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5차

기나 긴 일본답사기 - 12일 고베2 (스마데라須磨寺)

同黎 2019. 3. 22. 03:07



한참 해안을 따라 가는데


갑자기 이상한 곳으로 안내하기 시작한다.


알고보니 절은 산 아래에 있는데 주차장이 산 위에 있어 산 꼭대기로 안내한 것


어쨌든 고베가 한눈에 들어오는 경치는 좋다.

여기가 바로 겐페이전쟁 당시 헤이케의 멸망을 거의 결정지었던 이치노타니 전투의 현장이다.


아래로는 무덤이 가득하다.


내려가는 길

엘레베이터가 있다.


스마데라 주변 안내도

근처에 이치노타니 전적도 있다는데 거기까진 발길이 미치지 못한다.


아래 초혼비도 보이고


바다가 보인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니 묘지를 통해 절 뒤편으로 들어가는 셈

그래서 설명을 여기서 한다.

스마데라(須磨寺, 수마사)는 진언종 수마사파의 대본산으로 헤이안시대 초기에 창건되었다.

헤이안시대 초에 이곳 근처 바닷가의 어부가 성관음상을 발견해 산 위에 모셨고 이후 고코 천황

(光孝天皇)의 명을 받은 문경상인이라는 스님이 이곳으로 이동에 이름을 후쿠쇼지(福祥寺)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모셔진 본존은 헤이안시대 말기인 12세기 후반에 미나모토노 요리마사가 모신 것이라고 한다.

요리마사는 겐지임에도 타이라노 키요모리의 신뢰를 받아 헤이케 편에 서나 이후 고시라카와천황의 아들

모치히토왕과 밀약을 맺고 헤이케를 타도하려다가 준비부족으로 뵤도인에서 패하고 자결하는 사람이다.

근처에 이치노타니전투가 있었기에 이 당시 인물들과 관련된 유물이 많이 있다. 이후 무로마치시대에

대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재건되었고 오닌의 난으로 다시 소실되었다. 재건된 본당은 모모야마시대 후시미 대지진으로 붕괴되었다가 도요토미 히데요리의 기증으로 재건되었으며 에도시대 대단히 번성했다.

그러나 산사태로 일부가 붕괴되고 한신대지진으로 많은 타격을 입어 지금까지 재건 중이다.


내려가니 2차 대전에 참전한 이들을 위한 초혼비가 있다.


누군가의 동상


본당 방면으로 가는 길


가다보면 사무소로 쓰는 청엽전이라는 건물이 나오고


경내로 가는 길이 나온다.


곳곳에 묘지나 신사가 있다.


물고기와 새들을 공양하는 탑


어조총


시베리아, 만주, 몽골 전투에서 죽은 이들의 위령비


곰이 있다


귀엽긴 하지만 제국주의의 흔적으로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사연을 적은 비석


아마 소련군에 잡혀 포로로 있다가 유골로 돌아온 이들을 묻은 무덤인 듯하다.


전역도


타이라노 아츠모리의 머리무덤


아츠모리는 타이라노 키요모리의 동생 츠네모리의 막내아들로 피리의 명인이라고 한다.

집안빨로 종5위하까지 올라갔으나 겐페이 전쟁 당시 17세에 불과했다.

이후 이치노타니 전투에서 기습받아 겐지 편의 쿠마가이 나오자네와 싸워 패했고

나오자네에게 사로잡히자 스스로 목을 베라고 요구하여 여기서 참수되었다.


무덤은 오륜탑 형식이다.


안내문


요곡 아츠모리의 사연


한쪽에는 삼존불의 석불이 모셔져 있다.


아마 요새 만든 것인 듯하다.


한쪽에는 피리부는 동자상이 있다.


킨포톤동자라고 하는데 킨타로랑 아츠모리랑 합친 것 같다.


안내문


육지장상


반대편에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친자지장이 있다.


역시 요새 만든 것이다.


이것도 무슨 이 동네 유명한 사람 연보인데 아휴 이런 거까지 알고 싶지는 않다.


삼층목탑이 있다.


홍법대사의 1050주기와 아츠모리의 800주기를 맞이하여 1970년대 새로 지은 목탑이다.


한쪽에는 경신신앙을 보여주는 원숭이 상들이 있다.


