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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 긴 일본답사기 - 40일 교토 라쿠난3 (이마쿠마노칸논지今熊野観音寺·카이코지戒光寺·소쿠조인即成院)

이제 센뉴지 경내 탑두에서 납경을 받으러 간다. 이마쿠마노칸논지 방향 가는 길에 들린 젠노지(善能寺, 선능사) 구카이가 절을 지키는 이나리신을 모시면서 지은 절이었다고 하며 신불분리로 황폐화된 것을 재건하였다.지금 건물은 1971년 발생한 항공사건인 반다이호 추락사고 유족들이 기증한 것이라고 경내에는 성관음을 모신 작은 건물이 있다. 이제 다시 건너가는 중라이고인 입구 삼보황신을 모시는 곳이지만 평소에는 불상을 공개하지 않는다. 지나쳐서 아래로 내려가면 궁내청 사무소가 나온다. 이곳에 몰려있는 능묘를 관리하기 위한 사무소 지나치면 다리가 보이고 이곳이 이마쿠마노칸논지 다리를 건너 들어간다. 이마쿠마노칸논지(今熊野観音寺, 금웅야관음사)는 센뉴지의 탑두로 구카이가 귀국하고 나서 이곳에서빛이 나는 것을 보고 ..

기나 긴 일본답사기 - 40일 교토 라쿠난2 (센뉴지泉涌寺)

센뉴지 오르막을 오르기 싫어서 택시를 타고 올라간다. 돈지랄이지만 너무 힘들었다. 대문중요문화재에도막부에서 고미즈노오천황의 즉위식에 맞춰 어소의 문을 새로 지으면서 과거의 문을 이축한 것이다.모모야마시대 2차 여행기http://ehddu.tistory.com/53 5차 여행기http://ehddu.tistory.com/722 12차 여행기https://ehddu.tistory.com/1493 https://ehddu.tistory.com/1494 센뉴지(泉涌寺, 천용사)는 진언종 천용사파의 대본산으로 황실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사찰로 유명하다.헤이안시대에 창간되었다고 전해지지만 실제로는 가마쿠라시대 슌죠의 재건이 실질적 창건으로 보인다.슌죠가 송에서 유학하고 온 후 율학을 공부해 진언종의 계율을 강화하..

기나 긴 일본답사기 - 40일 교토 라쿠난1 (도후쿠지東福寺·도주인同聚院)

아침이 밝았다그래도 숙소가 바로 옆인데 도후쿠지는 가보기로 한다. 이왕문을 지난다 역시 단풍의 명소사람 봐라 안쪽으로 쭉쭉 들어간다. 들어가다가 오랜만에 도주인(同聚院, 동취원)을 들어가기로 5차 여행기https://ehddu.tistory.com/723 도주인은 도후쿠지의 탑두로 무로마치시대에 건립되었다. 본래 도후쿠지 자리에 있었던후지와라노 미치나가의 사찰이었던 홋쇼지의 오대당 본존이었던 부동명왕상이 있는 곳으로 유명 좌상인데 엄청난 크기의 불상이다. 압도되는 분위기의 명작이다.귀족화된 불교가 낳을 수 있는 명작이라고 생각된다. 아쉽게도 하반신은 오래되어 소실된 것을 후보하고 상반신은 헤이안시대 본래의 모습이다.중요문화재 다시 도후쿠지 본사로 간다. 마침내 나타난 와운교 멀리 보이는 도후쿠지 삼문 언..

예술의 전당 추사전

어제 일이 있어 예술의 전당에 자료 조사를 갔다가 그곳 서예박물관에서 열리는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라는 전시에 다녀왔습니다.본업이 사찰에 있는 고서와 고문서를 조사하는 것인데, 요새 해남 대흥사를 조사 중이라 이래저래 추사의 글을 볼 일이 많습니다. 하는 일에 연관도 있고 또 지금은 관뒀지만 서예와 전각을 취미로 한 일도 있어 관심이 가는 전시였습니다. 중국국가미술관에서 열렸던 추사 김정희와 옹방강, 완원 등 당대 청나라 문인과의 교류를 중심으로 하는 전시의 귀국 기념전인데, 개인 소장으로 그 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유물이 많아 매우 흥미롭고 또 재미있는 전시였습니다.본래 저는 전시를 보면 꼭 도록을 사고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진 않지만 도록이 무려 6만원이나 하는 걸 보고 몇개 마음에 드는 것만 사..

