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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흠, 19세기 전반 세도정치의 형성과 정치운영

19세기 전반 세도정치의 형성과 정치운영 (김용흠,『한국사연구』132, 19) 토론문 김용흠의 본고는 19세기 세도정치의 원류를 찾고, 그로부터 세도정치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밝혀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사회경제적 변동으로 성장한 신분, 혹은 도태된 신분들의 불만이 나타나는 가운데, 변통론과 의리론을 중심으로 한 세력들이 대립하였고, 변통론에 영향을 받은 왕은 국왕 중심의 탕평정치를 시도하였으나 궁극적으로 주자학적 의리론을 부정하지 않아서 정조 사후 대반격으로 실학파를 비롯한 개혁파들이 제거당함으로써 결국 탕평정치의 부정적 유산이 세도정치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논문의 대략을 그림으로 나타내면 아래와 같다. 변통론·탕평론의 계보 (진보)조광조 - 이이 - 이귀·최명길 - 박세당..

書/논문 2012.12.16

권오영, 19세기 초 안동유림의 유회와 활동

19세기 초 안동유림의 유회와 활동 1. 머리말19세기 초 세도정치기 소수 특정 가문을 제외한 유림들은 재야 세력으로 남게 되면서 중앙 정치세력으로 참여하지 못하였다. 그러다 보니 재야 유림들은 향촌사회에서 학계와 사회적 주도권을 잡기 위해 호락논쟁·병호시비 등의 갈등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 중 영남 유림들은 병호시비·한려시비·청회시비 등 유림시비와 각 문종의 종통시비, 적서갈등 등 첨예한 대립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안동유림은 크게 서애학맥과 학봉학맥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학봉학맥은 17세기부터 19세기 중엽까지 이현일·이사정·유치명 등을 중심으로 큰 학단을 형성하고 있었다. 19세기 초 안동 동부 유림은 유범휴의 주도 아래 이상정의 학통으로 결속하였고, 김시온을 추모하는 사업을 벌이며 더욱 결속을 다졌..

書/논문 2012.12.10

오영교, 「17세기 향촌대책과 면리제의 운영」, 東方學志85, 1994.

오영교, 「17세기 향촌대책과 면리제의 운영」, 東方學志85, 1994. 박세연 오영교의 본고는 임진왜란 이후 국가재조론의 관점에서 국가가 재지사족의 지방자치적 성격을 억누르고 지방 군현을 장악하기 위하여 面里制를 강화시키는 모습과 그 과정에서 面任·里任의 기능이 어떻게 수행되고 있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임진왜란 이전부터 조선은 공식적으로 법전에서 면리제를 채택하였으나 실제로는 고려의 유제인 任內가 잔존하였고 자연촌을 중심으로 재지세력에 의하여 지방 말단단위가 장악되어 있었다. 수령은 재지세력 특히 사족의 도움 없이는 임지를 장악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복구를 위한 국가재건책이 강력하게 추진되고 생산력의 발달과 그에 따른 村의 성장, 행정단위로서 面의 실물화, 民의 의식 향상에 힘입어..

書/논문 2012.10.21

한명기,「19세기 전반 반봉건 항쟁의 성격과 그 유형」,『1894년 농민전쟁연구』2, 역사비평사

한명기,「19세기 전반 반봉건 항쟁의 성격과 그 유형」,『1894년 농민전쟁연구』2, 역사비평사. 석사5 박세연 19세기는 중세의 정치사회적 틀이 무너지고 새로운 이행이 모색되던 시기이다. 18세기 집권세력에 의해 어느 정도 체제 내부로 흡수된 반체제적 움직임은 19세기 벌열정치로 두터워진 사회적 장벽 때문에 폭발하였다. 이러한 추세는 홍경래의 난, 1862년 농민항쟁, 1894년 농민전쟁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민중세력의 저항은 봉건체제의 해체를 촉진하였다. 본고에서는 그동안 주목되지 못했던 크고 작은 항쟁들의 유형과 단계, 성격을 규명하여 19세기 전반의 항쟁들이 점차 진전되어 가는 모습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19세기 전반은 조선후기 이래 사회경제적 발전과정에서 생겨난 모순들이 다양한 형태로..

