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무료한 103-230

독서이력서

同黎 2013. 6. 15. 21:00

독서 이력서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 말은 식상하지만 사실이다. 한 사람의 신체는 무엇을 얼마나 먹고 자랐느냐에 (절대적이진 않을지라도) 좌우되듯이 한 사람의 사고는 무엇을 얼마나 읽고 자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 경우만 보더라도 아주 어릴 적에 읽었던 책이 의외로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러 증언에 따르면 나는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했다고 한다. 태어나서 처음 꽂힌 것은 선풍기였는데 선풍기 날개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식겁한 후로는 책에 꽂혔다고 한다. 내 기억에도 자기 전에 엄마 아빠나 이모에게 동화책 읽어달라고 조르던 기억이 난다. 꽤나 성가신 아이였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집에는 아이가 읽을 만한 책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으러 교회로, 또 같은 동네 살던 아는 형의 집으로 전전했다. 그렇게 교회에서 삼국유사 이야기를 읽으며 부처님을 만났고, 형네 집에서 지금은 영화로 더 유명한 『찰리와 초콜렛 공장』을 만났다.


처음 기억나는 ‘내 책’을 가졌을 때는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조숙한건지 변태인건지 모르겠지만 박물관에 가길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아빠는 대신그룹에서 창사 25주년으로 낸 『국보』라는 책을 가져다주었다. 국보 1호부터 282호까지 각 장당 사진 하나와 설명으로 이루어진 심플한 책이었는데, 어린아이인 나로서는 새로 접하는 신문물이었다. 그 후 초딩인 나는 아빠를 졸라 책을 한두 권씩 얻어내기 시작했고 두 번째 ‘내 책’인 『국보찾아 삼만리』를 받았다. 그 후에 『왕릉』, 최순우 선생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윤용이 교수의 『아름다운 우리 도자기』,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 『신봉숭의 조선시대 산책』, 『서울의 고궁 산책』 등을 받았는데 모두 초등학생 때 본 것이고 놀랍게도 대부분 지금도 가지고 있다. 아마 책 욕심은 이때부터 여전한 것 같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독서에 재미를 붙이면서 시련도 시작되었다. 도무지 학교 수업에는 재미를 붙이지 못했기 때문에 교과서 아래 몰래 다른 책을 숨겨놓고 읽다가 걸리기 일쑤였다. 학교에서 책보다 걸린게 집에 전해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불벼락이 떨어졌다. 그래도 어영부영 엄마와 선생님을 피해 심지어 영어학원에서도 몰래 책을 읽어댔고, 그렇게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문열의 『삼국지』와 『수호지』를 땠다. 그렇데 그 어린애가 글을 읽으면 얼마나 이해했겠는가? 최순우가 극찬해 놓은 창덕궁 연경당의 아름다움을, 윤용이가 말한 토기의 미학을 뭘 알았을까? 그러나 이 때의 독서가 어쩌면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사춘기가 되면서 관심이 조금 변하였다. 미술사에 대한 관심이야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지만 다른 점은 종교와의 만남이었다. 이우혁의 걸작인 『퇴마록』은 나를 신비주의와 비교종교학으로 끌어들였다. 덕분에 이 때 『성경』을 다 읽었다. 그 밖에 천주교의 신비주의와 성인숭배, 개신교의 이단들, 그노시스주의, 마니교, 조로아스터교, 오컬트, 불교에 대해서 미친 듯이 책을 읽어갔다. 웬만한 종교 입문서는 다 읽어봤고, 그 중에서도 특히 천주교와 불교에 관한 책이 많이 있었다. 불교와 미술사에 대한 관심이 결합하면서 불교미술에 대한 급속한 관심이 생긴 것도 이 시기였다.


『퇴마록』은 나에게 지우기 어려운 흑역사를 안겨주기도 했는데 『환단고기』로 빠진 것이 그것이다. 이제는 유사역사학이라고 불리는 전 세계에서 한민족이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녔고 또 위대했다는 이 말도 안되는 이야기에 나는 빠져들었다. 주체할 수 없는 민족의식(?)도 원인이었겠지만 사실 『환단고기』류의 유사역사학에 빠져든 이유는 마치 이것이 나만 아는 비밀이며 진리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남들이 알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우쭐함이 나를 유사역사학에 끌어들였다. 물론 그 짓도 고등학생 때는 관두었지만.

