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무료한 103-230

한국사대동반 후배들에게

同黎 2013. 5. 10. 00:40

한국사대동반 후배들에게

 

새벽에 적는다. 나는 참 못난 선배이다. 9년 동안이나 학교를 맴돌면서 만난 후배만 200명이 넘지만 고학번으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적은 거의 없고 후배들에게 신세지기 일쑤다. 가끔은 내가 보기도 한심해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한국사대동반이라는 낯선 공간에 들어왔을 너희가 저 늙은이를 봤을 때 얼마나 당황했을까?

다만 내가 한 가지 노력했던 것은 권위적인 사람이 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너희보다 나이가 많고 학교에 일찍 들어왔다는 이유로 꼰대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어떤 사람은 내가 골목대장 놀이에 심취했다고 하지만 나는 그저 쉬운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 선배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믿어 줄지는 모르겠지만.

너희에게 미안한 점이 너무나 많다. 한국사반은 약간 이상한 곳이다. 이상하다는 것이 나쁘나는 것과 등치되지는 않지만 너무나 빠르게 변하고 있는 세상에서 한국사반의 시간은 조금 느리게 가고 있다. 인문학을 하는 사람이 많아서, 혹은 운동의 기풍이 남아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다른 곳과는 조금 다르다. 그 공간을 살며 꾸려가는 너희는 얼마나 힘들까? 나만 뒤처지는 것이 아닐지, 혹은 이상한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이 아닌지 겁도 나고, 입학하기도 전에 잡혀있는 규칙과 관습에 불만도 있겠지. 하지만 사회에 나오게 되면 한국사대동반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따스했고 또 참을성 많은 곳이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 때 대학생활을 돌이켜보며 한 번 반생활도 생각해주렴.

개인적으로 미안한 점도 많다. 의외로 낯을 많이 가리기 때문에 마음을 쉽게 주지 않는다. 그리고 먼저 다가오는 사람이 아니면 마음을 잘 열지도 않는다. 그러다보니 몇몇 사람만 편애한다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가끔 고민하는 너희의 모습을 보며 정말 다가가서 위로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지만 처음에 깊은 관계를 가지지 못해서 그게 어려울 때도 있다. 내가 너희를 응원하고 있다는 것만은 알아주렴. 고민이 있거나 술을 마시고 싶으면 먼저 와서 문을 두두려워. 나는 의외로 쉬운 사람이다.

선배, 선배 하면서 대단한 도움을 주는 것처럼 하지만, 사실 나는 너희 덕분에 산다. 학부를 졸업하며 정리했던 고민을 너희 덕분에 다시 한다.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사회과학, 여성주의 서적이나 예전 커리도 너희 때문에 다시 꺼내본다. 학부시절 듣고 넘긴 수업 내용도 너희의 질문 덕분에 되새기게 된다. 그리고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요즘같이 내가 마음이 아픈 상태일 때 최고의 위로가 되고 우울한 생각을 할 겨를을 없애주는 것도 너희다. 요새는 너희 때문에 살고, 너희 덕분에 산다. 고맙다.

 흔히들 대학에서 평생 친구를 만나기 어렵다고 하지만, 나는 대학에서 만난 인간관계 때문에 얻은 것이 너무나 많다. 너희도 그러길 바란다. 서로 상처줄까봐 두려워하지 말고 서로의 삶에 마음껏 개입하자. 서로를 변하게 하고, 또 당신 때문에 내가 변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서로의 삶을 같이 만들어나가는 관계가 되도록 노력하자. 이제 학부에 적이 없어 내가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너희도 또 잊지못할 선배를 그리고 후배를 만들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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