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무료한 103-230

기억

同黎 2013. 4. 20. 02:43


가끔씩 숨이 막힐 때가 있었다. 문장이 필요했다. 그럴 때면 학교 바로 밖에 있는 동방서적에 달려갔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 2번째 줄에 있는 서가의 중간 쯤 되는 칸을 뒤졌다. 거기에는 시집이 있었다.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한테 5000원 남짓한 시집은 밥 한끼 값으로 누릴 수 있는 몇 안되는 호사였다. 실천문학사,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사, 민음사, 미래사에서 나온 한국 대표 시인 100인선... 출판사 별로 꽂혀있는 시집들 사이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찾지 못하면 시인을 찾았다. 김남주, 함민복, 박노해, 박영근, 김용택, 도종환, 신경림, 이용악, 이성부, 이문재, 정호승, 한하운, 브레히트, 엘뤼아르, 네루다... 때로 운이 좋아 쿠폰을 많이 모으면 작은 시집 하나 정도는 손 쉽게 가질 수 있었다.


지금은 동방서적도 사라지고, 매년 나오기를 기다리던 이상문학상 작품집도 언제부터인가 사지 않게 되었지만 가끔 치밀어 오르는 문장을 읽고 싶다는 욕망을 참을 수가 없어진다. 그럴 때면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지만 그것이 나의 목마름을 채워주지는 못한다.  수백년 전의 사람들이 쏟아 놓는 가시 돋힌 말들 사이에서 가끔은 쉬고 싶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변명만 계속 할뿐이다. 지금은 강제로 상자에 갖혀서 지하 창고에 가 있을 시집과 그 시인들은 언제 다시 빛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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