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서평 요약

Jane Burbank, 2010, Empires in world history, Princeton University Press 서평

同黎 2014. 8. 4. 00:02

Jane Burbank, 2010, Empires in world history, Princeton University Press 서평

한국사학과 박사1

박세연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전세계는 국민국가의 환상에 빠져들었다. 1·2차 세계대정은 바로 제국과 국민국가 사이의 갈등이 가장 표면화된 시기였다. 여러 논의가 있었겠으나, 근대를 거치면서 비서구의 가산제적 정치체계들은 비합리적이고 비민주적인 것으로 낙인찍혔고, 반면 민족 혹은 국민에 기반을 둔 근대 국가가 새로운 시대에 접합한 국가체제로 칭송받았다. 그리고 그 결과 한국은 2차 대전 이후 독립하여 근대 국가의 하나로서 자리매김 하였다.

그런데 근대 국민국가 모델과 대립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제국은 사라지지 않았다. 프랑스 혁명으로 대표되는 시민권의 등장과 이를 얻기 위한 혁명은 사실 제국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2차 대전을 즈음하여 근대 국민국가 모델은 비로소 전 세계의 이념적 국가 모델로 정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과연 근대 국민국가가 얼마나 물질성을 가지는가가 바로 이 책이 던지는 의문 중 하나이다.


[그림1] 제국의 획일성


[그림2] 제국의 안정성




이 책에서는 고대 로마와 중국(진한 제국)에서부터 시작된 여러 개의 인종, 문화, 언어권을 포괄하는 국가를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통칭한다. 그리고 서구와 비서구적 공간에서 각각의 특징을 지닌 제국이 이어지면서 그 유산 역시 어느 정도 이어지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 제국들의 특성은 서구의 그것과 비서구권의 그것과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이를 간략하게 도식화 시켜보면 위에서 제시한 두 개의 그래프와 같다.

로마와 진한제국은 모두 여러 문화권을 포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로마는 여러 식민지의 통치를 해당 지역의 유력자들의 도움을 받은데 비하여, 중국은 중앙집권적 관료조직을 만들어냈다. 때문에 로마는 쉽게 분해되었지만 중국은 정권이 교체되어도 제국의 틀 자체는 계속 유지되어 왔다. 이 두 세계의 유산은 이후로도 계속되는데, 서구는 이러한 불안정성을 타파하기 위해 주로 각 지방의 분권적인 권력들을 계서적으로 서열화하면서 왕과의 충성을 강조하는 계급적 체계를 이용하였다. 반면 중국이나 비서구권은 중앙집권적 관료제를 바탕으로 가산제적 권력을 창출하여 세습적 계승을 강조하면서 절대권력자를 도울 수 있는 노예․신하․관료 등을 포진해 놓았다. 일반적으로 서구적 제국보다는 비서구적 제국의 안정성이 더 지속되었다.

중세에 지구의 서쪽에는 획일성이 강조되었다. 기독교와 이슬람이라는 강력한 종교를 통해 제국의 획일성은 높아졌다. 그러나 기독교세계에 비하여 이슬람세계가 조금 더 유연하였고, 또 기독교세계에서 계급적 요소가 강조된데 비하여, 이슬람세계에서는 세습적 요소가 강조되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지구의 동쪽에서는 몽골제국이 탄생하였다. 몽골제국은 광대한 영토의 다양한 신민을 각자의 방식으로 통치하였다. 이러한 다문화주의적인 전술은 제국의 획일성을 약화시킨 듯 보이지만 제국의 안정성은 더욱 강화하였다. 그리고 몽골의 세계제국은 다른 세계의 제국적 경험을 혼합하고 중첩시켰다. 제국들의 관용적 태도는 이전보다 더 확대되었다.