雜/무제 2020.02.08

공허했던 사나이. 도요토미 히데요시

히데요시의 정실 부인이 모시던 그의 초상화. 중요문화재 올해 마지막 밤입니다. 관례에 따라 화로를 봉하고 하루 차를 쉬어가려고 합니다. 제석에는 화로를 닫고 새해 원단에 처음 물을 끓이는 初釜를 기다리며 오늘은 쓰던 원고의 거의 마지막을 다뤄보려고 합니다.일본의 다인들은 대부분 이상하리마치 불행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다성 센노 리큐는 히데요시의 명을 거역하여 강제로 할복을 당했으며 그의 제자들 역시 대부분 불행한 생을 살았습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동생으로 승려가 되어 히데요시의 의심을 피했던 오다 우라쿠사이, 노부나가에게 반란을 일으켜 숨어 살다가 그의 사후 자신의 이름을 똥을 뜻하는 도훈으로 바꾸고 히데요시 밑에 살아남은 아라키 도훈, 스승 리큐의 뒤를 잇지만 도요토미가를 도왔다는 의심을 사서 도쿠가와..

雜/무제 2020.02.08

다부(茶釜)의 보물창고. 오니시 세이에몬 미술관

교토 산조의 가만자초(釜座町)에 가면 지금도 다도용 솥을 파는 가게들이 많습니다이름도 다 못 외울 정도로 많지만 문을 연 가게는 하나도 없습니다.대부분 고가의 신품 다부는 소개장과 예약을 통해 팔리기 때문에 지나가는 행인이 들어올 일이 없죠. 그래서 대부분의 가게가 내부를 보여주지 않고 숨어있습니다. 사실 텐메이의 대화재 이후 많은 부사(釜師)들이 가게를 읽어 절반 이하로 줄었고 지금은 교토의 높은 땅값 때문에 공장은 대부분 외곽으로 옮긴 상태입니다. 그렇게 큰질에서 가만자초의 안쪽으로 쭉 들어가면 가장 끝의 집이 나옵니다 이곳이 교토 제일의 부사 오니시(大西) 가문의 저택과 거기에 딸린 오니시 세이에몬 미술관이 있는 곳입니다.오니시 가문보다 오래된 부사 가문이 교토에는 여럿 있습니다. 센노 리큐보다 먼..

雜/무제 2020.02.08

명장이 된 기와장인 - 라쿠다완 이야기

교토에 가면 라쿠미술관(楽美術館)이라는 미술관이 있습니다.처음 가는 분들은 찾기가 쉽지는 않은데 근처에 지하철역이 좀 멀리있고, 미술관 자체가 주택가 안쪽에 있기 때문입니다.크기가 크지 않기 때문에 거의 천엔에 가까운 비싼 입장료에 불만을 토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일본 다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성지에 가까운 곳이고 봄에 가면 직접 다완을 손에 들고 감상하고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작지만 손님들이 끊기지 않은 곳이며 교토시에서도 대표 미술관 중 하나로 손꼽는 곳입니다. 즐거울 락자를 쓰는 이 미술관의 이름은 교토를 대표하는 다완 라쿠야키(楽焼)와, 이 라쿠야키를 대대로 만드는 라쿠가문(樂家)의 이름에서 따온 곳입니다.현재 라쿠다완을 만드는 인물들은 많지만 그 예술성을 인정..

