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서평 요약

피터 C. 퍼듀, 2012, 『중국의 서진』, 길

同黎 2012. 7. 16. 02:25

피터 C. 퍼듀, 2012, 『중국의 서진』, 길 서평

한국사학과 석사4

박세연

 

피터 퍼듀의 『중국의 서진』은 지금까지 고립된 역사로 이해되던 중앙유라시아의 역사를 세계사적 관점에서 재해석한 연구이다. 저자는 중앙유라시아를 대륙 속의 섬이 아닌 유라시아 전체의 교차점으로 파악한다. 또한 이 지역을 둘러싼 러시아와 만주, 그리고 준가르 제국의 국가 건설과 확장의 공통점과 서로에게 미친 영향에 주목하며 근대 민족국가(국민국가)의 시각, 혹은 그 이전부터 시작된 민족주의적 역사 서술을 비판하고 있다. 저자의 아이디어가 다소 정리되지 않고 군데군데 튀어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독자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저자는 먼저 중앙유라시아와 중국 및 러시아의 관계에 대하여, 궁극적으로는 이를 더 확장하여 초원과 농경지역 사이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순환론적으로 혹은 환경결정론적으로 보는 시각을 비판한다. 두 시각은 모두 정주국가의 관점에서 초원을 바라보는 것이며, 유목민족의 발전에 대하여 침묵한다는 점에서 문제를 가지고 있다. 특히 순환론적 시각은 유목민족과 정주민족의 역사를 통한 학습을 부정하고 있다는 문제를 지닌다.

초원은 궁극적으로 가난하고, 인간에게 발전할 동력을 제공할 수 없다는 식의 환경결정론에 반대하여 저자는 중앙유라시아의 지리적, 환경적 특징을 무경계성과 불확정성이라고 주장한다. 중앙유라시아는 초원, 산림, 사막 등 다양한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또한 넓은 초원은 지리적인 경계선을 설정하기 어려우며, 몇 개의 큰 산맥이 있지만 이 사이에는 광대한 통로가 존재한다. 이 지역에는 많은 민족이 왕래하였으며 일정한 문화적 정체성 또한 없다. 이러한 유연성 때문에 어느 국가에 중앙유라시아를 정복하고 구획하려 하여도 쉽지 않았던 것이다.

저자는 역사를 민족국가의 시각에 가두어 놓는 것에도 반대한다. 예컨대 러시아의 역사 서술에서 모스크바 공국와 몽골의 투쟁은 기독교 대 이슬람의 성전이었다. 중국과 유목민족의 투쟁에서 종교대립이라는 요소는 없지만, 문명과 야만의 대립이라는 이원론적 서술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러나 사실은 이와 같지 않다. 모스크바 공국은 국가 형성에서 많은 부분을 몽골제국에게 빚지고 있으며, 종교는 동맹에서 고려대상이 되지 않았다. 중국 역시 제도의 일부는 비한족 정복왕조에게 빚지고 있다. 변경지대에서 일정한 민족성과 문화는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들은 환경에 맞춰 초원의 관습을 받아들였다. 때문에 중앙유라시아는 특유의 세계성을 가지게 되었다.

세계사적 시각에서 17~18세기 중앙유라시아의 역사를 보려는 시도 역시 생각할 점을 많이 던져준다. 이러한 시도는 지금까지 전혀 다른 것으로 생각되던 여러 부분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강조한다. 저자는 러시아 국가와 몽골 국가, 만주 국가를 모두 형식상의 자치, 비정부기구들과의 차별성, 중앙 집권, 내부에서의 상호조정 등으로 특징 지워지는 국가성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지닌다고 이야기한다. 이 공통점을 지닌 국가들은 유라시아에서 경합하고 중국과 러시아는 이 과정에서 산림과 초원지역을 지배하기 위한 비슷한 해결책을 찾는다. 러시아와 중국(명과 청)의 진출과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 등을 미국의 서부 진출 같은 다른 시공간의 역사와 비교하는 점 역시 신선한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청의 중앙유러시아 정복은 단순히 만주족의 청 제국이 준가르를 정복한 사건이 아니다. 러시아와 청이라는 제국의 확장은 중앙유라시아에 처음 고정적인 국경을 확정지었다. 이는 세계적인 제국주의의 팽창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청의 신민들은 신강이라는 새로운 영토를 접하게 되었고, 그들의 사고 속에 있던 세계의 영역은 급격히 확장되어 새로운 세계로 이주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국경의 확정은 동시에 폐쇄를 의미하기도 했다. 여러 문화의 교차점이었던 중앙유라시아의 개방성과 유연성은 이제 종말을 맞게 되었다. 유목민은 국경선에 갇혀 능동적인 역사의 주체로서의 지위를 상실하였다.

