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무료한 103-230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同黎 2013. 7. 29. 12:08

상나라에 태갑(太甲)과 이윤(伊尹)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윤은 상나라를 세운 탕을 도운 명 재상이었고, 태갑은 탕의 손자로 상의 왕위를 이었다. 그러나 태갑은 왕위에 올라 포학하게 굴고 방탕한 생활을 계속하였다. 결국 개국공신이었던 이윤은 태갑을 동궁(桐宮)에 감금하고 3년 동안 섭정하였다. 그리고 3년이 지난 후 이윤은 반성한 태갑을 다시 불러 천자의 자리에 다시 올렸고 태갑은 이윤에게 절하며 감사를 표한다. 이 이야기는 서경에 실려있다.


보통 태갑과 이윤의 이야기는 정치적으로 해석된다. 유교사회에서 신하가 임금을 훈계하는 내용으로 숱하게 재생산되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윤이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감정에 대해서 생각해본 사람은 없었다. 이윤은 상나라의 개국공신이자 재상이며 태갑을 어릴 때부터 지켜본 스승이기도 하다. 그러한 그가 임금이자 제자를 감금하기로 결정했을 때 얼마나 많은 번뇌가 뒤따랐을까? 임금의 감금은 자칫 자신이 역적이 될 수도 있는 위험한 정치적 결단이다. 그 결단을 내리기까지 또 태갑과의 인간적 신뢰를 무너트릴 수 있는 결정을 할 때까지 그는 얼마나 고민했을까? 그러나 이윤은 결국 최고의 악역이 되기를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다.


결국 서경은 태갑이 반성하고 성군이 된다는 최고의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그러나 대부분의 악역들의 끝은 대부분 비참하기 마련이다. 진심은 이해되지 않고, 표면의 행동만으로 평가받는다. 어느 정도로 유지되던 인간관계는 대부분 끊어지고 과거의 친구들은 자신을 손가락질하고 있다. 결국 악역은 평화로운 자신의 일상을 모두 잃고 지독하게 고독한 상태에서 남은 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은 그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역은 필요하다. 세상에는 악역이 없이는 바뀌지 않는 것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아마도 앞으로 수 많은 악역들이 주변을 살피면 그 길을 걸어갈 것이다. 고독해진 가운데 마음은 소심해지고 행동에 확신도 떨어지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제 갈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악역들이 또 얼마나 많을까? 부디 그들이 가능한 이윤 같은 해피엔딩을 맞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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