삼층탑 정면


무로마치시대 양식으로 지어졌다고


회랑에는


시코쿠 팔십팔개소를 의미하는 석상들이 모셔져 있다.


삼층탑을 따라 내려가니


새로 지은 다른 건물이 나온다.


한쪽에는 오쿠노인으로 가는 길이 있다.

고속도로 건설로 경내가 갈렸다.


쓰러진 신목


본래 미나모토노 요시츠네가 이 나무에서 쉬면서 타이라노 아츠모리의 목을 점검했다고 한다.


현재는 이렇게 누워서 보호각 안에 놓여있다.


고목이 되었다.


멀리 보이는 것이 본당


본당의 모습

17세기 초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재건하였으며 카타키리 세키슈가 일을 맡아봤다고 한다.

내부의 주자와 불단, 본존상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대비전이라는 현판


내부의 모습


주자와 불단은 남북조시대의 것으로 중요문화재이다.


본존 십일면관음

역시 남북조시대의 것으로 중요문화재


서국 삼십삼소 영장 도나보다.


본당 앞 향로


본당 옆 대사당

홍법대사 구카이를 모신 곳


에도시대 건물


홍법대사상


호마당으로 간다.


부동명왕이 크다.


이 십삼층석탑은 본래 나라의 내영사라는 절에 있었다가 후지타가의 저택으로 옮겨지고

이후 스마데라에 기증된 것이다. 효고현지정문화재로 가마쿠라시대의 석탑이다.


사무소


옆에는 보물관이 있다.


거문고

스마금이라고 불리며 가선 아리와라 나리히라의 형 유키히라가 사용하던 것인데 현이 하나이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거문고라고 한다.


안내문


피리


타이라노 아츠모리가 사용하던 피리라고 한다.


고려적과 청엽적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치노타니 합전에서 싸우는 아츠모리


안내문


벤케이종

벤케이와는 관계없는 무로마치시대의 종인데 어째서인지 벤케이의 것이라고 전해진다.

명문이 남아있어 본래 안치소와 장인의 이름을 알 수 있다.


안내문


타이라노 아츠모리의 각종 그림


타이라노 아츠모리의 목상

에도시대



이치노타니 전투에서 사용했다는 각종 무구들


헤이케의 상징인 적기


당시의 무구

북은 타이라노 키요모리의 것이라고 전한다.


나무아미타불 명호

적기에 썼다는 것


청동 등롱

남북조시대의 것이다.


아츠모리가 발원했다고 전해지는 등롱


과거 중문에 걸려 있던 현판으로 말구유 모양이다.



와니구치

현지정문화재로 남북조시대



귀면과 현판


신장형 등롱


보현보살십나찰녀상의 복제품

중요문화재로 진품은 교토국립박물관에 있다고


안내문


스마데라 만다라


모모야마시대



한쪽에는 수석으로 헤이케모노가타리를 재현했다.

헤이케의 번영


이치노타니 전투


측면


절벽으로 요시츠네군이 내려온다.


심지어 움직인다


타이라노 키요모리에게 버림받은 기오 모녀


교토 기오지에 이 모녀의 무덤이 있다.


단노우라 전투


마지막으로 자결하는 안토쿠천황


살아남은 켄레이몬인을 찾은 고시라카와천황


오하라로 간 켄레이몬인


안토쿠천황의 어머니이자 키요모리의 딸인 켄레이몬인


과거 이곳에 인형극(분라쿠)도 활발했다고 한다.


각 공경들


이치노타니 전투의 모습


타이라노 아츠모리와 쿠마가이 나오자네


겐페이의 정원이라는 안내석



칠복신을 조각한 거북이


육지장상


각종 석불들


석가모니와 십육나한상

중국 명나라 시기의 것이란다.


안내문


명나라 양식이긴 하다.


스마데라 전경


인왕문이 나온다.


한쪽의 천수관음


테미즈야도 특이하다.


인왕문 정면


에도시대의 것인데


인왕상은 가마쿠라시대의 것이라고


운케이, 탄케이의 것이라고 하는데


후보가 많이 된건지...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순난기념비

내력은 모르겠다.


다시 주차장으로 간다. 이치노타니의 흔적만 보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