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부당 개입에 대한 한국사 전공 대학원생 공동성명
5년 전이다. 2008년 11월 28일, 국내외 역사학 전공 대학원생 일동은 이명박 정부의 교과서 개악시도를 저지하려는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당시 우리들은 미래 역사학자‧교육자로서 국가권력이 역사학자들을 ‘좌파’로 몰아세우고, 역사교과서를 정치도구화하려는 행태에 대한 단호한 거부와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5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박근혜 정부에서 더 참담한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공권력의 불법 선거개입에 대한 공정수사 요구는 가로막혀 있고, 합법적 정당이 해산청구를 받는가 하면, 전교조는 불법(법외) 노조로 규정되었다. 박근혜 정부는 민주적 절차와 사회적 합의를 배제한 채 보수 언론 및 단체의 선동을 등에 업고 사회 곳곳을 ‘종북’, ‘좌편향’이라는 칼날로 들쑤시고 있다.
그 칼날은 여지없이 역사교과서를 향해서도 휘둘러지고 있다. 정부는 교학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로 파생된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기존 교과서에 ‘좌편향’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교학사 교과서야말로 수많은 역사적 사실관계 오류뿐 아니라 심각한 편파해석을 담고 있음에도 검정을 통과했다. 더 나아가 정부는 최소한의 자격조차 갖추지 않은 교학사 교과서 수정을 빌미로 기존 교과서 전반에 수정명령을 내림으로써 부당한 개입을 시도했다. 낡은 냉전시대로의 회귀와 성장지상주의를 위시한 정권미화의 의도를 담은 수정명령은 마침내 집필진을 배제하고 이를 반영한 교과서의 최종 승인으로 귀결되었다. 국정 한국사 교과서가 시행되었던 유신시대 이후 40년, 박근혜 정부는 국정교과서를 능가하는 개입으로 유신의 응답을 요청하고 있는 듯하다.
공공의 기억으로 재생산할 역사는 낡고 병든 냉전적 이념이 아니다. 친일, 독재, 반공을 옹호하고, 조장하는 이념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 성장 만능론에 대한 집착도 버려야 한다. 극복하고 청산해야 할 이념을 소환하고 긍정하는 행위는 역사범죄이다. 과거와의 대화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의 주춧돌이 될 역사는 인류가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민주주의, 인권, 자유, 평등, 평화, 공존, 환경 등이다. 한국사 교육은 소외와 배제가 사라지고 다양한 목소리가 민주적 가치 속에서 공존하며,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된 사회로 나아가는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정부는 특정집단만을 대변하고, 이념적으로 편향된 잣대로 한국사 교과서를 재단해서는 안 된다.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정부의 부당한 개입은 월권이자 시대역행적 행위이다. 정부는 사회적 합의와 민주적 절차에 입각해 한국사 교과서의 전문성, 공정성, 보편성을 보호하고 그 지평을 확대해야 한다. 유신으로 회귀하려는 한국사 교과서는 시대적 가치가 없다. 한국사 교과서는 미래지향적 한국사 교육의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한국사 교과서는 역사학자, 교사, 학생을 중심으로 사회 각계각층과 끊임없이 소통하여 민주적 가치를 지향하는 다양한 내용들로 채워져야 한다.
이에 한국사를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은 아래의 사항을 요구한다.
- 우리는 정치적 편향성을 앞세운 정부의 한국사 교육 개입을 반대한다.
- 우리는 비민주적, 분단 지향적 한국사 교과서를 거부한다.
- 우리는 한국사학계 연구 성과의 반영과 민주적 역사교과서 서술을 요구한다.
2013년 12월 12일
정부의 한국사 교과서 수정 ‘강요’에 반대하는 한국사 전공 대학원생 모임 일동
(총 18개 대학 대학원 한국사 전공자 273명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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