중학교 3학년 때 조금 다른 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그 때 나는 학교의 도서관을 관리하는 도서부 활동을 했는데 학교 예산으로 내가 보고 싶은 책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정말 최고의 특별활동이었다. 그 때 당시 도서부의 담당선생님인 최 선생님은 유명한 전교조 활동가인 젊은 선생님이었는데 나에게 충격적인 책 한 권을 추천해주었다. 5.18 광주항쟁을 황석영이 기록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였다. 거기서 나는 이런 세계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 후 고등학교로 가면서 꽤나 많은 불온(?) 서적을 읽었다. 홍세화의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김규항의 『B급 좌파』,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최윤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체 게바라 평전』, 『전태일 평전』, 임철우의 『봄날』이 죄다 이 때 읽은 책들이다. 덕분에 고등학교 1학년 때 데모도 처음 나가보고 청소년운동에도 기웃거려 보았다. 그러나 그 보다 이후 있을 대학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이다.


물론 줄창 이런 빨간책들만 읽은 것은 아니었다. 늘 엄청난 사교육과 진학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던 나에게 독서실은 엄청난 해방구였다. 아예 교보문고 택배 주소지를 독서시를 해 놓고 책들을 읽어대기 시작했다. 박경리의 『토지』를 1년에 걸쳐 다 읽은 것도 이 때였다. 『태백산맥』과 『아리랑』, 『한강』도 다 읽었다.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1회부터 26회까지 몽땅 사서 읽은 것도, 시인 김남주와 정호승을 발견한 것도 독서실에서였다. 결국 언어영역과 논술에 대비한다면서 한국 대표 문학선집 세트를 샀다. 그러다가 독서실에 숨겨 놓은 책을 모두 걸려 압수당했다. 그 때부터는 언어영역 문제집만이 나의 해방구였다. 시중에 나온 언어영역 문제집은 다 풀었고 시간이 남으면 사탐을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외국어를 팠다. 수리는 언제는 뒷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입학해서는 정작 책을 멀리했다. 이 세상에 재미있는 것은 너무나 많았고, 마셔야할 술도 너무나 많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놀고 다니다가 학회라는데 들어갔고 선배들이 책을 사줬다. 그런데 처음에 한 질문이 엉뚱해서 그런지 받은 책은 무려 로자 룩셈부르크의 원전이었다. 결국 지금까지 읽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선배들에게 이 책 저 책 선물 받고 독서를 강요받으며 학부 생활을 했다.


『신자유주의의 역사와 진실』,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 『자본론의 세계』, 『청년을 위한 한국현대사』, 『페미니즘의 도전』, 『행복한 페미니즘』, 『신문 읽기의 혁명』, 『새 여성학 강의』, 『섹슈얼리티 강의』, 『한국 노동계급의 형성』, 『아름다운 저항』, 『자본주의 역사 강의』, 『마르크스의 사상』, 『철학과 굴뚝 청소부』, 존 리드의 『세계를 뒤흔든 열흘』, 『프랑스 혁명에서 파리 코뮌까지』, 『중국의 붉은 별』. 제목만 나열해도 숨이 막히는 듯 한 수많은 사회과학 서적들. 사실 당시에는 이게 정확히 무슨 내용인지, 뭐 읽는 지도 잘 모른 체 선배들이 사주면 읽고 세미나를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때 배운 내용들이 이후 공부에 큰 밑천이 되었다. 맑스, 앵겔스, 레닌, 그람시, 콜론타이, 마오, 이리가레, 알튀세르 같이 이들의 이론을 어깨너머로 훑어 본 것도 이때고, 구조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운 것도 이때다. 그렇게 4년을 보냈다.


대학원에 진학해야겠다고 결정했을 즈음 눈에 들어온 책은 『경성 트로이카』였다. 1930년대 국내 사회주의 운동가인 이재유의 삶을 다룬 이 소설에 고취되어 『이재유, 나의 시대 나의 혁명』를 읽었고 이어 『이현상 평전』, 『이관술, 1902-1950』도 접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일제시대 국내 사회주의 운동사를 전공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러나 운동사만으로는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러다가 조경달 선생의 『민중의 유토피아』, 『이단의 민중반란』을 접하면서 개항기에서 일제시대에 이르는 종교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근대와 전근대가 만나는 시대에 이데올로기로서 종교가 살아남는 법, 그리고 그 종교를 선택하는 민중의 심성이 궁금해졌다.


그러던 중 김재호, 이영훈, 이태진 선생 등이 가세한 일대 논쟁을 엮은 『고종황제 역사청문회』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논쟁을 보며 현재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에는 바로 그 이전의 봉건사회인 조선후기가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사회 구조의 토대를 이루는 사회경제사가 가장 중요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만 만연하게 하였던 것이다. 결국 대학원 원서는 한국중세사 전공으로 쓰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조선시대 수업을 거의 듣지 않았고 심지어 조선시대와 관련된 교양서도 읽지 않았다. 지도교수가 될 강제훈선생님과는 거의 일면식도 없는 상태였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무턱대고 조선후기팀의 문을 두드리는 모험이 시작되었다.


