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서평 요약

토마스 바필드, 『위태로운 변경』, 2009, 동북아역사재단

同黎 2012. 7. 23. 14:07

토마스 바필드, 『위태로운 변경』, 2009, 동북아역사재단 서평.

 

 

한국사학과 조선후기전공

석사4 박세연

 

 

토마스 바필드(Thomath J. Barfield)의 『위태로운 변경』은 유목제국과 만주, 중원의 역사를 상호작용을 통한 규칙적인 순환구조로 설명하였다. 이 순환구조는 간략하게 아래와 같이 정리된다. 유목제국과 중원제국의 흥기와 멸망은 거의 같은 시기에 일어난다. 즉 중원제국이 흥기하면 여기로부터 교역과 강탈을 통해 세력을 키워야 하는 유목민족 역시 흥기하여 초원제국을 이루고, 중국제국을 지속적으로 침략하여 평화협정에 드는 비용이 침략을 방어하는 비용보다 적게 든다는 사실을 중원제국이 깨닫게 하는 외부변경전략을 시행한다. 그러나 초원제국 내부의 분열이 일어날 경우 유목민족 중 한 집단이 중원의 후원을 통해 유목제국의 패권을 차지하는 내부변경전략을 시행한다. 마침내 다시 패권을 장악한 초원민족은 다시 외부변경전략 혹은 조공체제를 통해 필요한 물자를 중원으로부터 공급받는다. 중원과 초원은 서로 적대하지만, 결국 공생관계에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다른 한 쪽을 완전히 지배하려는 시도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중원제국이 무너질 때, 유목제국 역시 중원으로부터 필요한 물자를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에 무너지게 되고, 이 과정에서 여러 변경국가가 생겨난다. 이 변경국가들은 변경 서북과 동북의 지역에서 주로 나타나는데, 특히 상대적으로 물자가 풍부하고 중원과 가까운 동북지역, 즉 만주의 민족들이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게 된다. 만주국가들은 초원의 민족들을 철저히 분열시켜 연맹의 성립을 막는 동시에 한족과 만주의 민족을 다른 방식으로 지배하는 이원적 통치 체제를 채택한다. 그러나 만주의 외래왕조가 한족과 만주민족의 반발과 분열로 무너지면 다시 중원제국과 초원제국이 출현하였다. 이러한 거대한 순환구조는 중국과 초원, 만주의 역사에서 3번 목격된다. 다만 몽골제국은 일반적 초원제국과는 맞지 않는 모습이었다.

토마스 바필드의 이러한 설명은 여러 가지 장점을 지닌다. 우선 북방의 역사를 중원․초원․만주라는 3가지 문화권으로 나눠서 살펴본 저자의 생각이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물론 역사가 지적했듯이 한반도와 서북 변경을 고려했다면 더 정교한 순환 고리를 발견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원이 아닌 초원과 만주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두 지역은 분명 다른 특성을 지닌다. 두 지역 사이에 일정한 공통성이 있지만, 자연환경과 그에 따른 생산양식이 다른 만큼 두 지역의 민족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 또한 달라졌을 것이며 이에 따른 통치방식의 차이도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다. 다만 정치적 상황에 따라 양 지역의 민족이 서로의 공통성 혹은 차별성을 강조하였을 것인데, 바필드가 이 점에 대하여 좀 더 자세하게 서술하지 않은 점은 아쉬운 점이다. 또한, 바필드가 두 지역의 민족을 너무나 명백히 다른 특성을 지닌 것으로 생각하여 실상 중원국가가 만주와 초원을 동일한 오랑캐로 생각하고 이에 따라 對 북방정책을 구상했을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위태로운 변경』을 읽으면 가장 궁금했던 점은 초원민족들에게 역사적 기억이란 어떻게 보존되고 전승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토마스 바필드는 인류학자인 만큼 이 점은 초원민족의 민족성에 기대어 설명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특히 돌궐의 민족성을 서술하는 부분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빌가 카간의 오르콘비문을 언급하면서 기록을 통해 초원민족의 전략이 전승되었다는 암시도 주고 있다. 한족은 역사적 기억을 문자를 통해 전승하였다. 그렇다면 초원제국이 보여주는 공통성은 어느 시대에나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보편성인지, 초원민족의 민족성에서 기원한 것인지, 아니면 문자나 구두를 통한 전승의 결과인지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다음으로 중요한 문제는 유목민족의 경제에 관한 것이다. 먼저 흉노․돌궐과 한․당 관계를 살펴보면 초원제국이 중원으로부터 얻고자 했던 것은 체제를 안정화하기 위하여 부족장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한 사치품이었다. 바필드는 막연히 이러한 사치품이 초원에서도 당연히 중원과 동등한 혹은 더 높은 가치를 지녔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사치품이 실제로 어떻게 유통되었고, 어떠한 교환가치를 가지고 있었는지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또한, 저자의 설명에서 따르면 유목민족이 중원에 요구하는 것은 처음에는 사치품이었다가 점차 곡물과 같은 생필품으로 변하게 된다. 이러한 설명엔 유목민족은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민족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는 듯하다. 그러나 역자가 지적하고 있듯이 유목민족에게 곡물은 부차적인 식량일 뿐이라면, 어째서 유목민족의 요구가 사치품 중심에서 생필품 중심으로 넘어가게 되었는가? 이 책에는 여기에 대한 설명은 없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당연히 유목경제의 변화를 겪었을 것인데, 바필드는 유목경제를 아주 고정적인 것으로 보고 있으며, 유목민족의 인구 변화 문제도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하여 별다른 해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유목경제가 생필품마저 외부의 공급에 의존해야 했다면, 필연적으로 유목경제는 국가에 적합하지 않은 시스템이고, 이는 근대 이후 유목민족의 몰락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이용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