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서평 요약

거자오광, 2012, 『이 중국에 거하라』, 글항아리 서평

同黎 2014. 5. 28. 23:01

어떤 중국에 거할 것인가?

거자오광, 2012, 『이 중국에 거하라』, 글항아리 서평

한국사학과 박사1

박세연

근대의 특징 중 하나로 이해되는 민족주의는 타자에 대한 대응의 산물맺다. 인간은 상대방을 통해 우리를 발견하며, 그렇게 발전한 국가 내지 공동체는 내부를 공고히하게 위해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를 발명하였다. 이 책의 저자인 거자오광은 이러한 민족주의의 특성에 주목하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민족주의가 태자화의 산물이라면 과연 민족주의는 근대만의 것일 수 있는가? 거자오광은 여기에 대하여 민족주의가 근대의 산물이라는 주장은 서양에만 국한된 것이며, 중국의 경우는 -더 나아가 한국과 일본의 경우- 이와 이미 더 오래전부터 민족주의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중국의 민족주의는 송대에 발명되었다. 즉 한·당의 중국과 그 주변이라는 인식이 송대에 들어 요·금 등의 외래민족과 동등한 입장에서 외교를 진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무너졌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때 기존의 천하=중원+사예라는 인식이 무너지고 최초의 근세적 의미의 한족 민족주의가 생겨났다. 한족 민족주의는 명대에 다시 한 번 강화되었다. 마테오 리치가 가져온 새로운 세계지도는 중원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한쪽 변방이며 또 일부라는 사실을 중국인들에게 알려주었다.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 아니라 여러 나라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전통적 화이관은 무너지게 되었다. 17세기 조선과 일본, 베트남 역시 이미 중국을 중화로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서구와는 달리 동아시아에서는 17세기에 이미 민족주의가 형성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중국은 서구가 진출하는 19세기 이전 이미 민족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따라서 전근대 중국이 제국이었다는 서구와 일본 학계의 시각을 잘못된 것이라고 저자는 비판한다.

중국와 한국, 일본은 제각기 독립적인 민족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때문에 저자는 일국사를 중심으로 한 역사 연구는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애초에 동양 혹은 아시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시아라는 공동체인식은 언제 형성되었을까? 그것은 일본의 제국주의 침탈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만철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탈아론과 흥아론을 동시에 제기하였다. 아시아와 동양의 발견은 지금까지의 중심인 중국을 해체하고, 중국을 조선, 티벳, 서역, 몽고, 만주 등 기존의 사예들과 동등한 위치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중국과 이들 변경을 병렬적으로 연결하여 새로운 상상의 공동체인 아시아를 만들고 이 아시아를 일본이 패자로서 주도하려고 한 것이다.

이렇듯 아시아는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상상의 공동체였고, 아시아라는 개념이 왜 형성되었는지 알지 못한 체 일국사가 아니라 아시아를 중심에 두는 새로운 역사관을 위험성을 지니기 마련이다. 저자는 아시아 각국 혹은 민족의 역사적 경험에 기초하여 일국사를 중심으로 한 역사 연구가 일체감․관념․상상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건설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기존의 서역을 중심으로 한 교류사 대신에 황해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관계사 연구를 제시하면서 글을 마치고 있다.

요컨대 역사상의 '변동하는 국가'로서의 중국과 문화적으로 상당히 '안정된 공동체'였던 중국 그리고 현실의 정치적 정체성을 지닌 국가인 중국을 구분하면서 역사를 서술할 때 중국은 중국이라는 일국사적 관점을 견지하는 것이 유효하다는 것이다.

서구에서 만든 근대 민족국가(국민국가)라는 틀을 비판하며 중국의 독자적인 역사를 서술하려는 거자오광의 이야기는 일견 서구중심적 역사 서술을 비판하며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살은 국가주의적이고 한족 중심적인 역사관을 유지하기 위한 변명에 불과하다. 근대에 특권을 부여하고 서구적 근대만을 진보로 여겼던 서구중심적 역사관은 동아시아의 역사 서술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그것은 자본주의와 민족주의 같은 근대적 요소들이 내재되어 있었다는 내재적 발전론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내셔널리즘을 기저에 두고 서술되었다. 거자오광의 역사관은 서구적 역사관을 받아들였던 동양의 역사관을 그대로 유지하는, 사실상 서구중심적 역사관의 변주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시대사 연구의 경우, 17세기 이후 발견되는 조선의 소중화주의를 민족주의의 형성으로 서술하였던 것에 대한 반성과 비판에 기반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명의 멸망에 따른 조선 사상계의 충격을 17세기의 중화회복의식과 18세기 이후의 중화계승의식으로 설명한 바 있다. 즉 전통적인 화이관을 그대로 유지하였던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그것이 민족국가의 형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는 점이다.

과연 송대 이후 중국은 민족국가를 형성했는가? 그렇다면 왜 오삼계는 산해관을 열었을까? 저자는 송대를 중심으로 민족국가를 형성을 서술했고, 명대 마테오 리치의 세계지도를 또다른 결정적 계기로 서술하고 있다. 한족 왕조와 북방 유목 왕조의 대립의 니콜라 디코스모에 의하면 거의 전시기에 걸쳐 있었던 사실 아닌가? 또한 민족국가라 하면 전체의 인민을 강력한 이데올로기로 묶여 내서 국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아주 즉 소수의 지식인만 보았을 마테오 리치의 세계지도가 과연 이러한 대중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이러한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거자오광이 가지는 또 하나의 문제는 철저히 한족 내지 중원의 입장으로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근대 중국을 제국이 아닌 민족국가로 보았을 때 생기는 매우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중국을 민족국가로 보았을 때 그 주인공은 누구인가? 당연히 한족이 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그 영토 안에 살았던 여러 민족들과, 그 민족들을 통치하기 위해 국가가 취했던 정책들은 역사 서술에서 삭제되기 마련이다. 저자는 변동하는 역사적 국가로서의 중국과 현실의 정치적 국가로서의 중국을 분리한다고 하며 이 문제를 피해가려고 하지만, 스스로 인정하고 있듯이 일국사 중심의 역사 서술에서 정치가 역사학에 미칠 영향은 지대한 것이기에 이러한 이상의 구분은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보인다.

역사상의 중국을 한족 중심의 민족국가로 보면서 전근대 마지막 300년을 다스렸던 청은 저자의 고찰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몇몇 저항들이 있었으나 청은 비교적 훌륭하게 이민족으로서 한족을 다스렸으며, 신장과 티벳을 중국의 판도에 포함시킨 제국이었다. 그러나 저자의 전형적인 서술과 청은 많은 면에서 배치되고 있다. 또한 일국사로 서술되는 중국사에서 다른 민족들의 역사는 어떻게 서술할지에 대해서도 저자는 밝히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일어나고 있는 탈식민주의 역사학의 관점으로 이루어지는 트랜스내셔널한 역사서술과 제국주의 시기 동양사 연구와의 유비는 대단히 잘못된 점이라는 것을 밝힌다. 제국주의 시기 일본의 동양사 만들기에 대한 저자의 정리는 동의할만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여러 탈식민주의 역사학에서 주장하는 '아시아 공동체'는 기존의 국가-민족주의적 역사학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하여 거기에 가려졌던 민중 일반의 역사를 밝혀내고자 하는 시도로 만철의 그것과 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다. 아마 국가라는 안경을 쓰고 있는 저자로서는 제국주의가 만든 통치를 위한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아시아와 앞으로 건설해야 할 연대의 공동체로서의 아시아를 구분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