雜/무제 2020.02.08

명나라의 멸망과 일본 차문화의 변화

*일본 나가사키의 중국 사찰. 숭복사(崇福寺) 산문 나가시키는 에도시대 3백년 간 일본의 유일한 창구였습니다.본래 일본의 항구는 하카타항 즉 지금의 후쿠오카시입니다. 그러나 천주교 신자들이 일으킨 반란 등을 겪은 에도막부는 하카타에 조선통신사의 상륙만 허가하고 모든 외국인은 나가사키에만 출입하게 합니다. 덕분에 후쿠오카는 한동안 무역창구로서의 명성을 잃어버리고 대신 나가사키가 그 역할을 대신합니다.후쿠오카의 하카타항은 시모노세키를 통해 오사카로 향하는 세토 내해의 출입구였기 때문에 대신 규슈 서부에 치우쳐져 있고 나가사키만과 반도로 복잡하게 얽혀있어 수비에 유리한 나가사키가 무역항이 된 것입니다. 대만과 류큐(오키나와)를 거쳐 규슈로 오는 남중국인과 서양인 중 유일하게 일본과 교역이 허락된 네덜란드인들이..

雜/무제 2020.02.08

신공황후를 찾아서

규슈국립박물관 후쿠오카지역의 전통 행사 마츠리에 쓰이는 거대한 장식 수레 오랫동안 일본을 다니면서 꼭 찾아다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바로 일본 임나일본부의 주인공인 신공황후입니다.일본서기에 보면 신공황후는 백제를 침범한 신라와 가야를 바다를 건너 격퇴하고 그곳에 일종의 식민지를 건설했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지금이야 한일 양국 역사학계에서 모두 일본서기의 조작으로 치부하는 사실이지만 일본에는 의외로 신공황후를 신으로 모시는 곳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신공황후에 대한 일본인들의 신앙은 적어도 제국주의시대 이전까지는 삼한 정벌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임나일본부 같은 것도 오래도록 잊혀져 있었던 것이고 단지 아주 옛날 우리를 지켜줬던 여신, 여걸 정도로 인식했던 것이죠. 무엇보다도 신공황후는 바다를 지켜주..

雜/무제 2020.02.08

나가사키에 다녀와서

나가사키에 다녀왔습니다.일본 천주교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천주교 나가사키 대교구를 취재다녀왔습니다.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한국인 여행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만석이었던 인천발 후쿠오카행 비행기는 만석이 아니고그나마 절반은 한국을 오가는 일본인 관광객이 차지했습니다.한국인 관광객은 찾아보기 힘들고 중국인이 대부분입니다. 한국인이 있어도 서로 외면하기 바쁩니다. 나가사키는 부산이나 여수처럼 산과 언덕 사이에 지어진 도시입니다.도시 중앙에는 니시자카라고 하는 언덕이 있습니다.이 언덕은 일본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 26명인 순교한 장소입니다.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천주교 확산을 막기 위해 시범조로 26명을 이곳에서 십자가형에 처합니다.이후 도쿠가와 정권은 천주교를 정면 금지하고 수 많은 천주교 신자들은..

雜/무제 2020.02.08

부사(釜師)의 역사 3-1. 리큐와 그 후예들1

3. 리큐와 그 후예들센노 리큐가 교토에서 츠지 요지로와 니시무라 도닌, 나고시 죠미 등의 부사들에게 자신이 디자인한 솥을 만들게 하면서 쿄가마(京釜)의 시대가 활짝 열림. 이후 이들의 후손, 분가, 제자 들이 각자 일가를 이루면서 다양한 형태의 차가마가 만들어짐. 3-1. 리큐 시대의 차가마와 풍로 리큐가 정리한 것은 솥뿐만 아니라 풍로와 로. 풍로의 경우 기존의 귀면풍로뿐만 아니라 조선풍로, 봉황풍로, 유구풍로 등 다양한 풍로가 생김. 특히 딱 맞춤만 가능한 귀면풍로 대신 입구가 넓어 사실상 로용 가마도 풍로에 사용할 수 있게 됨. 나츠메풍로의 등장은 기존에 신나리가마(진형부) 등 일부 가마만 사용할 수 있었던 풍로 다도의 판도를 변화. *로(炉): 본래 다다미 마루 중간에 설치하여 불을 피우는 난방..

