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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대 초반의 정국과 탕평책의 추이 (정만조,『진단학보』56, 1983) 토론문

同黎 2012. 12. 30. 01:35

영조대 초반의 정국과 탕평책의 추이 (정만조,진단학보56, 1983)

토론문

 

정만조의 본고는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붕당정치의 원리가 차츰 붕괴되고 19세기 세도정치로 향하는 가운데 18세기 탕평책의 시작인 영조대의 정치사를 밝힘으로써 탕평정치의 실제를 분석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가장 큰 의문은 준론과 완론이라는, 기존의 붕당질서를 벗어난 세력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었는가 이다. 특히 완론은 의리보다는 정국의 안정을 위한 조제보합에 치중하고 완론의 일부 인사는 공론이나 공의 자체에 비판적인 의견을 가지기도 하는데, 이러한 현상은 어떠한 원인에 기반하고 있는지 본고는 잘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당색에 우선하는 준론과 완론의 형성은 왕에게 부합하여 권력을 얻으려는 자와 그에 반대하는 자인가 아니면 경세론과 관련되어 있는가? 그리고 기존의 붕당정치론에 따르면 과연 어떻게 이러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가?

 

탕평파의 목적은 과연 탕평의 완성이었을까? 탕평파의 등장은 극심한 대립으로 인해 노·소론의 공립할 수 없는 상황을 추스르기 위한 것이지 붕당 자체를 파하거나 정국을 왕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한 것은 아닐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척신이 되면서 왕권과 일정 부분 이해관계를 같이 할 것이나, 기존 연구결과의 설명대로라면 결국 국왕을 정치에서 배제하는 세도정치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결국 탕평파는 하나의 새로운 붕당이 되었고 정조에 의하여 제거 당했다. 그렇다면 영조의 탕평은 결국 실패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