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일본 여행기 15차

기나 긴 일본답사기 - 11일 오사카1 (시텐노지四天王寺)

同黎 2019. 3. 12. 04:07



비가 온다

일본에 오고 두 번째 태풍이 지나간다던데


뭐 그래도 볼 건 봐야 된다. 오늘은 오사카 시내로 간다.


점점 비가 많이 내린다.


케이스하우스 옆 타카세가와도 오랜만에 물이 많이 찼다.


시치조역으로 가는 길


가모가와도 꽤 물이 많이 불어나 있다.


오 아래쪽 하수부지가 거의 잠겼군


시치조역 도착


오사카로 가는 길


급행을 타고 텐마바시로


한가한 역 안


열차 도착


오사카로


하늘이 심상치 않다.


곧 도착


텐마바시로 간다.


여기서 다시 타니마치선을 타고 시텐노지 쪽으로 간다.


기다리는데 출근하는지 퇴근하는지 모르겠는 양반

호스트인 듯

심야식당에 나오는 양반 같다.


느긋하게 출근하는 대학생들


시텐노지마에유히가오카역 도착


여기서 또 한참 가야한다.


나가는 길


여기로 나가면 뒷길이 나오는데


여기로 7~8분 나가야 한다.


오랜만이다

태풍이 와서 한가하다.


중의원 선거 벽보


오 이 곳이 투표소인가 보군

최고재판관에 대한 찬반 투표도 함께 열린다.

보통 총리가 지명하면 천황이 임명하고 임기 첫번째 중의원 선거에 국민심사라고 형식상 찬반투표를 한다.


뒷쪽 묘원 방면으로 난 쪽문

시텐노지도 여러 번 왔다.



시텐노지(四天王寺, 사천왕사)는 화종의 총본산이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쇼토쿠태자가 6세기 말에

세웠다고 하며 쇼토쿠태자가 세운 칠대사에 속한다. 이 칠대사는 호류지, 코류지, 호키지, 주구지,

시텐노지, 타치바나데라,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카츠라기지라고 한다. 다만 이 설 자체가 헤이안시대에

정착된 것이라 신빙성을 확신할 수는 없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쇼토쿠천황이 소가씨와 힘을 합쳐

모노노베씨를 칠 때 쇼토쿠태자가 소가군의 후방에 있었는데, 소가군이 밀리자 사천왕상을 만들고

전쟁에 승리하면 절을 세우겠다고 서원하여 이후 593년에 시텐노지를 세웠다고 한다. 문헌상으로

쇼토쿠태자가 창건에 직접 관여한 절로 호류지와 유이하다. 적어도 1차 나니와 천도 때에는 시텐노지가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설로 현재의 자리가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다가 옮겨왔다는 설도 있으며,

쇼토쿠태자의 사찰이 아니라 도래계 씨족인 나니와노키씨의 우지데라라는 설도 있다.


시텐노지 창건 이후 주변에 7개의 신사와 4개의 자원을 세워 일대가 사원군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아예 율령제 하에 하나의 무라가 되어 집락을 이루었다. 이후 헤이안시대와 가마쿠라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차례 소실되면서도 재건되었고, 정토신앙이 융성하기도 했으며 천태종 산하의 사찰이 됐다.

이후 오다 노부나가와 일향종의 이시야마혼간지의 전투로 소실되었다가 히데요시가 재건하지만 오사카

겨울 전투로 소실되고 이후 에도막부가 재건했으나 막말에 낙뢰로 소실된 것을 다시 재건했다. 그러나

쇼와 연간인 1934년 태풍으로 거대한 오층탑이 무너지며 금당을 덮치면서 두 건물이 모두 소실되었고

오사카 대공습으로 국보인 동대문도 소실되었다. 이후 60년대 중심부분과 대다수 건물을

철근 콘크리트를 이용해 아스카시대 양식으로 재건했으나 너무 이질감이 많이 든다.


여기로 들어가면 원삼대사당이 나온다.

저 건물도 중요문화재


납경소로 가는 길


내부


멀리 중심가람이 보인다.


공사 중인 건물


중요문화재인 석무대와 육시예찬당

에도시대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으며 이 석무대는 스미요시대사의 석무대,

이츠쿠시마신사의 평무대와 함께 일본 3대 무대로 손꼽힌다.


납경소


신불영장 납경받는 중


중심가람은 따로 돈을 내야 한다.


보물관 가는 길


멀리 보물관이 보인다.


봄, 가을에만 여는 곳


가을 특별전 중


비가 점점 거세진다.


추계명보전

보통 중요 유물을 꺼내놓는데


운이 없게 이번엔 과거 대종루로 쓰던 영령당의

오사카시유형문화재 지정 기념으로 열린 전시라 근대 유물이 대부분이다.


목조 약사여래입상

중요문화재, 헤이안시대

과거 탑두인 약사원의 본존이라고 한다.


안내문


시왕도



태고

부가쿠에 쓰던 것으로 중요문화재


대종루 설립을 위한 발기인 명단

메이지시대



세계에서 가장 큰 종이라는 광고문



종루 설계도와 종

그러나 이 종은 2차대전 당시 공출로 인해 사라졌고 종루는 벽을 쳐서 위패당이 되었다.



우키요에 양식으로 그려진 종루도



종을 운반하는 모습



종루의 유래서



역시 발기인 명단



종의 설계도



종 모형 항아리



종을 만들 당시 사용했던 끌



종루 천정화를 위해 만든 낙인



목조아미타여래상

헤이안시대, 중요문화재


와카야마현의 묘오인의 구장품이다.



역시 중요문화재인 태고


과거 현판


영령당으로 가는 길


이게 과거 대종루인 영령당이다.


많이 와봐서 중심가람은 들어가지 않지만 간단히 살펴만 보자


맑은 날 다시 간 시텐노지

보충사진이다.


남대문


중문과 뒤편의 오층탑


중문의 인왕상


호류지의 것을 본땄다.


구마노권현 예배석

멀리 구마노삼산을 요배하는 곳이다.


안내문


중문과 오층탑


현재 오층탑은 8번째이다.


중문


서대문

극락문이라고 불렸으며 과거 서대문 앞에 정토신앙이 많았다고


남대문


동대문


중요문화재인 도리이


금당


내부에는 주구지 반가상을 본딴 여의륜관음상과 호류지의 것을 본딴 사천왕상을 모셨다.


오층탑

내부는 걸어갈 수 있다.


대강당


육시당



에도시대 초기의 건물



석양이 지는 시텐노지


구카이, 사이초, 료벤, 신란, 잇펜 등이 참배했다고 한다.

구카이상이 보인다.

 

신란이 머물던 곳


이게 다시 밖으로 나간다.