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5차

기나 긴 일본답사기 - 13일 오쓰3 (미이데라三井寺 온죠지園城寺)

同黎 2019. 3. 26. 01:10



잠깐 식사를 하기로 한다.


아침부터 달렸더니 배가 고프다.

덴뿌라 소바


덴뿌라 우동


오야코동

뭐 이 집은 미이데라 바로 앞에 혼자 있는 독점식당이라

맛은 평균 수준


미이데라 인왕문

중요문화재


여기도 여러 번 왔다.



미이데라(三井寺, 삼정사)의 원래 이름은 온죠지(園城寺, 원성사, 온조지)로 천태사문종의 총본산이다.

본래 창건은 아스카시대 텐지천황의 손자이자 오토모황자(코분천황)의 아들인 요타왕이 임신의 난으로

죽은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해 텐지천황의 지념불인 미륵보살상을 모시고 지었다고 하며 텐무천황이

온죠지라는 이름을 내려줬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텐지, 텐무, 지토 세 천황의 탄생시 목욕물로 사용

했다는 우물이 있어 미이데라라는 이름이 더 유명하다. 발굴조사 결과 실제 아스카시대 유물이 발견되고

있고 과거 이곳이 도래계 일종인 오토모씨의 지역이었던 것으로 보아 오토모씨(전국시대 규슈의 오토모와는 별개)의 우지데라로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오토모황자의 이름도 이들과 관계가 깊은 것으로 생각한다.

이후 천태종 사찰이 되었는데 사이초의 손제자인 엔닌과 엔친의 갈등에서 이 절의 역사가 새로 쓰인다.


엔닌과 엔친은 모두 당나라에 유학해서 구카이의 진언종에 밀리던 천태종을 위해 밀교이론을 대거 수입해와 천태종을 중심으로 하는 태밀을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고 엔닌이 2대, 엔친이 5대 천태좌주에

오르게 되었다. 엔친은 오미네야마와 쿠마노 등에서도 수험도를 깊이 연구하였고 이후 이 곳 미이데라에

당에서 가져온 각종 법구와 책자들을 두었다. 그러면서부터 미이데라는 천태종 사찰로 바뀌게 된다.


엔친 사후 엔닌과 엔친의 문파가 나누어져 둘이 격하게 대립하는데 급기야 10세기 말에는

엔닌파 승려들이 엔친파 승려들의 숙소를 부수고 엔친파 문도들은 히에이잔을 내려가

미이데라를 거점으로 하게 되었다. 이에 엔랴쿠지는 엔닌파로 정립되면서 여기를 산문파,

엔친파는 미이데라를 중심으로 사문파가 되어 둘 다 승병을 길러 산문과 사문의 항쟁이

계속 일어나 서로 절을 태우고 승려를 죽이는 격돌이 중세에 50여 회 기록되고 있다.


어쨌든 이 곳은 황실과 귀족의 숭배를 받아 후지와라노 미치나가나 시라카와천황이 귀의해

장원을 기부했고 미나모토노 요리마사가 헤이케 타도를 거병할 때 겐지의 편을 들었고, 이후

가마쿠라막부의 후원을 받아 번성하게 된다. 남북조시대에도 북조 편을 들어 무로마치막부의

후원을 받았는데 이런 막부 측의 환대는 강력한 무장 세력이었던 엔랴쿠지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보인다. 이후 오다 노부나가가 엔랴쿠지를 토벌할 때 미이데라는 멀쩡했다.


그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미이데라를 폐사시키는데, 그 이유는 정확치 않다. 불상들은 보존했으나

금당은 헐려 재건되는 엔랴쿠지로 옮겨져 현재 서탑의 석가당이 되었고 다른 건물도 철거되었다.

이후 히데요시의 사망 직전 재건이 허가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대대적으로 후원해서

현재의 가람을 이루게 되었다. 이후 천태사문종의 총본산이 되어 지금까지 이어진다.


이곳에는 엔친이 직접 실견했다고 하는 황부동명왕상과 엔친의 목상 2개, 신라선신상 등의

국보 비불이 많은데 보기가 심히 어렵다. 특히 황부동명왕도는 본래 관정을 받은 승려에게만

배관이 허락되다가 전후 재가신자도 결연관정이라는 의식을 치루고 볼 수 있게 했는데

2014년인가 2015년인가 공개될 때 결연비로 1만엔을 받아서 보지 못했다.


인왕문

15세기의 건물로 본래 호남(시가현 남부)의 조라쿠지 건물인데 이에야스가 옮겨온 것이다.

중요문화재


오늘 목적은 국보 광정원 객전을 보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곳은 간단하게 지나간다.


너무 많이 왔기 때문


석가당

궁정 청량전으로 쓰던 건물로 본래 식당이었다.


광정원 가는 길

국보로 지정된 권학원과 광원 객전은 미이데라 홈페이지에서 배관 예약을 할 수 있다.

근데 현재 둘 다 공사 중이라 2020년 이후에나 볼 수 있다고 한다.


다 왔다


입구


안내문


원 정원은 명승

과거 미이데라의 자원인데 현재는 그냥 본사와 통합돼서 운영되고 있다.


명승 표석


정문은 닫혀있다


고리를 통해 들어가려는데 사람을 불러도 답이 없다.


담 너머 보이는 서원


사람이 없어 일단 들어가고 본다.


무로마치시대 후기의 건물로 야마오카 도아미가 헌정한 것이다. 무로마치~모모야마시대

서원조 건물 중 대표적인 것으로 안에는 후스마에가 있으나 현재 분리되어 보물관에 보관 중이다.


정원

역시 모모야마시대에 조성된 것


구경은 하는데 사람이 없네


뒤쪽 정원


도비라에


뭔가 이상해서 사무소에 가니 우리는 분명 접수를 했는데 절 쪽이 착각해서 까먹었다고 한다. 미안하다고

하며 어쩔까해서 뭐 볼 것 다 봤고 한 번에 600엔이나 하는 배관료도 부담이기에 그냥 가겠다고 했다.

금당. 히데요시의 유지로 부인 네네가 재건한 것으로 모모야마시대의 대형 건축물이다.


내부 불단 뒤편에 여러 불상이 전시 중

십일면관음, 헤이안시대


부동명왕이동자상


금당 전경


안내문


금방 지나간다

벌써 다리


삼층목탑은 중요문화재로 히데요시가 나라의 절에서

후시미성으로 옮겨놓았던 걸 다시 이에야스가 이 곳에 기증했다.


당원 안내판


이 곳은 엔친이 당나라에서 유학하며 가져온 사보들을 놓은 곳으로

대사당, 관정당, 당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중요문화재


당원 사각문 앞에서 바라본 금당


과거 자원이었던 곳을 고친 찻집에 잠시 왔다.


센차를 시켜 마시는 중


미이데라는 본래 광원만 목적이었기에 금방 나간다.


서둘러 다음 장소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