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 백기완 모이면 논의하고 뽑아대고 바람처럼 번개처럼 뜨거운 것이 빛나던 때가 좋았다 하나를 알면 열을 행하고 개인을 이야기하면 역사를 들이대고 사랑이 튕기면 꽃본 듯이 미쳐 달려가던 곳 추렴거리도 없이 낚지볶음 안주 많이 집는다고 쥐어박던 그 친구가 좋았다 우리는 두려운 것이 없었다 헐벗고 굶주려도 결코 전전하지 않았다 돈벌이에 미친 자는 속이 비었다 하고 출세에 연연하면 호로자식이라 하고 다만 통일 논의가 나래를 펴면 환장해서 날뛰다 밤이내려 춥고 떨리면 찾아가던 곳 식은 밥에 김치말이 끓는 화로에 내 속옷의 하얀 서캐를 잡아주던 말없는 그 친구가 좋았다 그것은 내 이십대 초반 민족상잔 직후의 강원도 어느 화전민 지대였지 열 여섯쯤 된 계집애의 등허리에 핀 부스럼에서 구데기를 파내주고 우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