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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대동반 후배들에게

한국사대동반 후배들에게 새벽에 적는다. 나는 참 못난 선배이다. 9년 동안이나 학교를 맴돌면서 만난 후배만 200명이 넘지만 고학번으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적은 거의 없고 후배들에게 신세지기 일쑤다. 가끔은 내가 보기도 한심해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한국사대동반이라는 낯선 공간에 들어왔을 너희가 저 늙은이를 봤을 때 얼마나 당황했을까?다만 내가 한 가지 노력했던 것은 권위적인 사람이 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너희보다 나이가 많고 학교에 일찍 들어왔다는 이유로 꼰대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어떤 사람은 내가 골목대장 놀이에 심취했다고 하지만 나는 그저 쉬운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 선배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믿어 줄지는 모르겠지만.너희에게 미안한 점이 너무나 많다. 한국사반은 약간 이상한 곳이다. 이상하다..

참된 활동가를 기다리며 - 서준식

P교수님. 얼마 전, 길에서 우연히 한 후배를 만났습니다. 91년 어지럽던 명동성당 에서 머리띠를 맨 그를 본 것이 마지막이었으니 6년 만의 만남이었던 셈 입니다. 근황을 묻는 나에게 그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기어드는 목소리로 사법시험 준비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괜한 질문을 했다 싶어 화제를 돌리려는 데 그는 이렇게... 덧붙이는 것이었습니다. “선배님, 이제 활동가 생활에는 전망이 없잖습니까?” 활동가가 ‘기능’ 속에 갇힐 때… 90년대 들어 우리 사회에서 활동가(사회운동가)의 설 땅은 갑자기 좁아졌 습니다. 이것은 물론 세계적 규모로 진행된 진보운동의 퇴조와 관계가 있겠지요. 즉 우리나라에서도 운동의 화두가 ‘변혁’에서 ‘개혁’으로 바뀌면서 사회운동은 (우리 사회의 구조 자체가 아닌) 개별 사안들을 ..

雜/남의 글 2013.05.08

요한에게 (겟세마네에서)

요한에게 밤은 지독히 검었다.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사실 알고 있었던 끝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너에게 무리한 것을 요구했고 너는 당연히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서로가 침묵하면서 밤은 더욱 깊어졌고 나는 계속 슬픔의 골짜기로 들어서고 있었다. 나는 너에게 내 고독의 십자가를 같이 질 것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너는 최후의 만찬에서 내 품에 기대어 앉은 젋은 요한이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묻고 싶을 때 너를 통했다. 너는 나에게 자랑이고 희망이었다. 베드로조차 너에게 미치지 못했다. 나는 너에게 새 예루살렘 왕국에 대해서 설명해주었고, 최후의 심판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너는 나를 사람의 아들로 믿었다. 아니 적어도 광야에 외치는 소리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스가리옷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컴퓨터로 논문을 쓰거나 사료를 볼 때 작은 볼륨으로 음악을 틀어놓는다. 그러다가 우연히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OST가 재생되었고, 회한에 젖어 2시간 동안 전곡을 다 듣게 되었다. 2003년 런던에서 녹음된 음반은 여러 번 무대에 올려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중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것 같다.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다. 그러나 스스로 역사적 예수주의자라고 이야기한다. 교회의 해석에 갖힌 예수가 아니라 지역적 차별에 시달리던 나사렛에서 자라고 공부라고는 해본 적 없는 어부를 들어 제자를 삼은 청년 여호수아를 좋아한다. 세상에서 버림받았던 성노동자, 민족반역자인 세리에게 세상을 사는 가치를 알게 해준 예수를 좋아한다. 그리고 가나의 결혼식장에서 술을 만들어내어 함께 마시고, 위선자와 지식인..

봄비가 내려서 온 세상이 뿌옇게 흐려졌다.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데 창 밖 가로등의 불빛이 비에 막혀 반은 망막에 닿고 반은 세상으로 흩어진다. 안개비를 헤치고 집으로 돌아와 방문을 닫고 향불을 태운다. 향은 유교와 불교 의식에서 모두 올리는 것이지만 의미가 사뭇 다르다. 유교에서 향의 연기는 신이 내려오는 길이다. 향의 연기는 중력을 거슬러 하늘에 닿는다. 그 연기를 타고 신이 내려오는 것이다. 그래서 유교에서는 향을 함부로 태우지도 않고 또 그 향기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불교에서 올리는 향은 다르다. 향은 등, 꽃, 정수, 곡식과 함께 부처님께 올리는 다섯가지 아름다운 공양 중 하나이다. 향불은 연기를 남기고 연기는 향과 함께 공중에 퍼진다. 향은 실체가 없지만 동시에 공간을 가득 채우는 힘을..

