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무료한 103-230

아름다운 집

同黎 2012. 12. 7. 02:43

아름다운 집 

*손석춘의 소설 『아름다운 집』에서 차용했습니다.


사람이 경제적으로 독립을 하고 사회를 살아가면서 가슴속에 품게 되는 소망 중 하나는 자신의 집을 갖는 것이다. 그것이 피곤한 몸을 뉘일 곳이든, 가족이 모여 살 수 있는 곳이든, 혹은 경제적 투자와 투기의 대상을 겸하고 있든 간에 집이라는 것은 모두가 원하는 물리적 공간이라는 점에서는 다름이 없을 것이다. 나도 비록 경제력과는 거리가 먼 길을 걷고 있지만 나만의 집을 그리고 꿈꾸는 것은 남들과 다를 바 없다.


지금 살고 있는 잠실의 집은 크고 편하기는 하지만 정을 붙이고 살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전에 살던 구로동의 집처럼 주변에 친구가 많은 것도 아니고, 적당히 갈만한 술집이나 찻집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과 부대끼길 좋아하는 나로서는 잠실로의 이사가 곧 절반의 고립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잠실로 이사한 후 학교에서 집에 오는 동선이 바뀌면서 자주 가던 인사동, 관훈동, 사직동, 삼청동, 명륜동 등지의 단골집도 자연히 멀어지게 되었고, 친구라도 만나려면 큰 결심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본래 아파트만 가득한 서울의 강남보다는 강북지역의 골목길을 더 좋아하는 나로서는 당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혼자 지내게 될수록 나만의 ‘아름다운 집’에 대한 소망은 더욱 깊어졌다. 아직 집을 살 수 있는 경제적 여건을 갖추지는 못하였지만, 머릿속으로는 이미 주춧돌과 기단을 쌓고 기둥과 들보, 도리를 엮어 지붕을 올린 지 오래이다. 아직 이룰 수 없는 꿈을 글로나마 풀어내어 아직 오지 않은 날의 소망을 달랜다.


집이 들어선 동네는 창신동, 숭인동이 제일 좋고, 신설동, 돈암동이 적당하며 보문동과 용두동도 괜찮다. 안암동과 제기동은 너무 오래 머물렀던 동네이고 학교와 너무 가까워 휴식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위에서 언급한 동네들은 모두 아직은 개발의 광풍에서 어느 정도 비껴서있고 옛 서울의 정취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골목마다 대포집이 있고 도깨비 시장이 서는 곳이다. 게다가 모두 조선 말에서 식민지시기 사이에 지어진 서울 한옥들이 빼곡이 남아 있어 적당한 집을 고르기 적당하다. 한옥으로는 이른바 북촌이나 서촌이 유명하지만 과연 수 십억에서 수 백억을 주어야 하는 그 집들이 한옥으로서의 가치를 하는지 의문이다.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대문을 꼭꼭 닫은 집들이 무슨 한옥이란 말인가?


창신동과 숭인동을 제일로 치는 까닭은 동네가 야트마한 낙산에 기대어 있고, 종로통으로 가는 큰 길에 바로 곁이라 교통이 편리하며, 청계천에서 옮겨온 헌책방들이 바로 곁에 있기 때문이다. 신설동은 앞서 말한 두 동네보다는 못하지만 교통이 편리하며, 돈암동은 성북천을 끼고 있어 제법 정취가 있고 돈암시장이 있어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보문동은 학교와 너무 가깝다는 흠이 있으나 조용하고 좋은 한옥이 많이 남아 있으며, 용두동은 신설동보다 교통이 불편하지만 역시 그런대로 살 만한 동네이다. 모두 서울에서 집값이 낮기로 유명한 동네이다.


한옥을 고집하는 이유는 사실 나의 ‘아름다운 집’에 모델이 있기 때문이다. 창신동에 위치한 유가협(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의 사무실이자 전태일 기념관, 이소선 어머님이 사시던 한울삶이 바로 그 모델이다. 아마 창신동이나 숭인동을 가장 살고 싶은 동네로 꼽은 것도 그 영향이 클 것이다. 흔한 서울의 도시한옥을 고쳐서 벽에는 황토벽돌을 쌓고, 가운데 마당엔 작은 정원을 두었던 그 집은 집 자체가 지니고 있는 무게와 더불어 학부 1학년생에게는 너무나 경이롭게 다가왔다. 그 후로는 쭉 한옥이 나의 집으로 머리 한 켠에 자리잡았다.


