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3차

일본불교미술답사기 - 5일 우다 (무로지室生寺)

同黎 2018. 5. 21. 02:38



5일째 아침


서울서 오신 분의 제안으로 렌트를 하기로 했다.


교토역 하치조구치에 가면 렌트카 회사가 많은데

그 중에서도 닛산렌트카가 싸고 괜찮았다.


인원이 꽤 되었으니 오히려 패스보다 렌트가 저렴하고, 기름값도 싼 편

다만 렌트할 때 조심할 점은 톨비가 어마어마하다는 점

ETC카드라는, 우리나라로 치면 하이패스 같은 카드를 이용하고

렌트 후 렌트카 회사에서 정산하는데 멀리 갈 경우 하루에 1만 엔도 나올 수 있다.

일본 고속도로는 거의 민영화라고 할 정도의 톨비를 자랑한다. 기름값 같은 건 걱정도 안 된다.

교토에서 바로 나가는 기본 톨비가 400엔이 넘으니...


어쨌든 출발


렌트는 처음

내비는 내장되어있으나 구글지도가 훨씬 좋다.


한참 달려 오늘의 첫 목적지인 무로지 도착

여인고야라는 비석이 서 있다.


진언종의 총본산 고야산은 메이지시대 이전까지 여성 출입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몇몇 사찰에서

여성 출입을 허용하며 여인고야라는 이름을 사용하는데, 대표적인 곳이 무로지이다.


무로지도 벌써 몇 번째이다.

그러나 올 때마다 좋다. 손님과 함께 오면 항상 모두 좋아하는 곳이 무로지이다.

대중교통으로 가는 방식은 지난 여행기 참조

간사이 쓰루 패스로 갈 수 있는 곳 중에는 아마 끝판왕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강 건너 보이는 사찰 건물들


다리를 건넌다.

다리 이름은 태고교(타이고바시)


무로지(室生寺, 실생사)는 진언종 실생사파 대본산이다. 다만 진언종 18본산에는 속하지 않고 전후에

스스로 독립해나간 대본산이다. 나라현이라고는 하지만 거의 미에현과의 경계에 있는 산악사원이다.

전승에 따르면 아스카시대 엔노 교자가 처음 세우고 헤이안시대 초기 구카이가 중흥했다고 한다. 구카이가 직접 개입했는지는 의문이나 헤이안시대 초기 건축물이 남아있으니 당시 크게 일어난 것은 사실이다. 

다른 기록에 따르면 나라시대 말기 당시 태자이던 칸무천황이 아프자 고후쿠지의 승려 슈엔이 이 땅에서 수법으로 병을 치료하고 후원을 얻어 절을 세웠다고 전해지는데 이 것이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이 든다.

다만 지금과 같은 큰 규모를 갖추기까지 수십 년이 걸린 것으로 생각이 든다. 그 후로 쭉 법상종 사찰로 있다가 에도시대에 호국사라는 진언종 사찰에 배령되면서 진언종 사찰로 전환되었다. 그 후 하세데라를 총본산으로 하는 진언종 풍산파로 바뀌었다가 독립해 진언종 실생사파가 되었다. 케이쇼인의 후원으로 여인금제가 풀린 사찰이 되어 여인고야의 사찰로 크게 흥성했다.


에도시대 세운 본방이 보인다.


무로지 옆을 흐르는 무로가와


여기 료칸도 있던데 한 번쯤 묵어보고 싶다.


절로 간다


입구에 있는 커다란 3그루의 삼나무


방장으로 통하는 칙사문


경내도


무로지의 거의 모든 건물이 국보나 중요문화재다.

전에 왔을 때는 다 닳아있더니 새로 세웠나보다.


인왕문이 보인다


근래 재건한 문


들어가면 방생지가 있고


높은 계단이 보인다.


이 석단을 올라가야 금당이 나온다.


작은 변재천 신사


금당


무대조라고 하기는 좀 어렵다. 앞으로 튀어나온 부분은 에도시대에 개조가 된 것이기 때문

원래 문이 열려있는 예당(외진) 부분은 에도시대에 덧붙여진 것이고,

그 뒤편의 내진 부분은 헤이안시대 초기에 세워진 것이다.


개조가 있었지만 헤이안시대 산악신앙과 불교의 결합을 보여주는

산악사원의 대표적인 건축으로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금당 앞 석등롱


전형적 춘일조 석등롱


오래되어 보이는데


일본은 유난히 석등에 박하다.

보호도, 지정도


금당 안에는 보물같은 불상들이 모셔져 있다.


