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서평 요약

김종준, 2010, 『일진회의 문명화론과 친일활동』, 신구문화사

同黎 2014. 9. 22. 18:33

김종준, 2010, 『일진회의 문명화론과 친일활동』, 신구문화사


조선후기사 박사과정 박세연


김종진의 이 책은 기존의 친일·매국단체로만 평가되던 일진회에 대해서 그 안의 내용을 들여다 봄으로써 일진회 구성원들이 가지고 있던 욕망과 신념을 살펴보았다는데서 그 의미가 있다. 실제 일진회는 대부분의 사회진화론적 계몽 단체들이 가지는 특성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진회만큼 대중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경우도 드물었고, 지역에서 지역민의 대변인 역할을 하기도 하는 등, 기존의 친일·반일 구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병합 직전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1. 일진회원의 신분 구성

1장에서 일진회원의 신분 구성을 나눌 때 중앙(서울)에서는 양반가의 겸인(중인) 출신이 많다는 것을 강조하고 전반적으로 부농·상인이 많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이 부농·상인의 실체이다. 이후의 서술을 참고하면 일진회에 참여한 부농·상인은 신분적 제약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본을 축적한 이들로 보인다. 그러나 최근 조선후기 농촌사회에 대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전반적으로 소농사회가 강화되었으며, 경제외적 강제가 해소되지 않아 신분과 경제적 소득은 일치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일진회에 가입한 이들은 土豪라고 불리던 지역의 지배계급일 것이다. 토호들이 황실재정 하의 역둔토에 개입하기 위해 일진회에 가입했을 가능성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렇다면 필자가 강조하는 일진회의 지역에서의 의미가 다소 줄어드는 것은 아닐지.

또한 상인의 경우에도 이들이 국가 조달체계 안에 들어 있는 市民·都民인지, 궁방·군문과 연계된 난전상인인지, 아니면 개성상인처럼 아예 독자적 경리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지 불확실하다.


2. ‘작폐’와 개인의 욕망

2장에서는 지역사회에서 역둔토를 둘러싼 경리원과 일진회(특히 지역의 일진회원)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실제 대한제국의 내장원-경리원이 조선시대에조차 국가재정의 틀안에 있었던 역둔토를 황실재정으로 끌어들인 것은 문제의 소지가 많다. 이것은 조선후기 강력하게 자리 잡은 토지의 사유권을 약화시키고 오히려 토지의 중층적 소유구조를 강화시키는 일종의 반동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일진회는 개인의 ‘자주’와 ‘권리’를 주장하며 경리원과 대립했다. 일진회가 일으키는 문제도 많았지만 그들의 문명화론과 개인의 욕망-권리에 대한 긍정은 일진회를 농민의 대변인이나 해결사로 인식되게 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문제는 이들이 주장하는 자주와 권리가 공공성으로의 연결을 담보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일진회는 지역에서 작폐자로 전락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얻는 교훈은 문명개화와 개인의 자주·권리가 공공성을 확실히 담보해주지 않는 다는 점이다. 일진회원들이 개인의 이권 도모에 열중했던 것은 어쩌면 중앙의 통제 불능과 개개인의 비위가 아니라 일진회가 주장했던 문명개화론 자체의 문제일수도 있다. 이것이 사회적으로 ‘公’을 절대시했던 유교의 도덕이 지배했던 향촌사회와 마찰하며 결국 실패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