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논문

정병욱, 2009, 「자소작농 김영배, ‘미친생각’이 뱃속에서 나온다」, 『역사비평』87

同黎 2014. 11. 4. 02:36

정병욱, 2009, 「자소작농 김영배, ‘미친생각’이 뱃속에서 나온다」, 『역사비평』87


조석후기 박사2

박세연


식민지배 하에서 민중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생활했을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식민 지배의 억압에 신음하는 민중과 일제에 영합하는 일부 친일파라는 간단한 공식을 만들 수 있겠지만 과연 그렇게 사람들이 단순할까? 친일 논쟁에서 독립운동을 한 몇몇을 빼고는 국민 천체가 친일파였다는 식의 논리는 제국주의 부역 혐의를 물타기 하려는데 지나지 않지만, 실제 생활인이었던 민중 다수에게 엄격한 항일·민족자주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 또한 옳지 않다.


중요한 것은 식민지 정권이 조선의 민중들을 통제·관리하는 방식으로 어떤 것을 선택하였으며 또 그것이 실제로 민중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이다. 또한 그 통지의 영역 아래 새롭게 일본에서 이식된 (근대적 혹은 제국주의적) 제도와 정책, 기존까지 남아 있던 유교적 질서, 향촌 사회 내부의 알력, 경제적 소득과 그 차이에서 오는 불만 등이 복잡한 층위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안된다.


이 논문의 필자인 정병욱은 일제 통치하에서 적성된 자소작농 김영배에 대한 경찰의 조사기록과 현재 해당 지역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구술자료라는 작성 시기와 주체가 정반대되는 사료를 토대로 1930년대 후반 일제의 식민 통치가 실제로 민중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고, 또 그들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살았는지 복원하려고 하였다. 또한 서술에 있어서 기존의 방식을 답습하지 않고 마치 소설을 풀어나가듯이 자료로부터 김영배라는 인물을 불러내고 있다.


이 논문의 주인공인 김영배는 전통적인 집성촌에 살고 있는 젊은이이다. 그는 적지 않은 규모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으나 이는 선대에 비하여 절반 가량 축소된 것이었고, 7인 가족을 부양하기는 부족했기 때문에 同姓인 마을 지주의 땅을 소작 붙여야 했으며 경제적 성취를 꿈꾸고 있었다. 그는 어느 정도 교육을 받았으나 중간에 학업을 그만두어야 했던 것 때문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돌아다니길 좋아했고 여러 소식에 밝았던 그는 또 자신의 사랑방에 모여들던 동년배의 동네 청년들에게 이것저것 이야기하길 좋아했다. 이러한 수다에는 여러 정보에 대한 공유의 의미도 있었지만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만도 있었다. 결국 사랑방에서의 말이 화가 되어 김영배는 경찰에 구금되고 징역형에 처해지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 글의 특징은 먼저 입체적인 문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김영배의 자료가 국가보훈처에 의해 심사를 받는다고 가정해보자. 국가에 의해 판단되는 김영배의 모습은 그가 친일을 했는가 아니면 독립유공자인가, 또한 독립운동을 했을지라도 현재의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배치되는가 정도일 것이다. 그 결과 나오는 공훈증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김영배의 모습은 한정적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일제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서 막연히 생각하는 모습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 논문의 필자는 김영배라는 인물을 친일/반일의 테두리에 가두지 않는다. 그 안에서 김영배가 반일적인 언사를 하게 된 배경들이 들어난다. 동족마을 공동체라는 호혜적 공동체 안에서 보이는 경제적 불평등의 그림자, 그리고 일본의 경찰 권력과 결탁한 마을의 지배층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김영배는 안중근이나 유관순 같은 대단한 영웅은 아니었으나 우리는 그에게 닥쳤던 사건을 통해서 당시를 살았던 민중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다. 식민지 권력은 자신들의 의도대로 농촌 공동체를 통제하기 위해 많은 정책을 동원했지만 그것이 민중들에게 효과적으로 침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민중들에 의해 적절히 이용당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식민지 권력(행정권력)과 공동체 권력(자치권력)의 이중 구조 안에서는 불만을 가진 민중들 역시 존재했다. 그리고 그것이 봉기가 될 수도 있고 단지 하나의 수다로 그칠 수도 있다.


두 번째는 사료를 이용한 인물의 입체적 복원이다. 이 논문은 많은 면에서 카를로 진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와 공통점을 지닌다. 『치즈와 구더기』은 지배층이 작성한 재판 기록으로부터 메노키오라는 인물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진즈부르그는 관찬사료의 언어를 따라가지 않고 독자적인 해석과 인용을 통해서 메노키오라는 인물을 재구성한다. 이 논문 역시 일제의 경찰 조사기록에서 김영배라는 인물을 불러일으킨다. 필자는 사료 비판과 부분적 인용을 통해 김영배의 성격과 그가 처한 상황, 그리고 그가 살던 마을의 상황을 복원한다. 더 나아가 아직 생존해있던 마을 사람들의 구술을 통해 마을 안의 권력관계와 그 가운데에서 김영배가 처해있던 위치를 복원하려고 노력한다.


세 번째는 소설적인 서술 방식이다. 민중의 의식과 행동은 근대적인 아카데미식의 글쓰기로는 오히려 서술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합리주의라는 언어에 기초한 지금의 학문적 글쓰기 방식은 다원적이고 다변적인 민중의 생각을 표현하는데 오히려 모순적이다. 따라서 주인공의 생각 변화와 행동을 묘사하는 데에는 오히려 문학적 글쓰기가 적합할 수도 있다. 필자는 소설식 구성을 채용하여 김영배 사건을 묘사하고 있으며 중간 중간의 사료 인용 역시 마치 대화를 그대로 옳겨 놓은 듯이 재구성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보다 편하게 김영배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온정이나 사랑 등 인간의 기본적 감정까지 언급하는 대중서가 아닌 학술논문에서의 이러한 대담한 시도는 매우 흥미롭다.


필자의 시대관이나 현실인식은 비교적 명확하게 보인다. 식민지 권력의 의도가 관철되지 않는 독자적 민중의 세계가 있다. 그 안에서 오가는 이야기는 때로는 불온해보이고 때로는 매우 수세적이다. 분명한 것은 원래 그러한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김영배가 경찰서 조사에서 보인 태도와 재판 과정에서 보인 태도가 다르듯이 하나로 고정된 민중의 의식은 없다. 과거 혁명주체로서 파악되었던 민중은 필자의 논문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다만 현재의 불안과 빈곤은 어떤 사람은 낙담하게 만들고 어떤 사람은 불온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일제 식민지배 - 민중의식의 성장 - 봉기와 독립운동으로 이어지는 기존의 프레임을 이 논문은 말없이 비판하고 있다.


끝으로 한 가지 아쉬운 점을 언급하면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이 논문은 앞서 말 했듯이 아주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이지만 동시에 매우 읽기 어려운 글이다. 문학적 글쓰기가 가질 수 밖에 없는 약점은 주제를 하나로 모아주지 않는 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 글은 어떻게 보면 산만하기도 하고 필자의 문제의식을 한꺼번에 수렴해서 쉽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하나의 글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필자의 욕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논문이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민중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지금의 수준으로는 상당히 진보한 글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