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무료한 103-230

사랑과 소유

同黎 2013. 9. 1. 15:58

사랑과 소유


연애의 시대다. 누구나 연애를 하고 싶어 하고 연애가 없는 것이 놀림거리가 되거나 자조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저마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연애의 환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청춘이 사랑을 찾는 것이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있었던 일이었지만 요즘처럼 연애가 범람하는 시절도 드문 것 같다. 단연컨데 지금은 연애에 대한 환상도 거기에 따르는 상품도 역사상 그 어느 시기보다 가장 넘치는 시기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넘쳐나는 것이 무엇이 나쁘겠냐만은 그래도 지금의 상황이 이상하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범람하는 남/여 역차별의 주된 화제는 데이트 비용이다. 남성이 일방적으로 지불하는 것이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어떤 한심한 TV 프로그램에서는 젊은 여성들이 나와 데이트 준비까지 여성이 들이는 비용과 시간이 너무 많은데 당연히 남성이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발언을 해 또 난리가 났었다. 이것이 엉뚱하게 여성주의를 비판하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으니 이래저래 참 한심한 일이다. 


최근 범람하고 있는 연애의 문제는 그것이 사랑을 소유로 귀결시킨다는 것이다. 서로 좋아하는 연애가 어째서 남들에게 과시의 대상이 되는가? 혹은 저런 놈도 연인이 있는데 왜 나는 연인이 없는가라는 이야기를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이건 연인을 나의 소유물로 여기기 때문이다. 연애가 사랑의 결과물이 아니라 남들이 다 가지니까 나도 가져야 하는 그런 소유물일 뿐이다. 남이 소유한 것을 나도 소유하고 싶다는 욕망이 연애 담론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데이트 비용도 결국 소유의 문제이다. TV에 나와서 했던 그 여성의 이야기는 결국 남자친구를 소유하기 위해 스스로를 꾸민다는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결국 자신을 매매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남성들 역시 마찬가지다. 데이트 비용은 여자친구를 얻기 위해서, 이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여자친구와 자기 위해서 지불하는 돈이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이건 화대에 가깝다. 이런 관계는 연애가 아니라 사랑을 매매하는 것이다.


외로울 때 연애하는 것만큼 위험한 연애는 없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나의 감정을 받아주는 물건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작하는 것이다. 외로울 때 시작하는 연애가 대부분 비극적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것은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받으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소유관계이다. 


흔히 우리는 연애와 결혼 이후를 비교하는 우스갯소리를 자주 한다. 왜 이럴까? 결혼은 바로 소유의 완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완전한 소유 이전까지 그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노력하다가 소유가 완성되면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부부생활은 불행하다.


인간관계에 배타적인 부분인 사랑에까지 소유의 논리가 침투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병들어 있는 지를 잘 보여준다. 연애를 제외한 다른 인간관계들이 이미 '인맥'이라는 말도 안되는 논리로 재구성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거의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연애라는 관계에까지 우리는 상대방을 소유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소유의 논리가 인간관계 최후의 보루까지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도데체 어떻게 해야 사랑하는 것인데? 간단하다. 참아라. 희생해라. 받을 것을 생각하지 말고 줘라. 짝사랑을 즐겨라.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을 즐겨라. 바보가 되라. 맹목적이 되라. 외로워서 누군가를 사귀는게 아니라 사랑하는 과정 그 자체에서 감정이 포만감을 느껴야한다. 바보같이 주고 버리고 희생함에도 기쁜 것이 바로 사랑이다. 짝사랑을 하면서도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것이 사랑이다. 그게 아니라 자꾸 나와 상대방의 손익을 계산하는 순간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한용운이 지은 <복종>이라는 시가 있다.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 하지마는 /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이 문구만큼 사랑의 본질을 잘 알려주는 말이 또 있을까?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지금도 공감을 얻는 이유는 어떠한 조건도 보이지 않는 심지어 목숨까지 내거는 그 맹목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가 바보같다는 느껴진다면 스스로를 의심해봐라. 나는 아직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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