그리고나서는 계속 강행군이었다. 사실 이제 단행본보다는 논문을 더 많이 보게 되는 삶을 살고 있다. 박시형, 김석형, 강만길, 김용섭, 이영훈, 송찬식, 차문섭, 이태진, 송양섭, 손병규, 이정철, 이욱, 문용식, 이철성, 오항녕, 강제훈, 이경식, 김태영, 미야지마 히로시, 김건태, 배항섭, 김인걸, 이성임, 고동환, 오수창, 홍순민, 한명기, 김태웅, 김재호, 조영준, 도면회, ... 이런 수많은 선학들에게 빚을 지고 글을 읽었다. 그렇게 2년 정도를 읽고 나서 조금 조선이 어떤 나라인지 보이는 듯도 했다. 특히 오항녕 선생님의 『조선의 힘』은 조선을 어떻게 볼 수 있는지 많은 고민을 안겨 준 책이었고, 이정철선생님의 『대동법: 조선 최고의 개혁』은 제도사란 무엇인지 알려준 책이었다.


물론 공부와 관련된 책만 읽었던 것은 아니다. 공부하는 도중에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야마오카 소하치의 『대망』을 다 읽었다. 공부 때문에 생기는 스트레스를 푸는 또 하나의 길을 여행이었다. 일본 여행을 네 번 다니면서 캐리어가 터지도록 사온 일본의 역사·예술·불교·신도에 대한 200여 권의 도록과 너무 비싸서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한국에 와서 제본한 학술서들은 중국·일본에 대한 시야를 한 층 넓혀주었다. 요컨대 일탈로 계획했던 여행이 공부에 도움이 크게 되었다. 그렇게 논문 주제를 정할 시기가 다가왔다.


고민 끝에 주제는 조선후기의 사원경제로 정하게 되었다. 대학원 입학할 때 연구계획서부터 불교와 관련된 주제를 쓰기는 했지만 계획서와는 다소 방향이 수정되었다. 정리하면 지금 진행하는 석사논문의 방향은 ‘국가와 불교’라고 정리될 수 있다. 건국부터 이단으로 선포되었던 불교가 국가와의 관계맺음 속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공부의 목표가 되었다. 조선후기 불교사원가 지닌 민중과 지배층도 아닌 그 모호함이 마음을 끌었다.


입학 초기와 시각의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처음에는 불교 자체에 대한 흥미가 더 컸다면 이제는 재정에 대한 흥미가 더 커졌다는 것이다. 최근 칼 폴라니의 이론이 수입된 가운데, 조선후기의 경제는 폴라니가 구분한 호혜, (국가)재분배, 시장경제의 세 가지 체제 중 국가 재분배의 형태에 속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국가에서 승려를 승역으로 사역시키고 그 반대급부를 주는 과정은 사실 일반적인 조선후기 국가재분배 체제에 명확히 결합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왕실이나 지방관청의 시주가 비공식적으로 (조선에서 공식적인 국가의 불교 후원은 사림정치가 자리잡은 이후 상상할 수 없다.) 이루어진다는 점에는 호혜의 틀을 더 담고 있다. 이러한 점은 ‘사족과 불교’라는 주제로 확장될 때 더욱 커질 것이다. 호혜와 재분배가 섞여 있는 이 독특한 부분이 조선후기의 사원경제인 것이다.


어쩌면 조선이라는 국가에서 가장 마이너리티한 부분이었던 불교와 승려를 통해서 조선이 가진 특징 중 한 부분을 밝힐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밝혀야겠다. 그것이 내 독서와 공부의 목표이다. 그래서 가끔 사람들이 불교사 전공자로만 나를 볼 때 불편하기도 하지만 또 나름대로 좋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어쨌든 내가 조선시대 전공자로 확고하게 자리매김 하는 것이리라.


27년간의 독서 결과는 내 논문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헛되지 않았다면 공부의 영역을 확장해서 공부가 현재성을 띌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해서 공부하는 학문이다. 이 명제는 사회과학에 비하여 인문학의 과학성이 떨어진다는 약점을 주기도 하지만 반면 사회과학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인문학이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인문학만으로는 현실 사회 구조의 모순을 분석하고 그 전망을 밝힐 수 없지만, 또한 인문학이 없으면 분석과 전망 또한 불가능하다. 전근대시대 역사학이 다시 사람들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도록 앞으로의 독서의 방향을 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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