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무료한 103-230

공부 메모

同黎 2013. 9. 15. 03:48

전근대시대를 공부하다 보면 아무래도 초점이 국가에 맞춰질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역사 서술의 초점이 되는 사료가 주로 관찬사료일 경우가 많고, 사람들 개개인의 삶을 통제하고 규정짓는 제도와 정책이 모두 국가에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석사논문은 제도사라는 반농반진의 이야기가 말해주듯이 관찬사료를 읽고 제도와 정책을 정리하는 것은 글을 깔끔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사에서 국가를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된 것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논쟁 - 즉 조선 망국의 원인에 대한 논쟁의 영향도 크다. 한국사학계와 경제사학계의 논쟁은 주로 조선이 "근대적 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는가 아닌가에 초점에 맞추어져 있었다. 특히 80년대 이른바 민중사관이 난관에 봉착하고 지주 대 농민의 계급적 구도가 실증의 역습을 받으면서 신고전파 경제사학의 비판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잃게 되면서 한국사학계의 방향 역시 크게 선회하였는데 그 중심에는 국가가 있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경제사의 분야만 보면 그 변화가 아주 크게 감지된다. 실증에 부분에서 경제사학계의 의견이 많이 수용되었다. 조선의 경제체계를 칼 폴라니((Karl Polanyi)의 (국가)재분배구조로 상정하고 이전까지 수탈로만 규정되던 국가의 부세 수취가 국가의 재정 재분배라는 차원에서 재검토되었다. 그리고 국가의 재정 이념들, 이를테면 민본(民本), 양입위출(量入爲出), 궁부일체(宮府一體), 손상익하(損上益下) 같은 것들이 재검토되면서 조선만 국가 재분배가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특징을 추출하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내재적 발전론과 자본주의 맹아론에서 벗어나 경제사학의 식민지 근대화론과 고도성장론에 반격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정치사, 사회사, 사상사, 대외관계사 등 여러 분야에서 이와 같이 조선을 재검토하는 움직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조선이라는 국가에 매몰되어 버리는 함정이다. 국가가 주도하고 제도와 정책에 함몰되면서 국가의 역할과 영향력을 실제보다 과대평가하거나 혹은 그것밖에 없다는 맹목, 또는 조선의 국가에 대한 지나친 긍정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최근 재정사 위주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는 경제사는 물론이고 정치사와 사상사 역시 이러한 경향성에 빠질 위험이 크다. 조선의 국가지배이데올로기였던 유교는(유학이 아니라 유교다.) 명백하게 국가주의적인 사상이자 종교이다. 조선의 제도와 정책, 그리고 그 근간을 이루는 사상을 연구하면서 거기에 무한한 긍정성만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결국 국가주의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존경하는 선생님들이 몇몇 연구에서 은연중 드러내시는 태도들, 즉 조선의 합리성을 강조하거나 심지어 지금보다 조선이 낫다는 식의 서술은 이러한 걱정을 더욱 강하게한다. 전공하는 시대에 대한 애정은 어느 연구자나 필연적으로 견지할 수 밖에 없는 태도라해도 자신의 시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은 단순한 애정의 도를 지나친 것이라고 하겠다.

경제사학계는 명백하게 국가주의로 이동하였다. 그들은 '실체가 없는' 민족을 비판하며, '실체가 있는' 국가를 선택했다. 우리가 할 일은 이 국가주의 자체를 비판하고 새로운 전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역사학계가 내놓는 대안이 조선이라는 국가 안에서의 시각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결국 우리는 경제사학계의 저런 국가주의 대신 이런 국가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에 그치고 만다. 레닌의 이론을 계승한 내재적 발전론이 왜 분단시대 남한 지배세력에게 수용되었는지에 대한 윤해동의 지적을 살펴보자. 국가주의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 없다면 우리는 선배들이 저질렀던 과오를 다른 형태로 반복하게 될 것이다.

국가에 대해 공부하는 것을 필수적이다. 국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않고서는 국가주의를 비판할 수 없다. 국가가 어떤 시스템과 논리를 가지고 움직이는가를 실증해내는 것은 아직도 많은 과제를 남기고 있고, 많은 연구자들이 거기에 시간과 노력을 투여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로부터 어느 정도 자율성을 지니고 있었단 다른 공동체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향촌사회사, 신분제도사, 심성사, 도시사, 여성사 모두 제도사와 정책사가 가지고 공백을 매워줄만한 연구들인데 90년대 초반 이후로는 별다른 연구가 되고 있지 않다.

역사학의 현재성이라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말이다. 과거를 다루는 역사학에서 현재적 의미를 뽑아내는 것은 모순적이기까지 하다. 예전에는 역사에서 교훈을 찾아내거나 현재 이루어지는 운동의 원동력을 찾으려는 시도가 많았다. 민란, 농민전쟁에 대한 수 많은 연구가 이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제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역사에서 찾아 그 당위성을 주장하는 식의 연구는 이미 종결되었다. 대신 국가 이외에 공동체가 존재했고 그것이 실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구성시켰고, 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그려주는 것만으로도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미래의 전망을 그려내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억지로 과거와 현재를 유비시키기 보다는 국가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 그것이 존재했음만을 보여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현재적인 공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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