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黎 2439

스스로 만든 덫에 걸린 우리들 - 김진숙

부치지 못하리란 걸 알면서도 밤새워 쓰는 편지도 있고 오지 않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기다려지는 편지가 있습니다. 돌아오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기다리게 되는 사람이 있고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기다리지 않아도 밤은 자꾸 오고 술마저 취하지 않는 밤. 새벽이 얼마나 더디 오는지 새벽을 견뎌 본 자는 압니다. 그런 밤, 신 내린 무당처럼 산에 올라 부를수록 상처가 되는 이름을 목 놓아 부르는 일은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언제나 늦게 오던 사랑. 다시는 볼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그게 사랑이었음을 깨닫는 일은 얼마나 쓸쓸합니까? 내가 스물 하나 일 때 박창수도 스물 하나였고 내가 스물 셋일 때 스물 하나였던 김주익을 만났던 언제나 거기서부터 떠오르는 이 형벌 같은 기억들은 ..

心/거리 2013.03.12

일제시대 인터내셔널가

일어나라 저주로인 맞은 주리고 종된 자 세계 우리의 피가 끓어 넘쳐 결사전을 하게하네 억제의 세상 뿌리 빼고 새 새계를 세우자 짓밟혀 천대받은 자 모든 것의 주인이 되리 [후렴] 이는 우리 마지막 판가리 싸우미니 인터나쇼날로 인류가 떨치리 이는 우리 마지막 판가리 싸우미니 인터나쇼날로 인류가 떨치리 하느님도 임금도 영웅도 우리를 구제 못하라 우리는 다만 제 손으로 헤방을 가져오리라 거세인 솜씨로 압박 부시고 제것을 찾자면 풀무를 불며 용감히 두드려라 쇠가 단김에 [후렴] 우리는 오직 전세계의 위대한 로력의 군대 땅덩어리는 우리의 것이니 기생충에게는 없으리 개무리와 도살자에게는 큰 벼락 쏟아져도 우리의 머리 우에는 찬란한 태양이 비치리 아주 아주 오래 전, 학교에 알렉스 캘리니코스라는 영국 선생님을 모시고..

心/노래 2013.03.11

전태일열사의 유서

사랑하는 친우여받아 읽어주게친구여,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나를,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잊지 말아주게 그리고 바라네그대들 소중한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 주게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태우고 꺾어버린다고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이 간직된 나는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대들이 아는,그대 영역의 일부인 나 그대들의 앉은 좌석에 보이지 않게 참석했네 미안하네용서하게테이블 중간에 나의 좌석을 마련하여 주게 원섭이와 재철이 중간이면 더욱 좋겠네 그대들이 아는,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덩이를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반지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구애..

心/거리 2013.03.11

들불

“만약 그대가 우리를 처형함으로써 노동운동을 쓸어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렇다면 우리의 목을 가져가라! 가난과 불행과 힘겨운 노동으로 짓밟히고 있는 수백만 노동자의 운동을 없애겠다면 말이다! 그렇다. 당신은 하나의 불꽃을 짓밟아 버릴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의 앞에서, 뒤에서, 사면팔방에서 끊일 줄 모르고 불꽃은 들불처럼 있다. 그렇다. 그것은 들불이다. 당신이라도 이 들불을 끌 수 없으리라...” -미국 노동운동 지도자 스파이즈의 최후진술 中

心/거리 2013.03.11

인터내셔널가 아지

16세의 봉제공 엠마 리이스가 체르노비치에서 예심판사앞에 섰을 때 그녀는 요구받았다 왜 혁명을 호소하는 삐라를 뿌렸는가 그 이유를 대라고 이에 답하고나서 그녀는 일어서더니 노래하기 시작했다 인터내셔널을 예심판사가 손을 내저으며 제지하자 그녀의 소리가 매섭게 외쳤다 기립하시오! 당신도 이것은 인터내셔널이오! 자본가로 하여금 프롤레타리아트 혁명 앞에 벌벌 떨게 하라.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 앞에서 잃을 것은 쇠사슬이요, 얻을 것은 세계 전체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투쟁! 투쟁! 투쟁투쟁투쟁!

心/노래 2013.03.11

남성들이여, 남자다움을 거부하라

남성들이여, 남자다움을 거부하라[기고] 김승연 부자 폭행사건과 잃어버린 소통의 언어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으로 우리 사회가 시끄럽다. 술집에서 맞고 온 둘째 아들이 “경찰에 고소하겠다”고 하자, 김승연 회장은 “철없는 소리 하지 마라. 남자답게 행동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승연 회장이 ‘남자답게 행동’한 결과는? 법적인 대응이 아니라, 아들을 데리고 가서 가해자를 색출하고, 직접 보복폭행을 한 것이다. 폭행 후 김 회장은 폭탄주를 한 잔씩 돌리고 “남자답게 화해했으니 없던 일로 하자”고 말했단다. 그토록 남자다움을 강조했던 김 회장은 이제 경찰의 조사 앞에 ‘남자답지 않게’ 자신의 범행사실을 부인하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김 회장은 자신이 강조한 ‘남자다움’의 가치를 경찰의 수사과정..

