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북경 답사 1차

북경여행기 - 4일 (천단공원2: 황궁우,원구단)

同黎 2015. 9. 18. 00:58



이제 전시관을 나와 기년전을 나선다.


기년문 방향에서 바라본 기년전


북경의 마스코트가 될만큼 아름답다.


기단과 합쳐 45미터가 넘는 높이니 당시에는 빌딩 높이다.

하늘과 통하려는 마음이 잘 형상화된 이상적 건축이다.


저런 원형도 어떻게 잡았는지 궁금하다.


기년전을 나가다 보면 번시로(燔柴爐)라는 녹색 유리벽돌로 만든 화로가 있다.


설명문


이 번시로는 신에게 바쳤던 폐백, 즉 비단을 태우는 곳이다.


조선의 경우 영조 이전까지는 폐백을 정전 뒤 땅에 묻다가

영조의 명에 따라 조그만 화로를 만들어 태우기 시작했다.

이것보다 규모는 매우 작지만 비슷한 곳이 지금도 종묘에 있다.


특면

계단이 있어 올라갈 수 있도록 해놨다.


기년전의 정문인 기년문을 나선다.


기년문 너머로 보이는 기년전


기년전을 나오면 앞에 보이는 남천문(南天門)=성정문(成貞門)까지 긴 직선 길이 펼쳐진다.


길이 360미터에 이르는 이 벽돌길은 단계교(丹階橋)라고 한다.


단계교는 한백옥으로 3개의 길을 구분해놨다.

가운데에는 신이 다니는 신로이며 좌우로 황제가 다니는 어도, 왕공이 다니는 왕도가 있다.


멀리 황궁우의 북문이자 기년전의 남문인 성정문이 보인다.


여기서 뒤돌아 본 기년전 풍경



앞의 녹색기와 문은 남전문(南磚門)이다.


이 화려한 곳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지도상 구복대(具服臺)라 하여 황제가 제사 전 의관을 정제하는 곳인 듯한데 정확한지 모르겠다.


황궁우 북쪽으로 들어간다.


마침내 보이는 황궁우(皇穹宇)


여기서 돌아야 황궁우로 들어갈 수 있다.


방금 들어온 성정문


작은 글씨로 성정문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황궁우 전경


기년전과 마찬가지로 청색 원형 건물이지만 단층이다.


황궁우 정문으로 가는 길에 있는 측백나무


아홉 마리 용이 날아다니는 것 같아 구룡백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천단에 온 황제가 식수했다고 한다.


황궁우 남문

지금 조선호텔 뒤에 남아있는 원구단의 흔적인 황궁우의 남문도 이것과 비슷하다.

아무래도 천단은 아주 오랜만에 세워보는 것일테니 많이 참고했겠지


작지만 단아하고 정교해서 아름다운 느낌을 준다.


문 앞에 서 있는 정 모양의 향로


안에 들어가면 원형의 담에 둘러쌓인 황궁우와 동서배전이 나온다.


황궁우 전경

동그런 모양의 담에 둘러쌓여 있다.

앞의 기곡단이 사각의 담에 있어서 어느 정도 땅에 대한 제사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반면,

여기는 온통 원형뿐이다.



황궁우 정면

기년전과 건축기법은 비슷하지만 단층이다. 주변 건물과 조화를 일으켜 아주 단아한 느낌을 준다.

사방으로 계단이 나 있는 1단의 월대 위에 올라서 있다.


황궁우는 가정제 때 천지단을 분리시키고 천단을 확대하면서 세운 건물로

처음 이름은 태신전(泰身殿)이었으나 곧 황궁우로 바꿨다. 지금의 건물은 건륭제 때 중수한 것이다.

원구단에 제사지내지 않을 때 여러 신위를 모셔놓는 일종의 침전 역할을 하고, 작은 제사도 역시 지냈다.


황궁우의 조그만 벽은 회음벽(回音壁)이라고 불린다.


여기서 말한 소리가 반대편에서 들린다고 하는 속설이 있다.

여기서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로 경내가 시끄럽다.


황궁우 바로 뒤편의 벽


이제 황궁우 건물로 간다.


역시 가운데 답도에는 조각이 새겨져 있다.


훼손이 심한지 유리벽으로 보호 중이다.


황궁우 현판


동배전

태양(대명)과 북두칠성, 화수목금토의 오성, 주천대성(周天大聖) 등 별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서배전

달(야명)과 구름, 비, 바람, 뇌전의 신이 모셔져 있다.


황궁우에서 바라본 정문


회음벽


위에는 아름다운 남색 기와가 올려져 있다.

소리지르는 아줌마가 보인다. 아줌마 그쪽이 아니야.


황궁우 내부

가운데에는 황천상제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바닥 역시 반질반질한 대리석이다.


좌우에 있는 것은 역대 청 황제의 위패이다.


황궁우 안에 황천상제와 함께 역대 황제의 위패를 모심으로써

황제들을 국가의 신으로 승격시키는 효과를 가져온다.

조선의 경우에는 가장 높은 황천상제와 황지기의 신위 동남쪽에 조선 태조의 위패를 모셨던 바 있다.