안내판


바로 옆에는 미륵당이 있다.


가마쿠라시대 전기(12세기) 건축되고 에도시대 수리되었다.

중요문화재


내부에는 미륵보살상과 석가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본존 미륵보살

중요문화재


헤이안시대의 작품으로 보기 드문 보살형 미륵상이다.

조각이 대단히 세밀하고 아름다운데 왜 국보가 아닌지


국보 석가여래좌상


역시 헤이안시대의 불상으로 전래에 대해서는 일체 미상이다. 9세기로 추정 중

손에 물갈퀴 모양을 조각하는 등 매우 아름다운 불상이다.


이제 금당으로 간다.


측면


금당에서 내려다 본 모습


미륵당


지붕 공사는 언제 끝나는 지


금당 외진의 공포


내부에 보이는 불상

왼쪽은 국보 십일면관음, 오른쪽은 중요문화재 문수보살


앞은 중요문화재 십이신장상

모두 헤이안시대 초기


십일면관음상은 매우 세밀하고 아름다운 볼상이다.

광배는 모두 헤이안시대 특징인 판광배인데 일부 채색은 후보이다.


내부에는 가운데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측에 문수와 십일면관음, 우측에는 약사여래와 지장보살이 있다.


본래는 3체만 모셨던 것으로 여겨지는데 나중에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지장보살의 경우 광배가 원래 것은 아니고 뒤바뀐 것이다.


잘 나온 사진


국보 석가여래입상

이건 광배의 무늬도 원래의 것이다.

광배 내용이 칠불약사이고 앞에 십이신장상도 있어

본래 약사여래였던 것으로 생각되나 어느새 석가여래로 바뀌었다.


뒷면 벽에는 9세기 벽화가 남아있다. 제석천만다라로 추정되는데,

헤이안시대 초기 회화자료로는 귀중한 것으로 따로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이제 뒤편 본당으로 간다.


작은 보협인탑



사경탑


누가 언제 경전을 봉납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중요문화재 오륜탑

무로마치시대의 것인데, 가마쿠라시대 말기의 공경인 키타바타케 치카후사의 무덤이라고 전한다.

앞에 있는 작은 크기의 오륜탑 두 개도 함께 지정


본당

관정당으로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1308년 건립된 건물로 당시 사찰의 밀교화가 진행되면서 세운 건물이다.


관정당이라는 이름대로 내부에는 관정의식을 치루기 위한 구조로 되어 있으며,

양쪽에 양계만다라를 걸었던 벽면이 설치되어 있다.


안내판


현재 안에는 만다라는 없고 여의륜관음이 본존으로 모셔져 있는데.


헤이안시대의 것으로 중요문화재 지정이다.


현재 보존을 위해 출타를 나갔단다. 일본 3대 여의륜관음이라고 한단다.


건물 공포


정면


공포와 처마


특이하게 튀어나온 부분

하앙


이런 건축적 특징 때문에 국보가 되었다.


이제 국보 오층탑으로 간다.


8세기 말~9세기 초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헤이안시대 극초기


오층탑으로는 호류지의 것 이후 두 째로 오래된 것이다.


새 것같이 보이는 이유는


1998년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에 지붕 일부가 파손되어 해체수리를 했기 때문에


높이 16미터로 오층목탑 중에는 가장 작다.


뒤로 보이는 건물은 케이쇼인의 영당


시코쿠 88개소의 본존 석불을 늘어놓았다.



에도시대의 작품















오쿠노인으로 가는 계단 위에서 본 오층탑


작지만 세밀하다


상륜부는 특이하게 수연이 없다. 보개 모양이 있는데 그 아래 병 모양이 있다.

개산조 엔슈가 용을 잡아 넣었다고 전한다.



상륜부


탑신에는 난간도 보인다.


올려다 본 모습


케이쇼인 영당



작은 오륜탑


오래되어 보인다.


탑 정면



거대한 삼나무


이 뒤로 난 계단 400개를 오르면 오쿠노인이 나오고 거기에는 구카이를 모신 어영당이 있다.

무로마치시대 전기의 건물로 중요문화재인데, 항상 시간 때문에 못 가는 곳


이제 내려간다

본당 지붕


본당을 지나


금당으로


미륵당


금당 정면



금당 아래 옆에 작은 명왕 조각이 있다.


아.. 존상 이름 기억이 안 난다.

군다리명왕이었나


태원수명왕이었나...


작은 신사도 있다.


이제 첫 일정을 끝내고 하세데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