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서평 요약

岡田英弘 編, 2009, 『淸朝とは何か』, 藤原書店 서평

同黎 2014. 6. 4. 04:06

岡田英弘 編, 2009, 『淸朝とは何か』, 藤原書店 서평

한국사학과 박사1

박세연


20세기의 동아시아에서 일본은 주연배우로 등장하였다. 일본은 고대 이후 신국사상 등 독자적 천하관을 유지하며 황제국임을 자처하였지만 아시아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외교적으로, 경제적으로 20세기 이전에는 중국이 동쪽과 서쪽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아시아 각국의 역사를 서술함에 있어서 20세기 이후로는 일본을 제외하고 역사를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본은 아시아·태평양을 지배하는 새로운 주인공이 되고자 하였고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그것은 어느 정도 성공하였다.

일본이 아시아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된 이유는 순전히 경제력과 군사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들의 근대화·서구화에 대한 열망은 태양력을 받아들이면서 자신들의 시간개념까지 서구식으로 개조할 정도로 철저하였다. 수많은 서양서적들이 번역되면서 많은 개념어들이 검토되었고, 그 결과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시아에 대한 연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만주철도주식회사는 단순한 철도 회사가 아니라 아시아로 진출하는 일본의 전진기지였고, 만철의 조사부에는 당대의 엘리트 지식인들이 아시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이들이 자부하듯이 현재의 동양학은 제국주의시기 일본의 연구에 큰 빚을 지고 있다. 그렇다면 제국주의시기부터 시작된 연구 업적에 기대고 있는 일본의 청에 대한 연구는 어떠할까? 『淸朝とは何か』의 목차만 봐도 이에 대한 답이 어느 정도는 나온다. 오카다 히데히로를 비롯한 일군의 일본인 학자들은 만주족·한족·준가르·티베트·러시아·일본·류큐의 시각에서 바라본, 혹은 그와 관계된 청의 역사를 서술한다. 이렇게 다기한 시각에서 청을 바라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청을 세계사를 탄생시킨 원제국의 후계자로서 유라시아 제국의 하나로 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유라시아 제국이란 무엇일까? 유라시아 제국의 특징은 첫째 주변부에서 발흥하여 다른 문명관을 정복했다는 것이며, 둘째 다민족·다문화적인 복합성을 띈다는 것이고, 셋째 광대한 영역을 다양한 형태의 지역 집합체로 통치한다는 것이고, 넷째 기존의 전통적 언어문화와는 다른 지배층의 언어를 사용하는 행정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청은 이란의 사파비 왕조, 오스만 왕조, 인도의 무굴왕조와 함께 이러한 특징을 공유하는 유라시아 제국의 일원이었다.

여기서 청을 제국으로 파악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다. 우선적으로 일본학계가 만철 조사부 이래로 형성해온 동양학의 기초 위에 청조를 아시아사의 일부로 서술하는 것이다. 청조를 아시아사, 즉 세계사로 파악하는 것은 청을 전통적 중화의 봉건국가와는 다른 국가, 즉 제국으로 보는 것이다. 결국 이 두가지는 서로 필요충분조건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淸朝とは何か』에 나타나는 일본의 청사인식은 이른바 ‘신청사’로 불려지는 영미권의 청조사 연구와 맥을 같이한다.

그런데 일본의 청에 대한 제국으로서의 규정은 한편으로는 ‘신청사’ 연구와는 정반대의 시각을 견지하는 것이다. ‘신청사’ 연구를 집대성한 윌리엄 로는 청을 제국으로 보는 것과 동시에 ‘초기 근대’로 파악하였다. 즉 근대가 서구에서만 시작될 수 있었으며, 남경조약 이후 비로소 중국의 근대화가 시작되었다는 존 킹 페어뱅크를 비롯한 지금까지의 연구에 대한 반성을 통해 중국 내부의 근대성을 일부 인정한 것이다.

