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조선

왜 조선시대 왕실재정인가?

同黎 2014. 8. 21. 00:51

 2004년 교수신문은 11명의 학자가 참가한, 근대적 역사학이 한국에 도입된 이래 가장 치열했던 지상(紙上) 논쟁으로 뜨거웠습니다. 논쟁의 주된 대상이 된 인물은 바로 고종. 서울대의 이태진 교수가 고종을 긍적적으로 재평가해야 한다는 『고종시대의 재조명』이라는 책을 출판했고, 그에 대하여 이른바 뉴라이트라고 불리는 낙성대 경제연구소의 주축 중 한명인 전남대 경제학과의 김재호 교수가 교수신문에 반박하는 서평을 게재하면서 논쟁은 시작되었습니다.


(*첨언하자면 저는 낙성대 경제연구소가 이른바 뉴라이트라고 불리는 것에 대하여 부정적입니다. 이들이 신고전학파 경제학(주류 경제학)의 시장주의에 매우 충실한 경제사학자들이며 전통적인 한국의 보수주의적 경제정책인 ‘큰 국가론’를 비판하고 ‘작은 정부론’을 주장한다는 면에서 ‘진정한 의미의 뉴라이트’로 불리는 것은 마땅합니다. 그러나 ‘뉴라이트=친일파’ 라는 식의 다소 유치한 도식 하에 파악되는 지금의 뉴라이트라는 단어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들을 비판하려면 이영훈 등 개개인에 대한 비판보다도 먼저 시장주의 혹은 주류 경제학 전체에 대한 비판이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논쟁의 주된 쟁점은 “과연 고종이 만든 대한제국이 근대 국가 였는가”에 맞추어졌습니다. 논쟁을 통해 매우 다양한 입장이 도출되었는데요, 이를 정리해보면 대한제국은 근대적 국가가 아니었다는 주류 경제사학계, 대한제국과 고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보수적 한국사학계(위로부터의 내재적 발전론), 대한제국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민중사관적 한국사학계(아래로부터의 내재적 발전론), 그리고 ‘근대’과 ‘전근대’의 틀을 벗어나자는 탈근대주의적 한국사학(탈식민·탈근대주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중 가장 첨예하계 대립한 주류 경제사학계와 보수적 한국사학계가 논쟁을 벌인 부분이 바로 조선시대-대한제국 왕실재정의 성격부분입니다.


 경제사학계는 기본적으로 ①조선의 왕실재정은 국가의 공적 재정과는 별도의 왕의 사적 재정이었으며, ②때문에 국가재정과 대립하였고, ③대한제국 성립 이후에도 황실재정이 국가재정을 압도하였다. 특히 근대적 화폐기구인 전환국을 궁내부 산하에 두어 근대적 재정제도를 성립하지 못했다. ④때문에 대한제국의 전근대적 국가이다라고 공격합니다. 이러한 주장흔 2011년 고려대에서 열렸던 전국역사학대회에서 재현됩니다. 주류 경제사학계의 거두인 이영훈 교수는 대한제국기 황후의 재정기구인 명례궁의 회계장부를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명례궁 재정이 대단히 큰 규모였는데 이 재정이 전부 제사와 연회에 쓰였다. 이렇게 흥청망청 재정을 낭비했기 때문에 조선-대한제국이 망했다는 왕실재정 망국론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한국사학계의 대응은 사실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는데요. 대한제국시기 황실재정의 규모가 큰 것을 일제의 압력 때문에 일제의 견제를 받는 정부재정을 키울 수 없었다는 것이 반론의 대부분이었고, 심지어 황실재정이 독립운동에 쓰였다는 근거를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정작 황실재정의 근간이 되는 조선시대 왕실재정에 대한 논의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죠. 낙성대 경제연구소에서 19세기 왕실재정을 주제로 박사논문까지 배출한 것과는 사뭇 대조되는 현실입니다. 대한제국의 황실재정의 근간이 되는 조선시대의 왕실재정 성격을 제대로 밝히지 못한다면, 우리는 ‘근대’도 ‘국가’도 ‘조선’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조선은 왕조국가입니다. 왕조국가는 두 가지 상반된 이상을 통해 유지됩니다. 일단 왕 아래 모든 백성을 평등하다는 일군만민(一君萬民)이라는 제한적 평등의 이상입니다. 또 하나는 국체(國體)를 상징하는 왕과 차후에 잠재적 왕위계승자가 되는 왕족, 그리고 왕과 혼인·혈연으로 얽혀 가장 충성을 마칠 수 있는 외적에 대한 우대의 이상입니다. 평등과 특권이라는 두가지 이상의 교차점에 바로 왕실재정이 있습니다. 조선은 왕실재정을 관리하는 내수사(內需司)를 이조(吏曹)의 속아문으로 두어 이를 공(公)적 영역에 두면서도 동시에 그 운영에 있어서는 사(私)적 성격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즉 왕실재정은 조선이라는 국가가 어떠한 나라인지 집약해서 보여주는 하나의 연구주제입니다.


 앞으로 왕실재정을 살펴보며 우리가 막연히 “아 흉년이 들어도 임금님은 잘 먹었겠지?” 혹은 “아 조선의 임금님들은 그래도 고통을 백성들과 나누려 햇으니 훌륭해” 라고 생각했던 것들의 실체를 정리해보며 조선이 과연 어떤 이상과 시스템으로 움직였던 나라였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