보통 서울의 도시형 한옥은 입 구(口)자로 지어져 대문채와 살림채의 구분이 없다. 성북동에 있는 큰 한옥들이야 세도가의 당당한 집으로 고대광실에 별당과 정자까지 있지만 대부분의 한옥은 효율적으로 공간을 활용하기 위하여 가운데 마당을 두고 사방을 건물로 둘러쌓았다. 대문채와 살림채가 따로 있는 집을 구하면야 다행이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차라리 붙어 있는 한옥 두 채를 사서 이어버리는 편이 나을 것이다. 웬 사치냐고 뭐라하는 이가 있을 지도 모르지만 성북동이나 가회동의 한옥 값을 생각한다면 이편이 훨씬 헐하다.


집 두 채를 이어버린다는 무리를 하려하는 까닭은 대청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정원이 있어도 그 정원을 보기 위한 대청이 없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넓은 마루 대청은 서울 도시형 한옥에서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넓은 공간이다. 방이 아무리 많아도 트인 곳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 마루 대청을 두고 안쪽에는 유리창호를 바깥쪽에는 창호지 바른 들창을 두면 요령껏 쓰기도 편할 것이다. 겨울을 대비해 곤로나 일본식 화로를 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대청에서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손님을 맞이하고 정원을 보아야 한옥에 사는 의미가 있다.


내가 사는 집에 반드시 필요한 방은 2개면 충분하다. 하나는 침실이고 하나는 서재이다. 대청을 사이에 두고 좌우에 각각 두면 좋을 것이다. 침실에는 침대를 둔다. 이미 서양식 생활에 익숙해져있기 때문이다. 침실에 별다른 건 둘 필요가 없지만 협탁 하나와 앉은뱅이 책상 하나를 두고 소설을 읽을 때 쓴다. 마당을 향한 벽면을 헐어 대청처럼 유리창호와 들창을 둔다. 다만 마당 쪽으로 쪽마루를 내고 창문턱을 두지 않아서 봄 가을로는 방을 넓게 쓸 수 있게 한다.


집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는 것은 서재 겸 공부방이다. 방 두칸을 연결해도 좋다. 사방에는 책장을 둘러서 책을 보관한다. 출입문과 창문을 제외한 모든 곳에는 책장을 두고 방 가운데에는 넓찍한 책상 2개와과 의자를 둔다. 책상 아래는 발받침을 둔다. 책상은 ㄱ자로 배치하고 정면에는 독서대 여러개를, 측면에는 컴퓨터를 준다. 책상은 입식이지만 문과 책상 사이의 공간에는 좌식 탁자와 자리를 두고, 방 한켠에는 쪽잠을 잘 수 있는 곳을 만들어 둔다.


안마당에는 자갈을 깔고 오동나무와 단풍나무, 대나무, 소나무를 심는다. 명아주도 한·두주 심는다. 연못은 둘 수 없으니 바닥에 관정을 뚫고 물이 솟아나게 하여 솟아난 물을 대나무 통을 통해 흘러나오게 하면 좋겠다. 솟아나온 물은 돌 석조에 고이고 넘쳐서 마당 바닥을 돌아 다른 석조에 흘러가고 넘치면 집 밖으로 내보낸다. 물고기는 키우지 않는다. 나무가 자라는 부분만 잔디를 키우면 좋을 것이다. 대문 주변에는 회화나무를 두고 싶다.


내가 방 두 어칸을 쓰면 나머지 방 한 칸은 창고로 쓰고, 나머지 살림채나 집과 이은 다른 한옥의 방은 세를 주고 싶다. 세를 준다고 무얼 많이 얻고 싶은 것은 아니다. 무얼 많이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관리비야 알아서 내고, 보증금도 왜 받는지 모르겠고 그 외 방 하나에 10만원정도만 받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 그 돈으로 책 좀 사보게. 세를 준다 해도 아무나 주는 것은 아니고 지방서 올라오거나 고단한 연구자들에게 주고 싶다. 그러면 서재도 같이 쓸 수 있고, 무엇보다도 작은 연구자 공동체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소망이다. 각자 공부하다가 저녁에 집에 돌아와 대청에서 혹은 마당에서 술 한잔 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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