기억

가끔씩 숨이 막힐 때가 있었다. 문장이 필요했다. 그럴 때면 학교 바로 밖에 있는 동방서적에 달려갔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 2번째 줄에 있는 서가의 중간 쯤 되는 칸을 뒤졌다. 거기에는 시집이 있었다.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한테 5000원 남짓한 시집은 밥 한끼 값으로 누릴 수 있는 몇 안되는 호사였다. 실천문학사,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사, 민음사, 미래사에서 나온 한국 대표 시인 100인선... 출판사 별로 꽂혀있는 시집들 사이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찾지 못하면 시인을 찾았다. 김남주, 함민복, 박노해, 박영근, 김용택, 도종환, 신경림, 이용악, 이성부, 이문재, 정호승, 한하운, 브레히트, 엘뤼아르, 네루다... 때로 운이 좋아 쿠폰을 많이 모으면 작은 시집 하나 정도는 손 쉽게 가질 수 있었..

근황 13.04.18

근황 13.04.18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봄이라서 어쩐지 설레이는 나날입니다. 요즘 월요일마다 서울대 규장각으로 출근을 합니다. 아침에 고등학생, 대학생의 무리에 섞여 출근을 하고, 오전부터 오후까지 자료를 봅니다. 날이 좋고 해가 길어 여섯시가 좀 못되어 일이 끝나도 시야가 밝습니다. 일을 마치면 긴 시간에 걸쳐 안암으로 돌아옵니다. 일이 끝나면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버스를 타고 노량진역으로 향합니다. 버스는 행정관을 출발해 정문을 지나 신림천을 따라 굽이굽이 난 도로를 따라 달립니다. 그러다가 보라매공원 쪽으로 방향을 틀어 노량진역에 도착합니다. 여기서 내려 버스를 갈아탑니다. 버스는 다시 한강대교와 노들섬을 지나 용산을 거쳐 서울역과 남대문을 통과합니다. 그리고 을지로를 지나쳐 동묘앞을 지납..

근황 13.04.13

근황 13. 04. 13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마음이 편한 나날입니다. 이제야 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제 하려는 이야기를 마음 편하게 하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아마도 한달간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시간만을 낭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나브로 다소 마음이 진정되고 이제는 새로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처음 논문 발표를 한 학기 미루기로 결정했을때 겉으로는 담담한 척 했지만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누구의 강요도 아닌 제 선택이었지만 그 동안의 힘든 생활을 지탱했던 끈이 끊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터널의 저 편에 보이는 빛이 끝인 줄 알고 달려왔는데 실은 가로등이었고 바깥 공기를 마시고 햇볕을 쬐고 싶다는 희망이 ..

혁명은 안단테로 - 김규항

혁명은 안단테로 사회주의는 이론이나 사상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인간 영혼의 가장 고귀한 감정의 항거에서 태어난다. 사회주의는 비참함, 실업, 추위, 배고픔과 같은 견딜 수 없는 광경이 성실한 가슴에 타오르는 연민과 분노와 만나 태어난다. 한쪽엔 호화, 사치가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엔 궁핍이, 또 한쪽엔 견딜 수 없는 노동이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엔 거만한 게으름이 있는, 이 터무니없고도 서글픈 대비에서 사회주의는 태어난다."(레옹 블룸) 연민은 자선을 낳고 분노는 싸움을 낳으며 다시 그 둘은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는 자선도 싸움도 별 소용이 없다는 깨우침을 통해 과학적 사회주의가 된다. 말하자면 사회주의란 '정서를 재료로 한 과학'이다. 현실 사회주의의 문제는 정서가 생략된 과학의 문제이기도 했다. 연민이나..

雜/남의 글 2013.03.29

둘러보자 - 김규항

둘러보자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이명박'의 퇴임연설은 아마도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파렴치함의 가장 특별한 사례로 기억될 것 같다. 너무나 파렴치해서 차라리 경외감마저 느껴질 지경이다. 그러나.. 저 파렴치한 인간을 욕하고 조롱하는 게 다라면 결국 우린 한 치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저 파렴치한 인간을 욕하고 조롱하면서 동시에 저 파렴치한 인간을 대통령으로 뽑은 게 누구인가에 대해, 저 파렴치한 인간을 대통령으로 뽑은 이유가 무엇이었던가에 대해 되새겨 봐야하지 않을까. 이명박은 화성이나 명왕성 출신의 지구침략자가 아니라 민주 시민들이 무려 5백만 표차로 뽑은 대통령이니. 난 이명박을 찍지 않았으니 당당하다, 할 사람이 있다면 이명박 대신 민주당에 대해 그렇게 해볼 수 있다.오늘 ‘동네북’이라..

