가는 비용을 감소시켜 이윤율을 확장시킨다. 또한, 이렇게 축적된 자본은 한곳으로 집중된다. 이 경향은 필연적으로 상대적 과잉인구를 팽창하고 소득의 양극화와 소비의 모순을 가져와 빈곤을 양산하는 것이다. K.Marx, 김수행역, 「제7편 자본의 축적과정」,『자본론Ⅰ-하(下)』, 비봉출판사, 811p


이 상대적 과잉인구는 취업하지 않은 인구로 산업예비군 비정규직으로서 파트타임, 임시직 노동자, 자영노동자, 자영과 임노동을 반복하는 노동자, 고용과 실업을 반복하는 반복실업자(일용직등)등
과 유랑자, 죄인, 성매매여성, 걸인, 도둑, 깡패 등의 형태로 존재합니다. 이러한 상대적 과잉인구의 최하층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룸펜프롤레타리아입니다.

 

이들은 공동의 계급적 이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조직될 수도 없고 일반적으로 아주 비참하거나 타락한 절망적인 처지에 있기 때문에 혁명운동에 필요한 규율 또한 체득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혁명투쟁의 와중에 국가와 자본에게 쉽게 회유되어 방어자로 고용됩니다. (쉽게 생각하면 파업회사의 구사대, 철거현장의 용역깡패)  

 

작년 청계천 철거 현장에 간 일이 있었죠. 철거에 반대하는 지역주민과 상인들과 싸우기 위해 깡패와 경찰 이외에도 시청에서는 서울역에 거주하는 노숙자들 수백명을 돈으로 고용해서 데리고 나왔더군요. 청계천만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그래왔습니다. 맑스가 이들을 직접 언급한 것을 보려면 [루이 보나파르트와 브뤼메르 18일]을 참고하십시오.

 

 

말했지만 어디까지나 80년대의 맑스레닌주의 변혁론에 입각한 설명입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과 가르침이 없지는 않습니다. 허나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마십시오. 남미에서는 맑스가 경멸해마지 않았던 룸펜들이 신자유주의에 맞서 생존권을 사수하기 위해 토지를 점거하고 도로를 점거하고 경찰과 강고하게 싸우고 있습니다.

 

그럼 이만...

 


원문내용(작성자:박세연)-----------------------------------

계급에 정말 여러가지가 있더군요;;

근데 질문인건

 

쁘띠부르주아 (여기에 농민과 소상인도 들어가는 건가요?)는 왜 결국 혁명의 주도세력이 될 수 없다는 말이 많은건지, 공공 50년대를 이야기하는 커리에도 농민들의 계급적 한계가 나오던데요;;

제가 보고 느낀 농민들은 단순히 쁘띠부르주아라고 하기엔 ........ 좀...

혁명이 단순히 노동자계급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까요? 결국 쁘띠부르주아는 안된다는 식의 애기는 성급한 이야기인 것도 같아요

그리고 자본가중에서도 한국의 독점자본가 외의 조그마한 자본가들 뭐랄까요 소기업의 자본가 등은

너무 불쌍한 느낌도;; 물론 이들도 노동자들을 탄압했겠지만 위에서 치이고 아래서 치이고 이들의 계급성(?) 같은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그리고 왜 룸펜프롤레타리아는 희망이 없는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