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5차

기나 긴 일본답사기 - 27일 나가오카쿄 (오토쿠니데라乙訓寺)

同黎 2019. 5. 19. 22:09



이제 다시 한큐선을 타고


나가오카텐진역에 하차


전에 못 본 오토쿠니데라를 다시 보러간다.


역사 밖

그래도 급행도 서는 역인데 한산하다.


식사를 간단히 하고 간다.

역 근처 중국집


제법 맛있다


행인두부

왠만해서는 화학약품 맛이 나서 안 먹는데 이곳은 제법 맛있다.


간판도 하나 찍어 준다.


나가오카쿄에 또 올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토쿠니데라는 대중교통이 불편해서 택시를 탄다.


주택가 한가운데 있는 절


안쪽으로 들어간다


산문이 보인다

표문인 남문. 에도시대 건물로 나가오카시지정문화재


2번째이지만 실제 배관은 처음이나 마찬가지



오토쿠니데라(乙訓寺, 을훈사)는 진언종 풍산파 사찰로 아스카시대 창건된 오래된 사찰이다. 오토쿠니라는

이름은 과거 이 지역의 지역명이기도 하다. 전승에 따르면 스이코천황의 명으로 쇼토쿠태자가 창건했다고

한다. 이것이 정확이 맞는지는 알 수 없으나 발굴조사 결과 실제 아스카시대 유물이 출토되었고, 건물의

크기가 호류지와 마찬가지로 고구려의 자라고 알려진 고려척을 기준으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칸무천황이 수도를 나가오카쿄로 옮기면서 대규모로 확대되었다. 또 나가오카쿄 천도의 담당자였던

후지와라노 타네츠구의 암살을 꾸민 혐의로 칸무천황이 친동생이자 황태제였던 사와라친왕을 체포해 가둔

곳이기도 하다. 이후 홍법대사 구카이가 일시 머물면서 진언종 사찰이 되었고 구카이가 별당에 취임하기도

한다. 이후 우다천황이 양위 후 출가하여 이곳에 행궁을 설치하였고 탑두사찰이 10개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남북조시대에 남조의 편을 들었다가 아시카가 요시미츠에 의해 승려들이 추방당하고 난젠지에

하사되어 일시 선종 사찰이 되었고 이후 오다 노부나가의 병화로 사찰이 폐사되었다. 이후 에도시대

5대 쇼군 츠나요시의 후원으로 복구되어 지금에 이르렀으나 메이지시대 이후 대부분의 영지를 빼앗기고

탑두 터는 학교가 되어 지금은 작은 사찰이 되었다. 평소 배관료가 없고 모란이 유명해 축제 때는

배관료를 받으며, 중요문화재인 비사문천상을 보려면 미리 연락해 예약을 해야 한다.


산문을 통과


안내판

전에는 점심시간에 와서 아무도 없어 그냥 돌아갔지


경내


모란이 없을 때는 이렇게 휑한 느낌이다.


가운데 석탑


지장당


오래되지는 않은 건물이다.


지장당 내부


안에 모셔진 지장보살상


제 때 것인지는 모르겠다.


나가오카쿄 안내문


사와라친왕에 대한 안내문

이 때의 암살 모의는 모함이라는 것이 일반적이고 나중에 스토쿠천황 등과 함께 복호된다.


사와라친왕 공양탑


모란 화단


종루


시지정문화재


종은 에도시대 것 같다.


안내문


경내 전경


중요문화재 안내판이 서 있으나 건물 중 중요문화재는 없다.


지장당


본당

시지정문화재

관음보살상을 본존으로 모시고 있다.


안내판


내부


관음보살은 비불이다


십일면관음


부동명왕


따로 들어가 배관하는 중요문화재 비사문천상


헤이안시대 만들어진 불상으로 대중적인 신앙을 모으는 불상이다.

배관료는 별도 100엔


다시 본당 뒤로 나온다.


작은 신사


전경


진수사인 하치만사


시지정문화재


안내판


에도시대의 건물이다


이제


절을 나선다


다시 택시를 타고 역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