書/논문 2012.09.09

정석종, 「숙종조의 사회동향과 미륵신앙」,『조선후기사회변동연구』, 1984, 일조각.

鄭奭鍾, 「肅宗朝의 社會動向과 彌勒信仰」,『朝鮮後期社會變動硏究』, 1984, 일조각. 숙종연간의 釼契·殺主契사건이나 미륵신앙사건은 그간 학계에 잘 보고되지 않았다. 이는 조선후기 사상사의 변화를 유학의 변화에만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며 불교, 도교와 민간신앙의 변화에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조선후기 정치사를 당쟁사로만 파악하고 당쟁의 이해도 사건 전말의 기술에 그쳐 당쟁의 사회사적 성격은 규명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관찬사료에만 집중하여 민간에 대한 사료 발굴에 소홀하였기 때문이다. 본고는 이상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 서술되었다. 인계와 살주계는 대만의 정씨정권이 조선으로 쳐들어 올 것이라는 이른바 왜서사건으로 시국이 혼란한 틈을 타 주인을 죽이거나 양반 여성을 겁탈하는 사건을 통해 드러나..

書/논문 2012.09.03

고석규, <19세기 전반 향촌사회 지배구조의 성격: 수령-이`향 수탈구조를 중심으로>, <<외대사학>>2

첫째, 이·향층에 편입될 수 있는 요호부민과 그렇지 못한 요호부민의 차이점은 어디서 기인하는가? 같은 요호부민층이 어떻게 분절되어 수령과 결탁할 수 있는 측과 그렇지 못한 측으로 나누어질 수 있는가? 만약 요호층의 이러한 분열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경제적 측면보다는 경제외적 강제에 의한 것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필자는 요호층이 분리되는 경제외적 강제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고 있다. 둘째, 19세기의 이·향층은 과거의 향리계층과 분절성을 강하게 가지는가? 필자는 조선후기에 고려부터 이어진 土姓의 吏族이 약화되고 양민층 출신의 假吏가 급격히 늘어나서 기존의 향리층을 대신하였다고 서술하고 있다. 조선후기 가리층의 수가 증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새로운 세력이 假吏로 등장하였다고 했을 때, 이것이 필자의 주..

書/논문 2012.07.28

윤용출, 「15·16세기의 요역제」, 『부대사학』10

윤용출, 「15·16세기의 요역제」, 『부대사학』10 박세연 요역은 민의 노동력을 무상으로 징발하는 수취제도로 전세, 공납과 함께 민호의 사유지에 부과되는 세몫의 하나였다. 요역은 노동력을 징발한다는 특징 때문에 군역·신역과도 관계를 맺고 있었고, 지방에서는 공물·진상의 마련, 생산, 운송이라는 문제 때문에 공납제와도 깊은 관련을 맺고 있었다. 그러나 요역은 민호를 대상으로 하는 戶役이었지만 군역은 특정의 인신을 대상으로 부과하는 身役이었기 때문에 노동력 징발의 기준과 방식에서 요역과 군역은 구별되는 것이었다. 요역은 雜役·雜徭·所耕雜役·戶役·力役·賦役 등의 용어로도 표현되고 있다. 雜役·雜徭라는 단어는 요역이 지방의 여러 조건과 사정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을 띄며, 지방의 필요에 따라 수시로 차역하고 징..

