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무료한 103-230

同黎 2013. 4. 24. 03:30

봄비가 내려서 온 세상이 뿌옇게 흐려졌다.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데 창 밖 가로등의 불빛이 비에 막혀 반은 망막에 닿고 반은 세상으로 흩어진다. 안개비를 헤치고 집으로 돌아와 방문을 닫고 향불을 태운다.


향은 유교와 불교 의식에서 모두 올리는 것이지만 의미가 사뭇 다르다. 유교에서 향의 연기는 신이 내려오는 길이다. 향의 연기는 중력을 거슬러 하늘에 닿는다. 그 연기를 타고 신이 내려오는 것이다. 그래서 유교에서는 향을 함부로 태우지도 않고 또 그 향기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불교에서 올리는 향은 다르다. 향은 등, 꽃, 정수, 곡식과 함께 부처님께 올리는 다섯가지 아름다운 공양 중 하나이다. 향불은 연기를 남기고 연기는 향과 함께 공중에 퍼진다. 향은 실체가 없지만 동시에 공간을 가득 채우는 힘을 가졌다. 텅 빈 공간을 아름다운 향기로 가득 채우는 그 덕을 사랑해서 부처님께 바치는 것이다.


선을 할 때도 향을 피운다. 눈을 감고 좌선에 들어가면 색, 성, 향, 미, 촉, 법의 육감을 모두 닫고 오로지 화두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자의와 타의로 눈, 귀, 입, 몸은 닫을 수 있지만 후각만은 마음대로 하기 어렵다. 오감 중의 하나만 흐트러져도 뜻을 바룰 수 없는 것이다. 호흡을 하기 때문이다. 향은 향기로 세상의 모든 냄새를 지우고 참선자가 오로지 화두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가끔 향을 피우고 그 효과를 바라는 것이다.


오늘처럼 마음이 복잡하고 심난한 날에는 가끔 모든 것을 지우고 편안해지기 위해서 향을 피운다. 그러나 무엇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우기 위해서 피우는 향에 효험을 바란다는 것은 애초에 그른 일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불성을 깨우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허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눈을 감아도 적멸 대신 회한만이 스치운다. 이것을 글로 풀 수밖에 없는 것도 글쟁이의 숙명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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