心/여성 2013.03.11

한국사대동반, '성평등한 첫만남'

♀성평등한 첫만남♂ 을 그리며, 이제 막 대동반의 문을 들어선 당신에게 드립니다. ‘남자와 여자는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제 대학생들의 상식이 되었습니다. 여대생들의 숫자도 늘어나서 어문계열과 사범계열에서는 여학생의 비율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물론, 학교 수업에는 여러 여성학강좌가 개설되었으며 학회나 동아리의 대표자리에 여학생이 나서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듯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가 어디쯤 서있는지 조금 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세상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 것 같네요. 대다수의 여성이 같은 양질의 일을 하고도 남성보다 적은 보수를 받고, 여성의 성은 여전히도 자연스럽게 술자리 안주감으로, 때에 따라서는 돈으로 사고팔 수 있는 ..

心/여성 2013.03.08

대추리 이장이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노무현 대통령님께.... 대추리 이장 김지태가 드립니다. 대통령님. 당신은 이번 싸움에 철저히 졌습니다. 국가안위를 책임져야 할 대통령으로써 철저히 국민의 심장에 비수를 꽂았고 그로인해 이제 이곳 주민들은 철저히 대통령님을 버렸습니다. 행정대집행을 하기앞서, 군병력을 투입해 철조망을 치기 앞서 미국의 협박에 의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분명히 밝혔어야 합니다. 감히 대통령님께 당신이란 표현을 써서 국가원수 모독죄가 될지 모르지만 당신한테는 너무도 과분한 표현입니다. 당신이 국정을 맡으면서 추구하고자 한 것이 과연 이것입니까. 계속해서 언론에선 보상과 이념의 문제라고 합니다. 더 이상 싸우고 있는 주민을 욕되게 하지 마십시오. 수차례 말했지만 보상엔 관심없습니다. 이곳에 그대로 사는게 최선의 방법입니다. 그리..

心/거리 2013.03.08

사상의 거처 - 김남주

사상의 거처 김남주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입만 살아서 중구난방인 참새떼에게 물어본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다리만 살아서 갈팡질팡인 책상다리에게 물어본다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져 난마처럼 어지러운 이 거리에서 나는 무엇이고 마침내 이르러야 할 길은 어디인가 갈 길 몰라 네거리에 서 있는 나를 보고 웬 사내가 인사를 한다 그의 옷차림과 말투와 손등에는 계급의 낙인이 찍혀 있었다 틀림없이 그는 노동자일 터이다 지금 어디로 가고 있어요 선생님은 그의 물음에 나는 건성으로 대답한다 마땅히 갈 곳이 없습니다 그러자 그는 집회에 가는 길이라며 함께 가자 한다 나는 그 집회가 어떤 집회냐고 묻지 않았다 그냥 따라갔다 집회장은 밤의 노천극장이었다 삼월의 끝인데도 눈보라가 쳤고 하얗게 야산을 뒤덮었다 그러나..

文/詩 2013.03.08

LG-POSCO 경영관을 구경한 학생들에게

LG-POSCO 경영관을 구경한 학생들에게 경영대학에서 건축비 전액을 자체 모금해서 건립된 LG-POSCO 경영관이 개관된 오늘, 나도 여러분과 함께 구경을 했습니다. 세계 유명 경영대의 건물들을 한 달 동안 답사한 후 설계한 건물, 롯데 호텔처럼 지었다고 자랑하는 건물, 교수들이 발벗고 나서서 모금해서 지은 건물, 우리나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급 수준의 대학 건물을 둘러보면서 여러분들 못지 않게 나도 감탄을 연발했습니다. 게다가 세계적인 스타급 연사인 앨빈 토플러의 강연까지 개최하는 경영대의 재력은 그야말로 구경꾼의 기를 죽이기에 충분했습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대리석과 고급 마감재로 장식한 복도를 걸으면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꼈습니까? 이 정도로 최고급의 대학 건물이 우리 캠퍼스에 지어졌..