雜/무제 2020.02.08

부사(釜師)의 역사 2: 교토 산조 가만자초(三条 釜座町)

2. 교토 산조 가만자초(三条 釜座町) 결국 고중세 일본 문화의 중심은 교토. 무로마치시대 16세기부터 교토의 산조에 막부와 귀족들의 취미생활을 위한 고급 공인들이 모여들었고, 그 중 부사들이 모여 차가마를 만들던 마을인 가만자초(釜座町)가 등장. 이들은 아시야와 텐묘 두 지역 차가마의 특징을 모두 배워와 다양한 차가마를 생산. 이후 다도 육종(茶道六宗)이라도 불리는 타케노 조오(武野紹鴎), 센노 리큐 등에 의해 채택되고,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유력 무사들의 전용 부사(釜師)들이 탄생하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위치를 점함. 2-1. 니시무라가(西村家)와 나고시가(宮崎家) 니시무라가와 나고시가는 전통적으로 교토에서 주조 산업에 종사하던 공인 집안. 본..

雜/무제 2020.02.08

부사(釜師)의 역사 1. 아시야와 텐묘

부사(釜師)의 역사*첨부 사진은 2016년 미호뮤지엄 전시도록, 2014년 센오쿠하코쿠칸 에서 가져왔습니다. 1. 아시야(芦屋)와 텐묘(天命)부사(釜師, 가마시)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1595년 도요토미 히데요시 지배 하의 모모야마 시대. 그러나 이 시기는 부사가 다른 금속 주조 공인과 분리되어 예술가로서의 성격을 부여 받은 때이고 실제로는 중국에서 차문화가 급격히 유입된 가마쿠라시대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임. 가마쿠라시대 후기인 14세기부터 차를 위한 솥을 만드는 곳으로 유명한 곳은 서일본의 아시야(芦屋)와 동일본의 텐묘(天命) 2곳. 이 2곳이 이후 모둔 일본 부사들의 조상이 되는 고장. 현재 일본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차가마(茶釜) 9점 중 아시야가마가 8점, 텐묘가마가 1점. 1..

雜/무제 2020.02.08

사철과 화선

화선 차가마 (연구부, 은제 부환 첨) 인간국보 카쿠타니 잇케이 작 사철 가마(청해파문 조구부)2대 카나모리 에이사쿠 작 사철 가마 (회오리문 사방부)한냐 칸케이 작본인 소장 1. 철의 종류철은 순수하게 존재하는 경우는 없고 탄소, 규소, 망간, 인, 황의 분술물을 함유그중 무엇보다도 탄소의 함유가 없는 철을 사실상 쓰기 어렵기 때문에 탄소를 함유한 탄소강의 상태로 대부분 활용 1) 탄소의 함량에 따라순철 - 연철 - 강철 - 선철(주철)순철: 탄소가 거의 없는 순수한 철연철: 탄소 함유량이 0.2% 이하강철: 탄소 함유량이 1.7~2% 이하선철(주철): 탄소 함유량이 1,7~6%사실상 순철과 연철은 사용하지 않고 강철과 선철(주철)만 사용가격은 강철이 선철에 비해 압도적으로 저렴 탄소 함유량이 많을수록..

雜/무제 2020.02.08

기나 긴 일본답사기 - 39일 카츠라기 (다이마데라當麻寺)

오늘의 마지막 답사지인 다이마데라 3차 여행기 http://ehddu.tistory.com/284 http://ehddu.tistory.com/288 6차 여행기http://ehddu.tistory.com/998 http://ehddu.tistory.com/999 13차 여행기https://ehddu.tistory.com/1641 https://ehddu.tistory.com/1642 다이마데라(當麻寺, 당마사)는 나라시대 이전부터 존재하던 고대 사찰로, 이 지역에 살던 다이마씨의 우지데라로 시작했다. 다이마씨는 오와리씨, 하리마씨 등과 인연이 깊으며 신공황후의 외가 계통으로 전한다.신라계일 수도 있다. 본래 다이마는 나니와와 아스카, 나라를 이어주던 통로였으며 동시에 무덤의 석실재료인 응회암의 산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