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6차

일본횡단기 - 8일 츠루가1 (조구신사常宮神社)

同黎 2020. 3. 7. 00:52



오늘은 츠루가로 간다.

쓰루가로 더 잘 알려져 있으나 현지 발음은 츠루가에 더 가까운지라... 쯔루가가 젤 맞겠지만


또 새벽같이 출발


오늘이 주말인데 역시 CA가는 학생들이 많다.


오사카역으로 간다


오사카역


바로 카나자와행을 탄다.


이쪽 경로는 처음이다.


선더버드에 탑승


한 시간 반이면 츠루가에 꽂아준다.


비와호 북쪽으로 달리는 열차


비와호가 보인다


신오사카와 다카츠키를 빼면 교토에서 바로 츠루가로 간다.


츠루가역 도착

드디어 후쿠이현을 밟는다.


열차 시간표

시마네현도 그렇고 동해 방면은 정말 열차가 적다.


넌 뭐니

공룡?


내려가는 길

여기서 오바마선이 갈라진다.

오늘은 오바마도 갈 예정


여 하고 손을 흔드는 듯한 저 동상은 신라의 왕자라는 천일창


『고사기』와 『일본서기』에는 천일창과 관련된 설화가 남아 있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천일창은

신라의 왕자라고 하며 일본 11대 스이닌천황 당시 많은 보물을 가지고 일본에 귀화했다고 한다.

천일창이 밝히길 자신의 신라국의 장남인데 일본에 성황(聖皇)이 있다는 말을 듣고 동생에게

나라를 넘기고 귀화하기로 결심했다고 하며 이후 지금의 고베 지역으로 배를 타고 들어왔다.

이후 스이닌천황은 그를 받아들이고 스스로 영지를 정하도록 하였고 천일창은 이후 지금의

비와호를 거쳐 북상해 후쿠이현 동부~효고현 북부에 이르는 지역을 영지로 삼았으며

그 후손 중에는 신공황후도 있다고 전한다.


반면 『고사기』에는 신라의 왕자로 붉은 옥에서 태어난 여인을 부인으로 삼고 총애했으나 이후

그녀를 박대하자 아내가 부모의 나라로 돌아간다는 말을 남기며 배를 타고 나니와(지금의 오사카)

로 돌아가버렸고, 그는 반성하며 아내를 찾기 위해 나니와로 왔는데 세토 내해의 신들이 방해하여

동해를 거쳐 지금의 츠루가에 상륙하였고 이곳에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너무 다른 이야기다.

여기서는 『일본서기』에 제시한 신라-세토내해-효고 상륙-츠루가까지 육로 상경이라는 루트 대신

신라-동해를 거쳐 츠루가 인근에 바로 상륙이라는 해로 루트를 제시한다. 이러한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현재의 학자들은 천일창이 개인이 아니라 신라계 도래인 집단을 대표하며 그 집단의

신이라는 점, 천일창 신화가 일본 건국 신화 중 일부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후

츠루가 일대의 신사는 천일창의 후손인 주로 신공황후와 관련되었다는 역사를 내세우고 있다.


츠루가역


오늘 가려는 조구신사는 츠루가반도에 있는데 버스 시간표가 절망적이다.

하루에 왕복 3편, 그마저 새벽 아니면 퇴근시간 위주

결국 미리 택시를 예약해뒀다.


옛날 열차 기념표


미리 예약한 택시를 만나 조구신사로 간다.


20분 정도 가니


츠루가반도에서 펼쳐지는 푸른 바다가 보인다.


맑다.

하지만 바로 옆에 원전이 가동 중이다.


드디어 도착

신사 앞바다가 시리다.


국보 조선종이라는 표석

우리가 여긴 온 것은 일본 국보로 지정된 신라종을 보기 위함이다.


조구신사(常宮神社, 상궁신사) 매우 오래된 신사이다. 인근의 큰 신사인 케히신궁과 짝을 이루었기

때문에 케히신궁의 오쿠미야, 혹은 상사로도 신앙되지만 사실 모시는 신은 크게 관련이 없다. 전승에 따르면 신공황후가 주아이천황과 케히신궁을 경배하고 삼한정벌의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출정하였으며 이때 신탁을 받아 이곳에 신사를 세우면 풍파가 없고 고요할 것이라고 했다고. 한편 이곳은 고대 항구가 있던 곳으로 특히 츠루가항에 풍파가 일면 이곳에 임시로 대피했다고 한다. 그래서 신사가 생겼을 것이라고 한다. 신라계의 영향이 강하지만 백제 멸망이후 신공황후의 이야기가 덧씌워지고 이후 하치만신앙이 퍼지면서 신공황후 등등이 합사된 것으로 보인다.


