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남의 글

민족-국가 - 근현반

同黎 2013. 3. 14. 13:43

민족-국가가 유대양식으로 자리잡혔다는 것은 곧 계급투쟁의 장소가 민족-국가였음을 의미합니다. 자본은 국가의 화폐/노동력에 대한 개입없이는 단 하루도 버틸 수 없으며, 이를 빚대어 발리바르는 "모든 부르주아지는 국가 부르주아지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자본은 항상 국가의 개입에 힘입어서 노동과정의 냉혹한 제약들과 분업을 통해 잉여가치를 착취한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족-국가에서 민족의 구성원은 자유-평등을 향유할 수 있으며 또 그럴 때에만이 그 유대양식이 유지되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반)주변부에서 팽배한 것이 바로 발전주의입니다. 발전주의라 함은 바로 이 자유-평등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경제발전에 매진해야 한다는 논리이며, 자유-평등을 미래의 상(장미빛 미래)으로서 약속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피지배계급은 지배이데올로기(민족주의)을 곧이 곧대로 실천(자유-평등의 즉가적인 요구)하거나 경제적 착취에 저항하였으며, 이는 종종 조우하였습니다. 이러한 조우가 이루어졌을 때에 자국의 지배계급과 중심의 제국주의적 세력에 대해 대중은 봉기를 일으킨 것입니다. 이것이 민족주의가 새로운 유대양식에 대한 고민과 국제주의적 연대를 가로막음에도 불구하고 가질 수 있었던 최소한의 진보성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국면에 들어서면서 민족-국가라는 유대양식에 균열이 가해지기 시작합니다. 이는 계급투쟁의 판 자체가 깨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지금의 초국적 금융자본은 새로운 계급투쟁을 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것 자체를 회피하고 있는 것입니다. 끈임없이 세계 곳곳을 도주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피지배계급 역시 난관에 부딪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들은 계급투쟁의 전제들부터가 무너짐으로써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었으며, 역시 주요한 전략으로 이주활동을 벌여나가기 시작합니다. 민족-국가라는 유대양식에 균열이 가해졌다는 것은 곧 지배계급이 자유-평등이라는 약속을 포기해버렸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는 민족주의가 더이상 피지배계급의 무기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더욱이 그 균열의 자리를 (인종, 종교 등에 따른) 분리주의가 채우고 있는데, 민족주의가 가지는 최소한의 진보성이 탈각된 이 시점에서 그거들의 하위 이데올로기 노릇한다는 것이지요. 민족주의에는 공동체 구성원의 자유-평등와 인종적 요소가 공존하는데, 전자가 빠지게 되면 후자만이 남는 것은 자명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