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무료한 103-230

보살행과 선물

同黎 2013. 8. 19. 01:56

대승불교에서는 “보살행을 하면 스스로 보살행을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보살행이 아니다.” 라고 말한다. 보살행은 이타행이다. 즉 나를 버리고 다른 이를 위하여 보시를 베푸는 한편, 계율을 지키고 선정에 잠겨 마침내 반야바라밀 즉 최고의 지혜를 얻는데 이르는 것이다. 보살행을 함에 있어서 그것이 보살행임을 인지하지 말라는 것은 그것을 인지함과 동시에 마음 속에 대가를 원하는 생각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즉 작게는 나의 보시를 물건이나 금전으로 보상받고 싶다는 마음이 크게는 이 보살행을 통해 성불(成佛)이라는 대가를 얻어내겠다는 마음이 자라나는 것을 막기 위해 보살행에 대한 인식 자체를 금기시하는 것이다.


이는 베푸는 사람만이 기억해야 할 것이 아니다. 보시를 받는 사람 역시 여기에 대한 어떠한 부담감이나 부채의식도 가지면 않된다. 그것은 받은 것을 언젠가는 무슨 행태로든지 돌려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어떠한 대가로 바라지 않고 베푼 호의를 교환의 의미로 받아들인다면 상대방의 의도를 왜곡하여 결국 나뿐만 아니라 서로의 보살행을 방해하게 되는 것이다.


보살행에 대한 대승불교의 생각은 데리다의 생각과 매우 닮았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선물을 줄 때 어떠한 보상을 받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약 그 친구가 보내온 선물이 우리가 먼저 주었던 것보다 못하면 실망하기 마련이다. 이럴 때 우리가 주고 받은 선물은 선물이 아니다. 그것은 교환을 위한 것, 즉 뇌물이다. 선물에 교환 가치가 생길 때 그것은 더 이상 선물이 아닌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선물이 기억에 남겨지거나 희생의 상징으로서 남을 때 역시 그것은 더 이상 선물이 아니다. 때문에 선물을 주는 사람뿐만 아니라 선물을 받는 사람 역시 그것에 대하여 ‘망각’할 때 선물은 진정한 선물이 될 수 있다. 선물은 선물이 되지 않을 때 역설적으로 뇌물이 아니라 선물이 되는 것이다.


수확을 기다리지 않을 씨앗을 뿌릴 때, 일체의 대가 없니 내가 가진 것을 줄 때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물론 여기서의 사랑은 연애감정이 아니라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최고 형태를 의미한다. 두 사람의 관계에서 서로가 자신의 것을 대가없이 주고, 또 그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관계의 최고 형태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물신(物神)에 대한 신앙이라는 새로운 종교를 신봉한다. 물신(物神)의 교리에서 교환을 바라지 않고 무엇인가를 주는 것은 죄악이다. 그런 사회에 살면서 우리는 어느새 자연스럽게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며 주고, 또 상대방은 거기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그만큼을 돌려준다. 그리고 결국 서로 주판알을 튕기며 서로의 손익을 계산하기에 바쁘다. 결국 우리는 지금까지 뇌물을 주고받았던 것이다. 서로가 무엇을 해줄 것인가에 대한 ‘망각’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대이다. 교환가치 외의 다른 것을 생각하는 바보가 인간의 관계를 회복시킬 수 있다.


여기서 나올 수 있는 마지막 질문에 답하며 글을 마치자. 그렇다면 선물에 대한 ‘망각’이 서로의 관계를 역시 ‘망각’ 즉 아무런 의미 없는 희생으로 끝나게 만들지 않을까? 여기서 첫 문단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보살행에 대해서 음미해보길 부탁드린다. 보살행에 대하여 인식하지 않을 때 우리는 반야바라밀을 성취하고 보살의 단계에 오를 수 있다. 마찬가지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또 그것에 대하여 부담을 느끼지도 않는 그 ‘망각’의 단계에 관계의 최고 형태는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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