書/논문 2012.07.28

프랑스의 한 마을을 통해 본 중세유럽

가장 일반적으로 역사를 배우는 방법은 어떠한가? 보통 우리는 시대순으로 각 시대에 일어나 굵직한 정치사를 중심으로 역사를 파악하며 공부한다. 사람은 본래 어떠한 것이든지 일반화시키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큰 것을 중심으로 정리하여 익히는 것이 이해하기도 쉽고, 인관과계를 설정하기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후 맑스의 공헌으로 경제사가 역사 이해에 필수적이 되었으나 여전히 역사의 하나의 법칙으로 설명하거나, 계량화를 통해 일관적인 경향을 찾아내려는 방식에는 변화가 없었다. 이러한 식의 역사 연구는 분명 역사학이 호사가들의 이야깃거리나 신의 의지를 설명하는 도구에서 벗어나 사회구조를 설명하는 하나의 과학(科學)으로 발전하는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한 편으로 이론의 범람은 역사학의 가장 근본적인 조건인 실증(..

書/서평 요약 2012.07.27

양안의 연구 (김용섭,『사학연구』7·8, 1960)

양안의 연구 (김용섭,『사학연구』7·8, 1960) 토론문 김용섭의 본고는 한국사에 있어서 내재적 발전론의 가장 대표적인 저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본고에서 이야기하는 내재적 발전론의 가장 큰 특징은 농가, 농업, 농민의 문제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중세사회의 해체기인 조선후기 이루어졋던 내재적 발전의 원동력이 民으로부터 말미암았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인류사의 보편적인 발전단계” 중 하나인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 즉 국가의 통치력이 사실상 해체되고 신분제가 동요되면서 피지배계층이 성장하고 그들의 주도에 의해 근대가 열리게 된다는 세계사적 흐름이 조선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김용섭이 연구한 경제사는 조선이 중앙집권국가였음을 인정하고 국가재정..

書/논문 2012.07.24

조선시대 정치적 갈등과 그 해결 (이태진,『조선시대 정치사의 재조명』, 1985)

조선시대 정치적 갈등과 그 해결 (이태진,『조선시대 정치사의 재조명』, 1985) 요약발제문 1. 인간의 정치적 동물로, 인간의 정치적 행위는 역사의 동력이다. 이는 한국사에서도 예외일 수 없는데, 우리는 정치사에 대하여 매우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는 정치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그르치는 문제이다. 사화와 당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당연시되고 있지만, 그러한 인식이 생긴 배경은 민족사에 대한 반성보다는 일제의 고의적 작위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즉 식민사관이 식민통치의 정당화, 영속화를 위해 한민족의 민족성을 당파적이라고 규정지으면 사화와 당쟁을 본보기로 든 것이다. 때문에 재검토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2. 기존의 연구에 의하면 16세기 ~ 17세기 전반기는 왕조 초기의 통치 기반이 무너져 ..

書/논문 2012.07.24

인조대 정치세력의 동향 (오수창, 『한국사론』13, 1985)

인조대 정치세력의 동향 (오수창, 『한국사론』13, 1985) 요약발제문 1. 머리말 조선 중기 이후 정치사의 가장 특징은 붕당정치이다. 현재까지 인조대에 대한 연구는 당쟁에 대한 개설적인 연구의 일부로 행해졌고, 당쟁의 일반적인 체계화나 각 붕당의 계보화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았다. 붕당은 학통이라는 기반 위에 지연, 혈연이 더해지며 생긴 것으로 단순한 권력투쟁이 아니라 학문, 정책의 대립과 더불어 일어난다. 따라서 모든 정치적 대립은 당색에 의한 것으로만 파악할 수는 없으며 붕당이 중요한 정치적 변수이기는 하지만 그때 그때 다른 요인을 종합하여 고려해야 한다. 때로는 다른 요인이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따라서 조선중기 이후 정치사를 연구할 때는 전통적인 붕당이라는 변수와 그 외 다른 요인에 ..

書/논문 2012.07.24

李基白,「高麗 貴族社會의 形成」,『한국사』4, 국사편찬위원회, 1974.

