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서평 요약

Pamela Kyle Crossley, 1997, The Manchus, Blackwell Publishers

同黎 2012. 7. 23. 13:53

Pamela Kyle Crossley, 1997, The Manchus, Blackwell Publishers

 

한국사학과 조선후기사 전공

석사4 박세연

 

파멜라 크로슬리의 The Manchus는 청을 비한족이 한화된 국가로 혹은 “만주족의 청”으로 보는 시각에 모두 반대하며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지배층에 의해 다스려지는 제국으로 해석하고 있다. 저자는 청을 19세기 근대적 민족국가 수립을 위해 활동했던 중국의 민족주의자들이 만든 이미지를 그대로 받아들여 청 지배층이 한화되었다고 평가하는 기존 서구 학계의 해석에 반대한다. 동시에 만주인의 정체성이나 문화가 고유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혹은 원래의” 만주인 정체성이 없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저자에 의하면 그것은 1630년대 청의 개국과 함께 만들어진 만주인의 정체성이 없다거나 환상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별개의 민족으로 이루어져 별개의 언어와 문화, 역사를 가진 집단이 “만주인”으로 구성되기 위하여 정체성의 요소를 제도화하려는 국가의 입장을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국가의 성장과 더불어 변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만주인의 정체성은 시대에 따라서, 또 국가의 필요에 따라서 끊임없이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팔기제도이다.

시대별로 국가가 원하는 만주인의 정체성이 같지 않았다. 누르하치가 여러 여진을 규합할 때 만들었던 정체성은 홍타이지가 청을 선포할 때의 정체성과 같지 않았다. 누르하치에 대한 결연한 복수자의 이미지는 사실과 다른 신화이다. 누르하치는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집단을 통일적으로 묶어 내기 위한 방편을 생각해내었지만 여기에 한족은 들어가지 않았다. 그들은 분리와 복속의 대상이었다.

반면 황제를 칭했던 홍타이지는 한인 관료를 등용한다. 팔기에는 한인들이 포함되게 되었다. 강희제는 남중국을 통치하기 위해 등용한 이 한인 팔기의 능력에 대하여 의구심을 품었고 결국 무능한 한인 팔기들은 팔기에서 점차 배제되어갔다. 황제들의 관심은 이제 중앙유라시아로 향했다. 몽골과 티벳을 끌어들이기 위한 전륜성왕 같은 새로운 정체성이 만주족 황제에 의하여 구성되었다.

저자는 책 첫머리에서 만주족를 부르는 서구의 용어 즉 “타타르” 라는 단어에 주목한다. 타타르라는 용어는 본래 유럽 정주사회를 습격하던 유목민족을 이르는 말이었다. 그러나 유럽은 만주족에 대해서도 타타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것은 청이 실제로는 유목제국과 전혀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도 계속되었다. 조선이 작성한 『건주기정도기』를 보아도 초기 건주여진의 모습이 유목민족과는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이러한 인식이 현대의 청대사 연구자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만주인은 사실 유목민족과는 전혀 다른 정치, 경제적 통치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청은 초기 근대적 의미에서 러시아나 오스만 제국과 같이 제국이었다.

사실 만주족과 한족의 민족성은 태평천국운동을 계기로 형성되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태평천국의 가운데 서로에 대한 증오와 학살이 계속되었고 결국 이는 서로를 민족으로 규정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즉 민족은 즉자적이기보다는 대자적이고, 갈등을 동반하고 있었다. 이후 혁명 과정에서 보이는 만주인에 대한 학살과 지식인들의 인종 혐오적 발언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과연 그것이 오랜 기간 동안 여러 민족을 통합적으로 운영해온 제국, 청에게 필요한 것이었을까? 평자가 이해하기로는 저자의 “만주족 민족성”에 대한 비판은 근대적 민족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폭력성 내지 단절성과 연결되어 있다.

크로슬리의 구성된 정체성에 관한 견해는 많은 부분 평자와 생각을 같이한다. 마크 엘리엇의 서평에서 지적했듯이 만주족은 완전한 유목민족이 아니었지만 유목민족의 정체성을 구성하였다. 티벳불교는 이들의 전통과 전혀 관계가 없었지만 이는 만주족의 종교로 정착되었고 황제와 만주인들은 티벳불교에 대한 후원을 멈추지 않았다. 강희제 이후의 이런 흐름은 청의 중앙유라시아 정복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지는 것을 볼 때 역시 민족적 정체성은 구성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우리에게 남는 문제가 없지 않다. 누르하치부터 시작된 분리정책, 그리고 계속된 만성과 한성 같은 물리적 분리와 지배층 진출에 있어서의 차별이 만들어낸 한족의 불만과 원망은 민족성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가? 반대로 한족의 화이관에 대항하는 만주인들과 민족성은 무관할까? 특히 청을 초기 근대로 해석하는데 동의하는 크로슬리가 민족성이 근대의 산물임을 강조하면서도 역시 근대적 개념인 제국을 청에 대입하는 점은 좀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