반면 일본의 ‘제국’은 ‘근대 국민국가 아님’에 초점을 맞춘다. 청은 일본의 개입이 있기 전까지 아무리 융성했어도 근대 국민국가에 이르지는 못했던 것이다. 청은 청일전쟁에서의 패배 이후 비로소 일본화로서의 근대화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국민국가를 이루지 못한 청에게 러시아의 위협이 다가오자 이제 저지하기 위하여 러일전쟁이 일어났다. 러일전쟁으로 일본이 러시아 세력을 막아내었으나, 중국의 민족주의가 발흥하며 외국인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고 밖으로는 코민테른이 건설되어 사회주의운동을 지도하자 결국 일본은 그동안의 투자와 노력을 지키기 위하여 만주국을 건설하였다는 논리를 완성시키기 위해 청의 ‘제국’임을 설명했던 것이다.

거자오광을 비롯한 중국의 학자들은 일본의 아시아주의에 대하여 굉장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정치적 성향의 문제를 떠나 일본의 동양학이 戰前의 유산을 그대로 계승했다는 사실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문제는 그러한 유산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는가이다. 과연 일본은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니시지마 사다오는 일본의 동아시아 인식에 대해 지적하며 동아시아 문화권의 공통점을 통한 동아시아세계의 역사를 서술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역사서술을 가로막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오카다 히데히로가 그토록 강조하는 국민국가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이 동아시아의 근대를 선도한 것이 맞다. 일본이라는 거대한 외부세력의 침입은 동아시아의 민족(국가)주의를 가속화시키고 부국강병만이 답이라는 사회진화론은 지식인 사회에 뿌리 깊게 심어 놓았다. 일본의 가장 큰 책임 중 하나는 동아시아 세계에 이토록 근대의 부정적인 측면을 뚜렷하게 새겨놓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반성 없이 당시 일본의 당위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외부인의 시선으로 이 책을 읽는 우리에게 불편함을 줄 뿐이다.

이러한 일본의 우익적 아시아사를 극복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가장 큰 방법은 새로운 사료를 통한 연구라고 생각된다. 만철 조사부의 학문적 성과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료를 통한 연구가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다. 오카다가 지적하고 있지만 수많은 만주어 당안문서는 청조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역사 서술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는 부분은 역시 새로운 사료를 통한 새로운 시각의 확보인 것이다. 많은 연구자들이 만주어 학습에 열을 올리는 것은 새로운 청사 서술의 힘이 바로 만주어 당안 자료 등, 한족의 눈에 미치지 않은 새로운 사료에서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사료의 문제만큼, 시각의 문제 역시 중요하다. 오카다 히데히로와 미야와키 준코 같은 제국주의와 냉전시대의 유산을 그대로 간직한 역사학자들이 존재하고 이런 학자들에 대해서 한국과 중국의 대응은 주로 국가주의-민족주의를 강화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최근 한국에서 동북아역사재단을 중심으로 한 우경화 경향은 일본과 중국 역사학계에서 보여주고 있는 문제가 기실 한국사학계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들이 보여주는 시각을 고수한다면 저자들이 말하는 일국사를 넘은 아시아사는 영영 요원한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에도 니시카와 나가오처럼 국가이데올로기를 해체하고 국민문화에서 해방되자는 연구자들도 존재한다. 이러한 고민에서부터 연구자가 먼저 국민국가이데올로기를 해체시키고 일국사를 넘어 동아시아사를 서술해나간다면 의미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각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여러 가지 참신한 시도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화폐와 과학이라는 소재를 통해 청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살폈으며, 류큐라는 일본과 청 사이에 낀 작은 국가의 대응을 통해 당시 동아시아 국제관계가 어떠했는지를 밝혔다. 에조 니시키라는 교역물을 통해 청과 그 안의 소수민족, 일본과 그 안의 소수민족이라는 4가지 주체가 어떠한 관계망을 구성하고 있었는가에 대해 밝히면서 국가 내부의 여러 집단들과 국가의 관계 또한 많은 시사점을 남겨주었다. 마지막으로 청대라는 한 시대에 얽매지 않고 책의 서두에 중국사(혹은 중국사의 영역 밖에 있는 북방민족까지) 전체의 시대구분과 그 안에서 청대가 차지하는 위치를 명확하게 규정지음으로써 전체사·세계사에서 이 책이 다루는 주제가 어디에 있는가를 독자들에게 보여주었다. 비록 시각의 문제가 있지만 만철 이후 자리잡힌 일본의 역사학 연구 수준을 잘 보여주는 흥미로운 책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