李基白,「高麗 貴族社會의 形成」,『한국사』4, 국사편찬위원회, 1974. 조선후기 석사3 박세연 1. 成宗代의 政治的 支配勢力 고려 초기 사회는 호족연합형태에서 귀족사회로 발전해갔다는 점은 대체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나 그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나지는 않았다. 본고에서는 10세기 말에 있어서의 귀족사회 형성과정에 초점을 두고 살펴보도록 하겠다. 고려 건국에 호응한 호족세력과 개국공신은 光宗으로 인하여 억압 받아 거의 뿌리가 뽑혔다. 최승로는 “살아남은 舊臣이 40여 명뿐이다.”라고 하였다. 광종은 대신 후백제·발해 출신 등 새로운 인물들을 등용하였다. 광종 사후 景宗이 복수를 허락하면서 광종의 개혁에 참여했던 인물들이 제거되었다. 광종이 죽은 후 개국공신계열이 再登用된 것으로 보인다. 荀質 ·申質·崔知夢(90..

書/논문 2012.07.23

토마스 바필드, 『위태로운 변경』, 2009, 동북아역사재단

토마스 바필드, 『위태로운 변경』, 2009, 동북아역사재단 서평. 한국사학과 조선후기전공 석사4 박세연 토마스 바필드(Thomath J. Barfield)의 『위태로운 변경』은 유목제국과 만주, 중원의 역사를 상호작용을 통한 규칙적인 순환구조로 설명하였다. 이 순환구조는 간략하게 아래와 같이 정리된다. 유목제국과 중원제국의 흥기와 멸망은 거의 같은 시기에 일어난다. 즉 중원제국이 흥기하면 여기로부터 교역과 강탈을 통해 세력을 키워야 하는 유목민족 역시 흥기하여 초원제국을 이루고, 중국제국을 지속적으로 침략하여 평화협정에 드는 비용이 침략을 방어하는 비용보다 적게 든다는 사실을 중원제국이 깨닫게 하는 외부변경전략을 시행한다. 그러나 초원제국 내부의 분열이 일어날 경우 유목민족 중 한 집단이 중원의 후원을..

書/서평 요약 2012.07.23

Pamela Kyle Crossley, 1997, The Manchus, Blackwell Publishers

Pamela Kyle Crossley, 1997, The Manchus, Blackwell Publishers 한국사학과 조선후기사 전공 석사4 박세연 파멜라 크로슬리의 The Manchus는 청을 비한족이 한화된 국가로 혹은 “만주족의 청”으로 보는 시각에 모두 반대하며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지배층에 의해 다스려지는 제국으로 해석하고 있다. 저자는 청을 19세기 근대적 민족국가 수립을 위해 활동했던 중국의 민족주의자들이 만든 이미지를 그대로 받아들여 청 지배층이 한화되었다고 평가하는 기존 서구 학계의 해석에 반대한다. 동시에 만주인의 정체성이나 문화가 고유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전통적인 혹은 원래의” 만주인 정체성이 없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저자에 의하면 그것은 1630년대..

書/서평 요약 2012.07.23

붕당정치론 비판 (김용덕,『정신문화연구』9, 1986)

붕당정치론 비판 (김용덕,『정신문화연구』9, 1986) 요약발제문 1. 서언 변태섭교수가 최근 한국사통론을 저술하면서 소장학자 이태진의 붕당정치론을 받아들였다. 근데 붕당정치론이 성립하려면 그 성립기인 선조대에 붕당은 상대세력과의 공존과 상호비판·견제를 원리로 해야 하며 기축옥사 같은 역옥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변태섭은 기축옥사에 있어서 정여립의 역모를 사실로 봐야 할 것이라고 하여 붕당정치론에 의거해 기축옥사를 해석하고 있다. 이에 나는 10년전에 내가 쓴 논문을 다시 봤는데 그 결과 한자의 첨삭도 팔요없는 쾌심의 작임을 재확인했을 뿐이다. 이대로 있으면 기축옥이 사실이라는 오해가 확산되고, 당쟁사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한 바 있는 나로는 이태진의 논조에 동의할 수 없다. 2. 기축란의 진상 붕당..

書/논문 2012.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