우리가 제국과 정반대의 것으로 알고 있는 근대 국민국가, 그리고 이 국가를 구성하는 '시민'은 제국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었다. 혁명이 일어나고 시민이 형성된 19세기 이후에도 제국은 지속되고 있었다. 물론 제국과 시민의 긴장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시민'의 영역에 제한이 있는 가운데 제국은 식민제국으로 형태를 바꿔 지속되었다. 식민제국이 가능한 것은 바로 자본주의와의 결합을 통해서였다. 제국은 독자적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확대를 보조하면서 계속하여 확대되었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제국이라는 정치체와 결합함으로써 이윤을 극대화 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는 제국의 성격을 바꿔놓았다. 자본주의를 통해 차이를 인정하는 과거 제국의 특징은 소멸되었고 국민국가의 특징을 지니게 되면서 획일성이 한층 강화되었다. 그리고 2차 대전 이후 서구의 전통적 식민제국들은 사실상 해체되었고, 그들을 본딴 (전혀 새로운 비서구권의 제국이었던) 일본 역시 몰락하였다. 대신 국민국가적 성격을 지닌 미국과 소련이라는 새로운 제국이 등장하였다. 사회주의와 자유주의라는 이념 아래서 어느 때보다 안정적이고 획일적인 제국이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사회주의의 몰락 이후 미국이라는 유일한 제국이 혼자 남아있게 되었다.

근대의 국가체계인 국민국가는 과연 과거 제국의 유산을 버린 새로운 합리적인 체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저자는 오히려 제국에서 차이에 대한 융통성과 관용을 바탕으로 한 정치가 행해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근대주의적인 우리의 고정관념을 비판한다. 어쩌면 국민국가는 자본주의와 결합한 새로운 식민제국이 그들의 외연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제국이 인민을 추동하기 위해 만들어낸 하나의 이데올로기일 수도 있다.

이 책이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은 적어도 전근대사회에서 비서구권의 제국이 만든 통치시스템이 더 안정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몽골제국은 이러한 비서구권의 특징을 서구로 혼합시키고 융합시켰다. 적어도 자본주의와 제국이 결합하기 이전까지 더 안정적인 체제를 유지한 것은 비서구권의 제국들이었다. 막스 베버가 가산제라는 이름으로 비합리적 통치체계로 보았던 동양의 정치질서가 사실 더 '합리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의도에서 몇 가지 알 수 없는 지점들이 존재한다. 첫째, 제국은 과연 다양성만이 존재했을까? 혹은 다양성의 정치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국민국가의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을까? 제국 안에서 다양성이라는 것은 결국 한계적이다. 일정 정도 이상을 넘으면 제국은 결코 다양성을 허락하지 않는다. 혁명 이후의 프랑스도 마찬가지였고, 결국 아이티는 제국과 극단적 대립 속에서 혁명과 독립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제국주의라는 틀은 다양성의 여부와 관계없이 지속되는 폭력이 아닐까? 그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둘째, 이 책만으로는 통시대적으로 혹은 초역사적으로 존재하는 제국의 특징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역사상 인종․언어․문화를 공유하는 국가는 너무나 많다. 그런데 이들 국가를 모두 제국으로 규정하기에는 너무나 상이한 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제국을 이렇게 초공간적, 초시대적으로 규정하기보다는 공간적으로는 세계제국과 지역제국으로, 시기적으로는 고대적, 중세적, 근대적 제국으로 분류하고 그 특징을 집어내는 것이 더 역사학적인 분석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자본주의의 세계 재패 이후의 제국에 대한 의문이다. 자본주의가 등장한 이후 세계는 '경제적 사회'로 재구성되었다. 정치와 경제, 그리고 시민사회의 영역이 분리되었고, 여기서 경제의 영역이 가장 우위를 차지한다. 그리고 경제의 입장에서 정치는 불안요소(risk)이며 동시에 안정화의 대상으로 생각된다. 경제의 힘이 강력한 가운데 과연 지금의 미국은 어떤 제국적 특징을 과거 제국들과 공유하는가? 여기에 대해서도 명확한 대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