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무료한 103-230

역사학에 관한 메모2

同黎 2014. 3. 9. 00:39

1. 자본주의 맹아론에 기반한 내재적발전론이 붕괴된 이후 조선시대 사회의 구조를 읽는 뚜렷한 독법이 사라진 지는 꽤 오래되었다. 포스트모던-포스트콜러니얼 담론이 역사학에 들어온 지 꽤 오래되고 연구성과도 꽤나 축적되었으나 아직 조선시대를 설명하는 구체적인 방법론이 개발되지는 않았다. 근대주의에 대한 비판이 지속적으로 재기되고는 있지만 최근 재출된 '유교 근대화론'에서 잘 보이듯이 그것은 서구적 근대 대신 다른 근대를 설정함으로써 조선사회에서 '근대성'을 검출해내려는 시도이다. 여전히 '근대'라는 지향점을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유교 근대화론은 사실 내재적발전론의 또다른 변주에 불과하다. 

2. 중요한 점은 근대에 부과된 부당한 긍정성 내지 환상을 기각하는 것이다. 서구적 근대가 우리에게 가져다준 변화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유아 사망률의 저하, 평균수명의 연장 같은 것들은 근대에 사람들에게 가져다 준 (긍정적?) 변화 자체를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누군가 지적했듯이 냉장고의 발명은 불필요한 소비의 확장을 가져왔으나 동시에 수 많은 빈민들이 더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받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근대만의 고유한 영역이다고 여겨졌던 것들, 그리고 근대를 가져오는 맹아적 현상이라고 보였던 것들에 대한 반론이 재기되고 있다. 예컨데 근대국가의 특징이라고 여겨진 폭력의 국가집중, 재정의 중앙집권화, 관료제, 상비군 같은 것은 조선사회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이 근대적 국가인가? 그렇지는 않다. 우리는 근대가 가지는 물질성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동안 우리가 근대에 가졌던 부당한 환상을 제거해야 한다. 

3. 근대에 대한 부당한 환상들을 제거한다면 한국사에서의 전근대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의 이행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우리는 전근대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의 문제를 다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전근대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의 이행을 다시 파악하면서 우리는 '이행' 그 자체가 가지는 특징들을 잡아낼 수 있지 않을까?

4. 근대에 대해 수정된 시각을 가지고 조선의 경제구조를 국가재분배 체제로 파악한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조선시대에 대한 모든 해석을 다시 해야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작업의 핵심은 왜 조선이 망했는가에 맞춰져야 할 것이다. 
조선이라는 국가에 대한 환상도 걷어내야 한다. 전공자의 뇌리를 무의식적으로 지배하는 '전근대 국가의 합리성'이라는 커튼을 걷어내야 우리는 전근대와 근대를 동시에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다. 그 바탕에서 조선 망국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다.
물론 조선이라는 시스템이 무너지는걸 연구한다는건 학계에서 역적이 되야한다는 걸 의미하고, 식민지근대화론자라는 비판을 받게 될것이다. 하지만 조선이라는 시스템의 결함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고서 어떤 학문적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 나는 역사를 살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지 조선을 위해 공부하는건 아니다.

5. 그리고 중앙재정의 운영 원리가 어느 정도 파악된 현 시점에서 연구의 핵심은 국가재분배 체제 내에서 국가에 물자를 공급하고 또 국가에서 나오는 재원을 인민에게 재분배하는 상업의 역할을 제대로 파악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상업사에 대한 전면적 재해석이 연구자를 기다리고 있다.

6. 그리고 그 끝에서 어쩌면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산주의 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힌트를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내 공부가 거기까지 미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