18세기 청의 중앙유라시아 정복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세계사적 맥락에서 해석하려는 피터 퍼듀의 대담한 시도는 많은 생각할 점을 제공해주고 있다. 자연과 환경이라는, 인간이 대적할 수 없는 요소로 역사를 설명하려는 관점은 사실 민족주의, 인종주의적 편견을 고착화시키는 근거로 작동하였다. 이는 최근 자연과학이라는 절대 객관의 권위를 빌어 외계충격으로 한국사에서의 모든 문제를 설명하려는 한 경향을 연상케 한다.

순환론적 역사관에 대한 그의 비판 또한 경청할만하다. 동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은 과거의 역사를 기록하고 편집하였다. 이 과정에서 역사는 단순한 과거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현실의 정책 결정을 위한 교훈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 서술과 편찬의 전통은 단순히 한족 국가에서만 유지된 것이 아니라 정복왕조에서도 반복되었다. 동양의 전통적 역사 서술의 특징을 감안하더라도 역사에서 얻는 교훈과 그를 통한 변화에 대해 침묵하는 순환론적 역사관은 재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퍼듀의 이 책은 18세기 중앙유라시아의 역사에 대한 것 일뿐만 아니라 역사 전체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퍼듀의 관점은 그가 비판했던 구조적 역사 서술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또한 포함하고 있다. 구조주의적 역사 서술의 가장 큰 문제점은 퍼듀가 지적했듯이 거대한 경향에 주목하는 나머지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소홀하다. 퍼듀가 러시아와 몽골, 중국을 국가 형성 - 국가성이라는 부분에서 공통적이라고 지적한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국가성이라는 것은 일부 변화는 있겠지만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존재해왔다. 그렇다면 이것이 어느 시대, 어느 장소의 역사적 특징을 특정하는 개념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개념안에 포함되지 않는 내용은 또 어떻게 처리되어야 하는가?

예컨대 서유럽 근대국가의 형성과정에서 국가는 호적을 작성하고 징집 대상자를 파악하며 국민의 소유 재산을 파악하고 세금을 책정하는 일련의 정책을 시행한다. 이를 제임스 스콧은 사회적 가독성의 확대라고 개념화하였다. 그런데 15세기 조선은 위와 똑같은 일련의 작업을 진행하였고, 결국 국가의 사회적 가독성을 확대하였다. 그러면 조선은 근대국가인가? 재정사적 측면에서 보면, 17세기 조선은 재정을 중앙정부에서 모두 파악하고 총괄하며, 세입과 세출을 정액화하는 재정의 중앙집권화에 성공하였다. 이는 근대 국가의 재정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은 근대적 재정구조를 가진 것인가? 결국 몇 가지 공통점을 강조하는 것은 또 다른 차이점을 몰각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인간의 결정들이 낳는 우발적인 결과를 가장 앞쪽에 놓는’ 퍼듀의 서술 방식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역사적 우연은 거대한 사건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구조주의적 역사 서술 속에서 우연은 필연으로 해석되었다. 퍼듀의 관점은 구조주의적 역사관이 가진 문제점을 해결하는 하나의 힌트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평자는 책 속에서 인간의 결정들이 낳는 우발적인 결과가 어떻게 강조되었는지 찾지 못했다. 때문에 퍼듀의 의도에 대한 평가 역시 미룰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