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5차

기나 긴 일본답사기 - 26일 교토 야마시나2 (카쥬지勧修寺)

同黎 2019. 5. 12. 04:45



택시를 타고 카쥬지로 갔다. 사실 기본요금 거리인데, 카쥬지라고 하니 잘 알아듣지 못한다.

카쥬지는 칸슈지, 칸쥬지라고도 읽을 수 있는데 절에서는 카쥬지로 불러줄 것을 요청해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데 절 근처 지명은 모두 칸슈지로 되어 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한테도

카쥬지라고 하면 잘 모르고 칸슈지라고 해야 알아듣는다.


카쥬지(勧修寺, 관수사)는 진언종 산계파(야마시나파)의 대본산으로 헤이안시대 초기 다이고천황이 생모

후지와라노 타네코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다이고천황은 타네코의 외조부 저택터에 자신의

삼촌 후지와라노 사다카타에게 명해 절을 짓고 자신의 외조부인 후지와라노 타카후지에게 카쥬지라는

시호를 내렸다. 본래 법상종이었으나 이후 진언종으로 바뀌었으며 대대로 친왕이 문적으로 부임하는

문적사원으로 황실 및 후지와라씨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었던 곳이다. 콘자쿠모노가타리에 여기서

타네코의 부친인 타카후지와 그 부인의 연애 얘기도 실려있다. 타카후지는 후지와라 북가의 귀족이고

그 부인은 야마시나 지역의 일개 대령(군수)에 불과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생겼다.

창건 이후 후지와라노 타카후지의 8대손이 도지와 도다이지의 관장을 모두 역임하는 과정에서 진언종

오노파에게 밀교를 배워서 야마시나파라는 일파를 이루게 된다. 남북조시대에 고후시미천황의 아들이 문적

으로 부임한 이래 비구인 법친왕 대신 결혼한 뉴도친왕이 문적으로 부임하였으며 광대한 사령을 거느리고

18개 자원을 운영했다. 그러나 오닌의 난 당시 사찰이 전소되었다. 또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후시미와

교토를 잇는 가도를 만들며 경내지 일부를 아예 없애버렸다. 이후 에도시대에 레이겐천황의 황자가 다시

법친왕으로 부임하였고, 이 법친왕이 도다이지 재건에 공을 세우면서 사령이 어느 정도 복구되고 이후

레이겐천황, 메이쇼천황의 후원을 받아 건물로 재건한다. 이후 키슈번 출신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무네의

정실이 법친왕의 숙모였던 인연으로 키이노쿠니(와카야마현)에 100여개의 말사를 거느리게 되었다.

메이지유신 이후 진언종 각파가 독립할 때 산계파라는 이름으로 독립하였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두 번째이다



현관의 모습


산문


안내문


내부로 들어간다


여름에는 연꽃이 워낙 유명한 곳이라 유명한데 가을에 오니 한산하다.


신전

메이쇼천황이 쓰던 건물을 하사한 것


사자레이시

작은 돌이 모여 바위가 된 것

기미가요에 등장해서 이런 돌을 좋아한다.


신전


에도시대


안내판


메이쇼천황의 이름을 따서 명정전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돌아간다


신전 뒷면


서원은 중요문화재인데 안 보인다.


처진 소나무


크다


이렇게 큰 건 처음이다.


가운데 줄기


뒤로 보이는 관음당


가운데 있는 카쥬지형 등롱


미토번 2대 도쿠가와 미츠쿠니가 헌납한 것이라고 한다.


관음당


전경



진짜 조용하다

우리 밖에 없다


석등 둘러보고


연못 방향으로 간다.


본당


레이겐천황이 내린 건물로 안에는 본존 천수관음을 모신다는데

평소 비공개이다


관음당


근대에 다시 지은 건물이다.


관음당 내부


근대에 만든 불상이다.


연못


헤이안시대에 만들어진 연못으로 빙실지라고 한다.


과거에는 이 곳에서 궁중에 얼음을 헌납했다고 한다.


가을에 핀 벚꽃


신기하구만


서원과 신전


연못 가운데의 산


집선도라는 섬이다


연꽃이 다 죽어있구만


빙실지에 대한 안내문


집선도


가을에는 황량해서 올 곳이 못 된다.



정원은 교토시지정명승이다.


잠시 허탈하게 보는 중


뭐 그래


연못을 따라 걷는 중


꽃이 피어 있는데 잘 안 나왔다.


오리가 있다

역시 잘 안 보이는


케이한선을 타러 돌아왔다.

철도 무스메


야마시나에서 오늘 일정을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