제신은 아메노야오요루즈히메노미코토(天八百萬比咩命)라는 신인데 신화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지역신이다. 실체도 미상. 그리고 신공황후와 주아이천황이 본전에 합사되어 있다. 특이하게 본전

사방에 4개의 건물이 더 있는데 각각 아마토타케루, 오진천황, 타마히메(신공황후의 동생),

타케노우치 스쿠네를 모시고 있다. 현재 건물은 에도시대에 재건한 것이다.


들어가자


조구신사 현판


표석


참 오기까지 힘들었다.

일본 위키에 신라종이 한국의 반환 요구에 따라 비공개가 되었다고 했는데,

전화해보니 왠걸 그냥 공개한단다. 예약을 기본으로 하되 부탁하면 그냥 가도 보여주는 모양


옆으로 보이는 바다


경내로 들어간다


작은 개울이 흐른다.


작은 폭포도 있다.


등롱이 늘어선 길


에비스가 앉아 있다.


풍어의 신이니


신사 입구에 있는 정자


밖으로 바다가 보인다.

날이 정말 좋다.


방파제


츠루가만 안쪽이라 잔잔하다.


가장 안쪽의 도리이


내부로 들어가자


상지궁이라는 현판


중문이 보인다


당문 형식의 중문

후쿠이현지정문화재이다.


들어가는 길에 마츠오 바쇼가 들려 노래했다는 조개껍데기가 있다.


아주 조그만 조개

재첩같이 생겼네


마음대로 가져가라는 모과


배전과 본전이 나온다.

역시 현 지정문화재


종을 찾는데 어수선하게 공사 중이다.


사무소에 가서 종을 보러 예약했다고 하니 보물관을 열어준다.

배관료는 200엔


드디어 만난 국보 신라종


과거 츠루가를 다스렸던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 오타니 요시츠구(大谷吉継)가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서 가져왔으며 이후 삼한을 정벌한 신공황후를 기리기 위해 바쳤다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이 설과는 별도로 그 이전인 13~14세기에 왜구에 의해 노략되어 신사에 바쳐졌다는 설도 있다.


다만 ‘太和七年三月日菁州蓮池寺鍾成’이라는 명문은 확연하게 보이는데 이를 통해 이 종이 833년

진주 연지사에서 조성되었던 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크기는 높이 112cm, 구경 66cm로

상원사 동종 등에 비하면 큰 편은 아니다. 일본에는 총 5개의 신라종이 완형으로 남아있는데

그 중 가장 크고 오래된 종이다. 물론 폐불훼석 당시 파종되거나 사라진 종이 더 있다.


전반적으로 정교함이나 세밀함은 상원상 동종에 비하면 밀리는 감이 있다. 물론 상원사 종은 한국에서도 수위에 손꼽히는 종이니 비교대상이 되긴 어렵다. 다만 전반적인 느낌은  청주 운천동

동종과 상당히 비슷한 느낌이었다. 학계에서는 비천상의 표현 등에서 성덕대왕신종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종신의 상대와 하대, 연곽 곳곳에 연화문, 파도문, 격자문,

보상화문이 새겨져 있는데 이것 역시 흔치 않은 경우고 특히 파도문양이 종신에 보이는 건

처음이라고 한다. 용뉴의 훼손이 심하지만 음통이 분명하게 보이고 음통은 대나무 형태이다.

다만 한국의 신라종보다는 시대가 다소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역시 신라종의 정수라고까지

하기에는 조금의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하지만 한국에 9세기 종이 거의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 정도 크기와 시대의 종이 명문까지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사람과의 크게 비교

그렇게 크지는 않다.


비천상


안내문

사진엽서도 하나씩 샀다.


건조물 안내

모모야마시대 오타니 요시츠구가 세우고,

다시 유키 히데야스가 재건한 것을 18세기 또 다시 재건한 것이다.

 

배전으로 간다


비교적 정교한데


중요문화재도 가능할 것 같다.


사방에 있는 섭사

동전궁


서전궁


총사궁


평천궁


작은 섭말사들


섭말사까지 연희식에 올라가있다.


본전 측면


배전


반대편 섭말사들


전반적으로 기기신화에 안 나오는 신들이 많다.


반대편 본전면


역시 조각이 예사롭지 않다.


화려한 조각


중요문화재로 해도 될 것 같은데


배전 정면


여기도 나름 섬세하다.


신을 모신 곳


향배


배전에서 바라본 중문


밖으로 나간다


다시 보이는 바다


좋다. 이제 다음 장소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