雜/남의 글 2013.03.29

깨어있는 인민들 - 김규항

깨어있는 인민들 ‘차베스식 사회주의는 석유 덕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베네수엘라는 석유 덕에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이 가능하지만 한국은 석유가 없으니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반공주의자나 우파보다는 좌파, 사회주의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한다. 차베스식 사회주의가 석유 덕이라면 차베스 전에는 석유가 없어서 사회주의를 못했다는 말인가? 차베스 전이나 차베스 이후나 베네수엘라엔 석유가 있었고 석유로 인한 부가 있었다. 다른 건 차베스 전엔 그 부가 모조리 소수의 지배계급 차지였지만 차베스 이후엔 인민들에게 분배하고 또 인민들의 좀더 나은 삶을 위해 쓰는 것이다. 차베스식 사회주의는 석유가 없을 때도 지속되었다. 2003년 ‘석유 테러’, 즉 베네주엘라 기득권 세력과 미국이 혁명을 거꾸러트리기..

雜/남의 글 2013.03.28

과잉결정과 과소결정 - 알튀세르

.....(전략).....이 새로운 전체 속에서 작용하는 변증법이 전혀 헤겔적이지 않음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모순과 연관하여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만일 여러분이 맑스의 전체의 본성과 그 불균등성을 진하게 고려한다면 여러분은 이 불균등성이 필연적으로 과잉결정이나 과소결정이라는 형태 속에 반영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과잉결정이나 과소결정은, 어딘가 합법적인 존재를 끌어들이는 선행하는 모순에서 덧붙여진 것이거나 정해진 결정량의 가감이라는 용어법으로 사고해서는 안 된다. 과잉결정이나 과소결정은 순수한 모순에 대한 예외들이 아니다. 인간은 홀로 고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오직 사회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맑스가 말했던 것처럼, 그리고 단순한 경제적 범..

雜/남의 글 2013.03.14

국제주의인가 야만인가 - 최원

국제주의인가 야만인가 최 원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각의 진영으로부터 수없이 많은 제안들이 난무하고 있다. 여기서 사회당과 사회주의정치연합(가칭)으로부터 나온 제안이 논쟁이 묶여 있는 하나의 매듭을 형성하는 것 같다. '사회주의인가 사회민주주의인가?'라는 질문은 사회당 측이 주장하듯이 오랜 동안 소위 좌파 진영을 규정해 왔으며(정성훈, "경선 비판과 사회주의대통령 후보 추대"를 참조하라) 좌파진영의 연대 그 자체를 좌초시켜온 장본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당이 좌파진영을 분열과 반목 속으로 몰아넣은 과거의 똑같은 질문을 현시점에서 다시 제기하면서 "통일"좌파를 외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적인 것이다. 논쟁은 여기 묶여 있으며 그것에 연루된 사람들, 조직들은 그 매듭에서 결코 헤어나지 못한..

雜/남의 글 2013.03.14

알튀세르의 '최종심급' 개념

알튀세르의 '최종심급' 개념 - 최종심급- 지배 내 구조 처음부터 문제는 "모순들의 복잡성"이다. 모순들의 복잡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전체 구조 안에 특정한 방식으로 연루된 각각의 모순의 종별적인 실존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비록 모순들의 복잡성의 외양(즉, "과잉결정의 외양")을 생산함에도 불구하고 모순들의 복수성과 복잡성을 하나의 본질적인 모순으로 계속 환원하는 헤겔적인 변증법에 알튀세르가 의존한다는 것은 따라서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이로부터 변증법의 대상("헤겔에겐 관념의 세계, 그리고 맑스에겐 실재 세계"(Althusser 1993: 91-93))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변증법 그 자체와 그것의 구조에 있어서 맑스를 헤겔로부터 정교하게 분리할 필요가 생겨난다. 러시아의 정세 속에서 전개된 모순에..

雜/남의 글 2013.03.14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주주의 - 이종영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주주의 이종영ꋯ성공회대학교 연구교수/ 사회학 1. 고대 아테네에서 ‘데모크라시’는 ‘데모스’의 지배 또는 통치를 뜻했다. ‘데모스’가 ‘민중’으로 번역될 수 있는 한에서 ‘데모크라시’는 ‘민중의 지배’를 뜻할 수 있는 것이지만, 아테네에서의 ‘데모스’의 범주는 오늘날의 민중과는 큰 차이를 갖는 것이었다. 달리 말해, 아테네의 ‘민중’은 오늘날의 ‘민중’과 범위를 달리 하는 것이었다. 아테네의 ‘데모스’에는 여성, 노예, 외국인 체류자 등이 제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테네 인구의 4분의 3 이상은 ‘데모스’에서 제외된다. 따라서 고대 아테네에서의 데모크라시를 데모스의 지배라고 한다면, 그것은 엄밀히 말해 노예소유자계급 남성들의 지배를 뜻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대 아테네의 데모크..

雜/남의 글 2013.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