雜/남의 글 2013.03.08

인촌이 흑막에 싸인 날

인촌이 흑막에 싸인 날 /산하 제가 졸업한 학교의 본관 앞에는 한 사람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인촌 김성수. 이 양반의 과거 행적에 대해서야 의견이 분분합니다만,어쨌건 구리옷 입은 인촌은 수십년 동안 학교 본관 앞 정 중앙에서 안암의 언덕을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동상 뿐 아니라 원래는 그 묘지도 학교 안에 있었습니다. 문과대 뒤 그윽한 숲속 깔끔한 잔디 자락에 자리잡았던 인촌묘소는 그 호젓한 분위기 덕분에 학생들의 단골 술자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지하의 인촌이 이놈들아 시끄럽다~~~~ 무덤을 뚫고 나오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우리는 떠들었고 노래 불렀고 꽹과리를 두들겼습니다. 그 꼴을 보다 못해선지, 아님 다른 명당을 찾았는지 인촌 묘소는 다른 곳으로 옮겨졌습니다. 헌데 학교 안에 또 하나의 인..

雜/남의 글 2013.03.08

5.18 광주민주화항쟁 진압군 어느 병사의 20년만의 고백

이경남 1980년은 우리 사회가 격동을 경험한 시대였을 뿐 아니라 나 개인적으로도 고통의 시기였다. 당시 나는 신학대학 졸업을 앞둔 20대 중반의 청년이었지만, 성서의 요나처럼 내 짐을 감당하기 어려워 군대로 도피하는 길을 선택했고, 그런 나를 하나님은 마치 요나를 바닷물에 던지듯이 특전사라는 곳에 가게 하시고, 끝내는 5월의 광주 그 참옥한 현장에 던져지게 하셨다. 그 후 근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그 끔찍한 현장의 기억들로부터 도피하고 싶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입은 육체의 부상과 마음의 상처로 말미암아 될 수 있으면 그로부터 멀리 떠나 살려 했던 것이다. 단지 그 때문만은 아니었는지 모른다. 새로운 각오로 시작한 신앙 생활과 농촌 교회의 목회 여건이 나 자신의 위치를 떠나 심각한 역..

史/근현대 2013.03.08

11월 26일 부산 교사대회 김진숙 지도위원 연대사

11월 26일 부산 교사대회 김진숙 지도위원 연대사 ========================================================================================= 아직은 아무것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직은 키가 큰 사람만 봐도 숨이 턱 막힙니다. 아직은 밥을 먹는 일도,보일러 스위치를 누르는 일도, 양말을 신는 일도 참 많이 죄스럽습니다. 무엇보다도 준엽이 혜민이 준하 경민이 영욱이 그만한 또래의 아이들을 보는 일이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편견으로 가득 찬 세상에 먹잇감으로 던져진 아이들. 제 아버지의 관을 덮은 국화꽃잎을 떼어 누나에게 갖다주며 웃던 일곱 살 준하.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 온 몸이 아프도록 울었다던 열 일곱살 경민이. 네이스엔 그 아이들..

心/거리 2013.03.08

김진숙지도위원이 박근혜에게 보낸 편지

2005년에 김진숙 지도위원이 쓴 편지를 대통령 취임 이후 다시 읽는다. 박근혜씨.가관도 길어지면 민폐라 한마디 하오. 근혜씨네 패밀리가 생산해 낸 불가사의가 한둘이 아니오만 그 중 대표적인 게,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우스운 일을 그 당시에는 너무나 진지하게 엄수했다는 건데,그건 아마도 나쁜 일도 집단적으로 오래 하다보면 직업이 되기도 하는 그런 이치일거요. 거짓말이나 사기치는 일 같은 걸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거울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될거요. 근혜씨 아버지 시절.우리는 이 땅에 역사적 사명을 띠고 아침마다 큰소리로 태어나야 했던 일이나,이불을 뒤집어쓰고 라디오를 듣는 자를 눈 부릅뜨고 색출하러 다녔던 일이나,토요일마다 모의간첩이 되어 배회하던 선생을 생포해서 경찰서에 갖다 바쳤던 일이나,그 일로 표..

心/거리 2013.03.08

다시, 벗이여 해방이 온다

다시, 벗이여 해방이 온다 [20주기] 김세진·이재호 열사 추모곡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창학(changhack) 기자 그 날은 오리라, 자유의 넋으로 살아. 벗이여 고이 가소서, 그대 뒤를 따르리니. 그날은 오리라, 해방으로 물결 춤추는 벗이여 고이 가소서, 투쟁으로 함께 하리니. 그대 타는 불길로, 그대 노여움으로 반역의 어두움 뒤집어 새날 새날을 여는구나. 그날은 오리라, 가자 이제 생명을 걸고. 벗이여 새날이 온다, 벗이여 해방이 온다. 벌써 20년인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던데, 그새 강산은 두 번이나 옷을 갈아입었나 보다. 그러나 세월의 더께를 인정하기가 참 힘들다. 모두 그렇겠지만 기억은 아직 뇌리에 선하고, 그 노랫소리들은 귀에 울리고 있기에. 난 부끄러웠다 81학번인 나는 졸업 후..

心/노래 2013.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