천단에는 역대 명, 청 황제의 영정도 모셨는데 그것은 현재 대만고궁박물원에 가 있으며

대부분의 제기는 의화단 운동 와중에 8개국 연합군에게 약탈당했다.


황천상제의 위패

주변 기둥은 금박을 입힌 것이다.


황궁우 천장

역시 대들보가 없이 공포와 나무조각을 쌓아 올린 형식이다.


담 넘어 우리가 들어온 성정문이 보인다.



서배전 내부

가운데에는 달이 모셔져 있다.


좌우로도 여러 신위가 모셔져 있다.



서배전 처마

잡상이 올라가있다.


이제 원구단으로 간다.


황궁우와 원구단 사이에는 2개의 격자문이 있다.

패방 모양으로 생긴 한백옥 문이다.


우리로 치면 홍살문 정도 되겠다.


멀리 솟대같은 것이 보인다.


이제 두 번째 격자문을 통과한다.


문 너머로 원구단이 보인다.



이제 다 왔다.


격자문의 조각

돌을 조각해 끼어서 만들었다.


드디어 도착한 원구단

3단으로 이루어진 둥근 단이다.


위에서 바라본 원구단

둥근 단을 둥근 담이 한 번, 네모난 담이 또 한 번 감싸고 있다.

역시 천원지방을 형상화한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는 원구단이냐 환구단이냐 하는 논쟁이 있다.

圜자가 둥글 원, 에워쌀 환 둘 다로 읽을 수 있기 때문.

사실 원구단이라는 명칭이 더 정확할 듯한데 현재 한국에서는 환구단이라는 용어를 쓴다.

서울대 한모 선생님이 독립신문 기사에서 환구단이라고 쓰여있는 것을 발견하고 환구단이라고

강하게 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미로 봐서는 원구단이 더 적절하고 중국어 발음도

위안추탄으로 원구단으로 읽는 듯하다. 따라서 여기는 원구단이라고 하겠다.


원구단은 하늘에 지내는 제사인 원구제를 지내는 곳으로

제사를 지낼 때는 각 층마다 신위와 제수상이 설치되고 차양막도 쳐진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대한제국의 원구단 역시 구리로 만든 차양을 설치한 사진이 있다.

원구단은 규격에서 길이 높이 등 모든 부분에서 9의 배수를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천단의 난간 기둥석은 각각 108, 72, 36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층 바닥돌 갯수 역시 각각 360, 180, 4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3층의 45장은 구오지존(九五之尊)이라 하여 황제를 상징하는 숫자이다. 


대한제국의 기준에 따르면 원구제의 진설은 다음과 같다.


황천상제(皇天上帝)의 위(位)는 제1층 북동쪽에서 남향하여 있고 황지기(皇地祇)의 위는 북서쪽에서 남향하였다.

제2층 동쪽에는 대명(大明), 서쪽에는 야명(夜明)의 위가 봉안되었으며, 제3층 동쪽에는 북두칠성(北斗七星)·오성(五星)·이십팔수(二十八宿)·오악(五嶽)·사해(四海)·명산(名山)·성황(城隍)의 위와 서쪽에는 운사(雲師)·우사(雨師)·풍백(風伯)·뇌사(雷師)·오진(五鎭 )·사독(四瀆)·대천(大川)·사토(司土)의 위가 봉안되었다. 


청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세세한 차이는 있겠지만

황천상제와 일월성신, 명산대천이 모셔지는 건 같다.

조선의 경우 고려의 원구를 그대로 이어오다가 세조 이전에 중단된 것으로 보이며, 세조가 원구를

복원시키지만 곧 제후의 격에 맞지 않는다 하여 폐지되었다. 이후 갑오개혁 이후에나 설치된다.

원구단 자리에는 철도호텔, 현 조선호텔이 들어서면서 황궁우만 남았다.


원구단 위에서 바라본 황궁우


자금성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정갈함과 아름다움이 있다.

대칭의 미인가


숲이 있는 것도 한몫하는 것 같다.


격자문 두 개와 황궁우


제단 동남쪽에는 3개의 석대가 있다.

그 중 하나에는 아주 높은 솟대나 국기게양대 같은 것이 있는데, 망등(望燈)이라고 한다.


나는 청나라 전통의 솟대인가라고 생각했는데 저기에 불을 달아 매달았다고 한다.

중국측 설명인데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대부분의 제사가 새벽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뭐 아주 설명이 안 되는 말은 아니다. 근데 솟대 같은데...


이게 원구단의 가운데 돌인 천심석(天心石)이다.

잘 보면 천심석을 둘러싼 돌도 9장으로 되어있다.


이 천심석은 하늘의 기가 모인다는 이상한 속설이 있어

이렇게 다들 올라가서 하늘의 기를 받느라 수모를 당하고 있다.


중국인들 수로 생각해보면 몇 년 안에 닳아 없어질 것 같다.


영원히 고통받는 천심석

이 위에 올라가서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많은데 소리가 울린다고 하기 때문이다. 근데 말이 되나


원래 이곳에 황천상제의 신위가 모셔진다. 기준이 되는 곳이다.


베트남 천단은 석회로 지었던데 여기는 여튼 관리는 잘됐다.


이렇게 천단공원 답사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