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혁에 대한 입장은 이미 블로그에 한번 밝혔던 바가 있는데 (http://ehddu.tistory.com/17) 요즘 또 생각이 조금은 바뀌게 되었다. 지금까지 문혁은 대약진운동의 실패 이후 마오의 정치적 복귀와 반대파 제거를 위한 정치공학적 의미로 주로 다루어졌다. 게다가 문물 파괴와 지식인 하방으로 대표되는 폭력성 때문에 홍위병은 "마오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 내지 희생된 중우정치의 대표적 사례"로 이야기되기 일수이다. 그런데 문혁과 홍위병을 이렇게 평가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특히 사회주의자라면 이러한 평가는 더더욱 하지 말아야하지 않을까?
그람시에 의해 처음 제기되고 구하에 의해 재정의되었으며 지금까지 쭉 후속 연구자들이 이용하고 있는 서발턴(Subaltern·하위주체) 이론을 사용하면 문혁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했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혁명 이전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스탈린의 경우 소련 내에 더이상 계급이 없다는 "선언"을 통해 그러한 문제들을 무마하거나 맹목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중국의 경우 그것을 다른 방식으로 해결하려 하였다. 핵명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던 여성과 남성, 지식인과 비지식인, 도시와 농촌, 당 중앙과 지방의 문제를 혁명적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중국 내부의 혁명인 문화혁명의 근본적인 의미였다.
문혁은 혁명 이후에도 지속된 관료제의 억압 하에 있던 서발턴(하위주체)들에게 이야기를 할 기회를 주었다. 이들은 이전까지 한번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거나, 이야기를 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문혁을 통해 이들에게 드디어 말할 수 있는 통로가 생겼다. 문혁의 시작이 관료와 당간부, 관리자에게 억압받던 공장의 노동자들이 대자보를 써붙임으로써 시작되었다는 것은 바로 문혁이 서발턴이 이야기함으로써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후 홍위병들의 행동은 구하가 이야기한 서발턴의 특성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이들은 부정성, 폭력성, 영역성(비확장성), 연대성 등의 특징을 거의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홍위병들의 문물 파괴는 자신들의 억압하는 이들의 상징을 제거함으로써 이들과 자신들을 구분하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부정성과 폭력성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홍위병이 들고 다니던 모주석어록은 무엇이었을까? 단언하긴 어렵지만 나는 그것은 일종의 부적이라고 생각된다. 홍위병들은 일반적인 일상에서는 결코 저지를 수 없는 일들을 저지르며 그동안 억압되었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온 세상에 이야기했다. 또한 마오는 이러한 행위들이 가능하도록 정당성을 부여해준 체제의 가장 상위에 있으면서도 주자론자들에게 둘러쌓여 억압받는 지도자였다. 모주석어록이나 모택동의 사진 등은 우상이라기 보다는 자신들의 행위가 체제 자체를 뒤집는 것은 아니라는 일동의 영토성(영역성)을 보여주며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동시에 제한하는 부적이었던 것이다. 주은래가 천안문 광장에 모택동의 사진을 걸고 자금성에 대한 파괴 행위가 중단된 것은 홍위병들의 모택동 개인에 대한 우상숭배 때문이라기 보다는 홍위병들이 그 사진의 의미를 알아챘던 것이다. 모택동의 사진은 자신들을 정당화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행동을 제한하는 부적이었고, 그것이 걸렸을 때 저 선을 넘어서면 더 이상 자신들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마오와 홍위병의 욕망이 같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마오가 문혁의 과정에서 자신도 홍위병을 통제할 수 없다고 토로한 데에서 알 수 있듯이 홍위병과 마오의 욕망과 생각은 일치하지 않았다. 홍위병에게 마오는 물론 위대한 스승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통로였다. 홍위병을 마오의 정치적 희생물, 혹은 광기에 사라잡힌 대중만으로 파악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홍위병은 마오에게 기꺼이 이용당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마오를 이용하기도 했던 것이다.
문혁이 끝나고 과거의 홍위병들은 다시 서발턴이 되어 자신의 언어를 빼앗겼다. 중앙으로 복귀한 지식인들은 문혁을 지옥으로 묘사하고, 마오와 홍위병은 악마가 되었다. 마오는 혁명의 공적이라도 있었지만 홍위병들은 뿌리 깊은 중국의 봉건사회에서 감히 지식인에게 말도 붙일 수 없는 이들이었다. 이렇게 다시 언어를 빼앗긴 홍위병들은 이제야 다시 조금씩 자신들의 언어를 되찾고 있다. 역사가의 임무는 기존의 정치공학적 분석을 들이대 이들을 어리석은 대중으로 만들거나 이들에게 일방적 포폄을 가하기보다는 서발턴의 언어를 다시 읽고 그들의 심성을 파악하는 것이 아닐까? 분명한 것은 조반유리(造反有理), 이유 없는 반란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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